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도시, 우리만의 도시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늘 처음처럼 흥미진진한 상상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시대와 장소를 선택해 가볼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 수년째 자문자답 하며 즐기고 있다.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달까. 아무도 묻지 않지만, 종종 대화의 소재로 스리슬쩍 꺼내고는 신나게 고백하듯 이야기한다. 만약 가능하다면 가보고 싶은 시대와 장소는 첫째로 ‘세기말 빈’, 둘째로는 ‘벨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파리’다. 벨에포크가 19세기말에서 1차 세계 대전 발발(1914년)까지의 시대를 지칭하니 실은 동시대의 두 도시를 가보고 싶은 셈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빈에도 세 번, 파리에도 세 번 발걸음 했다. 만남의 모양새와 깊이, 환희와 감동의 농도는 무척 다르지만 아름다운 두 도시와의 조우였다. 언제 곤 다시 만나고 싶은 두 도시다. 2022년 빈과 마지막으로 만났고, 2023년 파리와 마지막으로 만났다. 지난 만남이 삶에서의 마지막은 아니라고 당연히 믿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기에 단언이 조심스러울 뿐이다. 그저 재회를 소망하고 기대해 볼 수밖에.
두 도시를 향한 애정과 열망을 재보자면 빈의 압승이다.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경쟁 게임은 아니지만. 타임머신 타고 가보고 싶은 곳도 과거의 빈이고, 할 수만 있다면 매년 만나고 싶은 곳도 오늘날의 빈이다. 빈의 무엇이 나를 이토록 사랑에 절절한 여행자로 만든 걸까? 왜 그 도시가 주기적으로 그리울까?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대체 빈에 가서 무얼 하느냐, 왜 그 재미없는 도시가 좋다는 거냐’라고 말하는데도 연거푸 찾았을까? 어떤 강렬한 느낌이 각인된 걸까? 어떤 정서가 발현되는 걸까? 무엇이 충족되고 무엇이 해소되는 걸까? 빈은 혹 평생 동안 내게 ‘운명의 도시’로 남게 될까? 자주 떠올리고 골똘히 몰입해 보는 생각과 질문의 목록이다. ‘운명이라고 믿는 연인’과 ‘운명 같은 빈과의 만남’을 세 차례 모두 함께 했다. 둘이 한마음이 되어 빈을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운명 아닐까. 우리는 서로가 함께 하는 한 2년에 한 번 반드시 빈으로 향하기로 약속했다. 매년 가고 싶은 마음이 들끓지만 아직 가고 싶은 도시가 많기에 절제를 다짐했다.
빈과 첫 조우를 했던 지난 2018년의 어느 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스러지기 아쉬워 긴 여운을 남기는 늦여름의 정취로 가득 찼던 저녁 어스름이었다. 해가 질듯 말듯한 노을 녘 아래 저녁 식사를 위해 찬찬히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온몸과 마음이 낯선 아름다움으로 에워싸인 것만 같은 느낌이 물씬 들었다. 피부결에 걸쳐 있던 물리적인 감각은 어느새 희미해졌지만, 그 ‘느낌의 언어’는 아직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다른 유럽 도시들의 화려한 아름다움이나 메트로폴리탄 뉴욕의 웅장한 멋스러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공기 중에 느껴졌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지구상의 어떤 곳과도 접점이 없는 듯한 생경함이었다. 그 낯선 아름다움은 고아한 품격이었고, 소리 없이 은은한 도도함이었다. 분명 위풍당당한데 과함이 없는 우아함이었다. 짐짓 그저 오래된 것들이 잘 보존된 것뿐인가 싶었지만 그건 영락없는 오해였다. 오랫동안 지켜온 것들에 서려 있는 힘은 지금 이 시대의 그 무엇보다 세련미가 돋보였다. 짧은 시간에 빈의 비밀스러운 매력을 파헤친 것만 같아 신명이 났다.
격해진 감정이 조금 가라앉고 와인과 음식이 들어가니 정신을 조금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나 빈에 첫눈에 반했구나’라는 것을.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겠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여행을 거듭하며 과연 나만의 도시를 만나게 될지에 대하여 늘 호기심과 설렘을 가득 안고 있었다. 빈과의 세 번의 만남 끝에 호기심과 설렘은 어느새 사랑의 모습을 띠고 있는 거 아닌가. 만남의 횟수와 시간에 따른 흐름이 있었다. 예상과 기대를 넘어 첫눈에 반했고, 다시 찾았다. 주저함도 밀고 당김도 없이 열렬한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닥친 팬데믹의 지난한 시간을 보냈고 그리움에 사무쳐 상사병을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다 눈물겨운 재회를 하고는 확신에 찼고, 서로가 마지막 사랑이기를(매우 일방적인 사랑이지만) 소망하게 됐다. 나도 안다. 도시와 이리도 애절하게 연애라니. 이게 웬일인가 싶겠지만 여전히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빈과 나, ’ 우리 사랑 이대로’ 애정 전선 이상무.
