스톡홀름(Stockholm)
도시가 가진 여러 미적 가치 중 단연 빛나는 건 바로 ‘색채미’ 아닐까. 수많은 색채를 지닌 도시지만 유독 붉은색으로 추억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스톡홀름. 붉게 물든 기억의 출처는 붉은 벽돌의 건축, 붉은 조도의 따스한 조명빛 그리고 사람들이 건네는 특유의 다정함이 지닌 붉은색이다. 모양이 제각각인 창밖의 붉은 벽돌의 건물들은 이름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어릴 적 추억과 이야기에서 건져낸 상상 속 추억이 혼재된 묘한 감정이다. 붉은 벽돌은 왜 나를 기분 좋은 상념에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붉은 벽돌과 나 사이는 대체 어떤 관계이길래 이토록 마주할 때마다 설레는 걸까. 내 삶 속 유물을 발굴하듯 언젠간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한다. 감정을 툭 하고 건드리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무의식에선 이미 그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여행은 곧 도시를 향한 애정 어린 탐색이 되고, 동시에 내 감정의 원천을 향한 탐험의 문을 연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북유럽 여행의 첫걸음을 스톡홀름에서 뗐다. 왠지 가을의 문을 열기에 더없이 완벽한 곳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을과 스톡홀름을 짝짓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곳의 가을을 맛보고 나니 다른 조합은 상상할 수가 없다. 모스크바 경유라는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 도착한 스톡홀름 알란다(Arlanda) 공항의 첫인상은 포근함이었다. 예상과는 사뭇 다른 좋은 느낌에 2주 간 펼쳐질 북유럽 두 도시 여행이 순탄하다 못해 완벽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여행을 거듭할수록 실감한 게 하나 있다. 공항에서 우버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올 듯 말 듯 계속해서 취소되는 바람에 여행의 시작을 비관하려는 마음이 비집고 올라왔다. 그 순간 우버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을 만나도 즐거울 거야’라고 마음먹었던 걸 기억하자’라는 생각. 여행은 정말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한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 택시비가 워낙 비싸기로 유명한 도시지만 감정 소모 비용보다는 무조건 싸다는 생각.
젠틀맨 택시 기사님 덕분에 호텔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붉은 벽돌 사이 우직한 목재 문이 널찍하게 펼쳐진 입구는 흡사 누군가의 저택의 모습이었다. 설레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다. 발그레한 볼과 붉은 입술이 어여쁜 누군가의 환대에 내 볼도 발그레 물이 들었다. 스톡홀름도, 코펜하겐도, 실은 각각 어떤 호텔 때문에 끝내 여행을 결심할 수 있었다. 100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는, 두 도시에 가야만 경험해 볼 수 있는 호텔이 결국 나를 부른 셈이다. 1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담아 두던 곳에 도착하고 나니 조금 이르지만 여행이 완성됐다는 마음이 찾아들었다. 이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호텔 이야기는 따로 지면을 할애해 찬가를 불러볼 참이다(다음 챕터를 기다려주시라!). 체크인을 하기 전 만난 ‘붉은 벽돌에 둘러 쌓인 붉은빛이 감도는 정원’에 온통 마음이 뺏겨버렸다. 여독이고 뭐고 짐도 풀기 전에 부랴부랴 세수만 하고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서 마주한 따스한 모닥불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음도 붉게 물든 건지 나는 어느새 레드와인 한 잔을 주문하고 있었다. 와인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진짜 내가 여기에 왔구나’란 한마디를 연신 내뱉었다. 나 홀로 여행의 정점을 여기서 찍는구나 싶었다. 더 바랄 게 없는 순간이 30분 이상 지속되는 데다가 혈관에 검붉은 와인이 흐르고 있다 보니 긍정은 한계가 없이 피어올랐다. 첫 만남이 이 정도라면 과연 일주일 간 나는 이 도시와 어떤 사이가 될까 호기심이 일었다. 프라이빗 정원에서 모닥불 곁에 앉아 녹진한 레드 와인 한 잔으로 여독을 푸는 순간을 추억하려니 캡처해 둔 대사 한마디가 떠오른다. 미드 더 베어(The Bear)의 문제적 인물 ‘리치(Richard)’가 결정적 순간에 좌중을 잠재우며 압도시킨 말이다. “Anticipation creates luxuriation.” 맥락에 빗대어 뜻을 풀어보자면 "기다림의 설렘이야말로 가장 고급스러운 즐거움이다” 정도가 되겠다. 너무 맞는 말 아닌가 말이다.
여행 당시엔 느낌만 강렬했을 뿐 미처 언어로는 묘사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여행의 기억이 즐거운 건 아마도 과거를 다시 쓸 수 있기 때문 아닐는지. 이제야 황홀감 감돌던 지난 여행 속 한 순간에 이름을 붙여보려니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게 스톡홀름의 첫날은 붉게 물들어갔다.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의 서가에서도, 스톡홀름 시청사 투어에서도, 그리고 (2번 연속 찾아간) 스톡홀름 최고의 미트볼 식당에서도 붉은색의 향연은 계속됐다. 빨간색이, 붉은빛이, 내 영혼을 이렇게 애달프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내 감각을 이토록 자극할 줄은 더 예상치 못했고 말이다. 고백건대 빨간색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안 하고 살던 내 삶에 찾아온 작은 혁명이었다. 애석하게도, 특히 패션에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기에 멀기만 했던 당신인데 스톡홀름이 나와 빨강 사이를 매개해 주는 최고의 도시가 될 줄이야! 2016년은 이제 (나만의) 빨강의 해로 추억한다.
우스개 소리지만 스웨덴 국기 색은 파랑과 노랑인데 스톡홀름은 내게 ‘붉게 물든 도시’ 그 자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스톡홀름의 붉은 향연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바람에 한동안 꽤나 그리워했던 스웨덴 대표 요리 미트볼은 링곤베리와 함께 먹는다. 링곤베리 별명이 무려 ‘빨간 보물’이라니 우연일까. 추위와 상관없이 어디서나 재배가 가능하고, 비타민 C 등의 영양소는 물론 항암효과까지 뛰어난 열매라고 한다. 상큼한 맛은 물론이고 톡 터지는 식감에 홀딱 반해버렸는데 링곤베리의 색은 (이쯤이면 뻔하지만) 영롱한 붉은빛이다. 또 고백하건대, 닮고 싶은 최고의 방송인 최화정 님의 레드립 말고는 딱히 붉은색을 탐해본 적 없었다. 큰맘 먹고 빨간 핸드백을 산 적 있지만 어색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금세 엄마에게 헌납했다. 내 삶에 허용됐던 레드는 오직 만년필과 노트뿐이었다. 스톡홀름 붉은 물결의 향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잔디밭이 펼쳐진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스톡홀르머들은 누워있었다. 예쁘게도 내리쬐는 햇살 아래 성실하게 순간을 만끽하는 모습이야말로 아름다운 진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도 존재감을 내뿜었던 빨강이 있었다. 민트색 지붕과의 조화가 멋스러운 붉은 벽돌의 소피아 성당, 빨간 기와지붕으로 덮인 이름 모를 누군가의 집까지. 스톡홀름 현대 미술관에선 쿠사마 야요이의 붉은 도트로 에워싸인 나무도 만났다. 일평생 만났던 ‘옷 입은 나무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스톡홀름의 빨강 찬가도 이제 슬슬 막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드디어 빨강 대장정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일렁이는 강물 위로 떨어진 반짝이는 햇빛과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잎을 따라 산책을 하던 중 엄청난 조형물을 만났다. 중절모를 쓴 중년의 남성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듯한 뒷모습의 거대한 조각 작품 ‘Who is Mr Walker?’였다.
알고 보니 그 작품은 아티스트 얀 호프스트룀(Jan Håfström)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였다. 무려 ‘빨간 로브’를 입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키는 7미터요 무게는 2000kg이나 나가는 예술가의 다른 자아라니. 스톡홀름에서 만난 ‘우연’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다. 생각해 봤다. 나도 나의 ‘또 다른 자아에게 빨강을 입혀볼까’라는 생각. 스톡홀름의 예술감 넘치는 위트는 카페에서도 발견됐다. 커피맛에 반해 세 번이나 찾았던 카페 il caffè söder에서도 미스터 워커를 만났다. 그는 과연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뒷모습에서도 느껴지는 절실함과 긴박감이 온갖 상상력을 자극했다. 문득 여행을 앞두고 재밌게 읽었던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떠올랐다. 무 근거 무 맥락의 연결 짓기를 갈수록 즐기게 됐다. 스톡홀름이 나를, 정확히는 내 사고방식과 마음을 계속 만지작 거리며 말랑하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생활 반경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 예술은 여행자에게도 열려있었다. 예술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도시와 나 사이 마음의 벽을 금세 허물어주었다.
스톡홀름은 단정하고 아담하다. 그리고 동시에 우아하고 다정하다. 낙낙한 인구밀도 덕분일까, 넉넉한 피카(FIKA) 문화 덕분일까. 이 도시는 말수가 적고 여유를 풍기는 사람의 모습을 띤다. 자유와 절제의 향기가 공기 중에 공존한다.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타인의 시선에는 무감각하지만 기본적으로 탑재된 다정함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강렬하게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은은하게 ‘나만의 스타일’을 내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마따나 섬세하게 들여다볼수록 ‘다름의 미’를 넘치도록 발견할 수 있다. 스웨덴이 왕실 국가인 것도 도시의 분위기에 한몫을 하는 걸까.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한 독특함과 자유로움이 곳곳에서 발견되면서도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건 왕실의 고아함과 기품인 것만 같다. 무려 10세기(970년)에 시작된 왕실의 역사를 갖고 있으니 도시 사이로, 문화 사이로 고상함이 흘러 다니는 건 무척 당연하다. 여행자에게도 너그러이 그 모습을 종종 보여주는 게 스톡홀름의 다정한 매력이겠다.
이 다감한 도시는 꼭 직접 만나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숨바꼭질 혹은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이게 바로 도시 산책의 낭만 아닐까. 어린아이들처럼 열정적으로, 충실하게 놀이에 임해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게 많다. 스톡홀름을 만나고 나서야 마르셀 푸르스트의 그 아름다운 한마디에 감정적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시야를 새롭고 낯설게, 넓게 가져본다면, 시선의 각도를 달리해본다면 어떤 여행도 결국 한 발짝 새로워진 나를 만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던 관념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통념마저 내려놓는 여행이야말로 ‘새로운 눈’을 가져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이 도시와 신나게 놀아본 덕분에 진짜 ‘벗어나봄직 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보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볼수록 의외의 매력을 선사하는, 숨기는 듯 보여주고, 보여주는 듯하다가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도시 스톡홀름. 가히 ‘밀당의 고수’다.
이 도시는 또 다른 마력을 지녔다. 자연엔 한없는 공간을 내어주지만 도심에는 한정된 공간만 허락한 채 ‘오밀조밀 잘 살아보라’는 숙제를 내어준 것 같달까. 그래서인지 스톡홀름을 거닐고 노닌 한 주 동안 소풍하는 기분을 물씬 느꼈다. 신선한 도시 여행의 길이 열렸다. 소풍은 마냥 걷기만 할 수 없다. 종종 드러누워야 하고 무념무상에도 빠져야 한다. 떼구루루 잔디밭을 구르며 몸에 붙어 있는 어색함도 떨쳐내야 한다. 잠시 숨 고르며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봐야 하고, 읽던 책도 꺼내 읽는 거다. 한가함이 무엇인지, 놀고먹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그 정수를 느껴도 봐야 한다. 도시는 걷고 또 걸어야만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 습관에 유쾌한 금이 갔다. 금이 간 항아리에서 물이 새듯 기존의 생각이 한줄기 씩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한 표현이겠지만 상쾌한 배설이었고, 산뜻한 해방이었다. 삶의 무게를 한껏 지고 사는 어른들이여, 끝없이 걷고 걷는 도시여행자들이여, 스톡홀름으로 소풍 가시라. 어른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동네 쇠데르말름(Södermalm)에서 유독 좋아했던 거리가 있는데, 길 이름이 ‘쇠데르만나가탄(Södermannagatan)’이다. 그 거리에 세 번이나 발걸음 했던 카페가 있고, 이웃집에 꽃집이 있다. 꽃집 이웃집은 GRANDPA라는 이름의 옷가게가 있고, 할아버지 옆 집엔 아날로그 음반 가게가 있다. 음반 가게 이웃집은 Coctail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화책 속 그림을 현실로 옮겨 놓은 듯한 아름다운 잡화점이 있다. 각각의 고유함이 매우 강렬한데도 불구하고 한 거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어여쁜 거리에 있는 작은 상점들에 불과하지만 이 거리에서 스톡홀름의 정수를 만났음을 확신했다. 세상 모든 게 변해도 변하지 않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면 그건 분명 ‘거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아날로그를 만끽하며 다정다감을 한도초과로 충전했다. 그래서 갑자기 내 꿈은 어느 작은 도시 아담한 거리에서 GRAND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