빈을 만날수록, 빈을 흠모하고 감각할수록 ‘세기말 빈’이 더욱 궁금해졌다. 첫 만남에선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그리고 건축가 오토 바그너와 아돌프 로스를 폭식하듯 탐닉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선 빈의 역사와 카페 살롱의 문화에 빠져들었고 내심 피하고 싶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보티프 교회를 보러 가던 길 우연히 공원에서 만났다. 프로이트 박물관(생가) 방문은 언젠가의 다음 여행으로 미뤄두었다. 조금 더 나이 들고 성숙해진다음 만나고 싶은 이상한 욕망이랄까. 공원을 거닐다 프로이트 기념비 앞에 멈춰 섰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임상심리학 석사생 시절 학교 밖 심리치료 현장으로 한 학기 수업을 수강하러 다녔는데 바로 그 수업이 정신분석학 수업이었다. 정직하게 실토하자면 한 학기 내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고, 너무 재미없었다. 남는 건 그저 프로이트(Freud)와 융(Jung)이라는 두 이름뿐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우주 너머의 영역이 돼버린 정신분석학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석사를 졸업하고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수련생이던 시절 진료를 마치신 교수님과 연구 보조 건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질문을 던지시는 거 아닌가. “정신분석이 뭐라고 생각해?” 이토록 큰 질문을 고작 수련생인 내게 던지시다니 정말 야속했다. 모르는 건 물론이거니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르겠습니다.”라고 빠른 대답을 뱉고 진료실을 빠져나가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또 불러 세우시더니 “힌트 줄게, 세 글자로 말해봐.”라며 웃고 계시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크나큰 질문인 듯한데 세 글자라니 더 어이가 없었다. 교수님께서는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으시더니 “타이밍이야. 인생도 타이밍이지.”라고 하셨다. 뒤이어 덧붙여 주셨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타이밍’이라는 세 글자는 평생 각인됐다. 프로이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오래전 일을 떠올리자니 기분이 묘했다. 프로이트의 도시에서 프로이트를 동상으로 만난 그제야 나는 “왜?"라고 묻고 있던 것이다.
여행 내내 인생을 그리고 여행을 ‘타이밍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행은 참 재밌고 고맙다. 먼지 덮인 기억의 서랍 속에서 꺼낼 일 없던 기억을 소환해 새로운 생각으로 치환해 주니 말이다. 그것도 뜻밖의 우연처럼. 빈과 나의 만남은 어긋나지 않은 타이밍 덕이란 생각이 들었다. 끼워 맞추는 게 제일 재밌지. 더 어렸다면 빈의 우아한 품격과 기품을 촘촘히 만끽하지 못했을 것 같다. 더 나이 들어 만났다면 공부 좀 해왔다고 되려 정신의 틈새에 편견과 허영이 끼어들었을 것도 같고. 우리의 만남은 그때여야만 했다. 호기심과 질문이 생생히 살아있던, 사람도 도시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던 그때야 말로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타이밍’이었던 거다. 사람과의 ‘인연’도 내가 무르익어있을 때, 내가 준비돼 있을 때 더 자연스럽고 더 빛나는 법. 수백 년을 거쳐 역사와 전쟁, 제국의 번영과 몰락, 문화 예술의 발전과 혁명을 단단히 겪어온 빈을 제대로 만나려면 내 영혼과 정신의 성숙이 필요했던 건 아닐는지.
빈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카페, 독일어로 ‘비너 카페하우스(Wiener Kaffeehaus)’가 약 1200곳이 있다. 카페는 예술가들과 문학인, 철학자, 건축가, 심리학자들이 한데 모여 환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특히 빈의 황금기와 세기말의 변혁기에 카페, 즉 살롱이야말로 새로운 예술의 탄생과 혁신의 본거지였다는 것이다. 장르 불문, 격의 없이 나누는 토론과 통찰이 빈스러운, 오직 빈 만이 할 수 있는 예술과 문학, 건축과 과학 그리고 정치로 연결된 게 아닐까. 빈 여행의 정수를 단 하나만 꼽는 건 결코 불가능하지만, 19세기의 모습과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카페 순례가 단연 으뜸이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이보다 더 자극하는 곳은 없다. 괴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페터 알텐베르크는 카페 첸트랄(Central)에 단골 지정석이 있었다. 카페 단골 지정석이라니 그 무엇보다도 부럽다. 그곳에 종일 머무르며 글을 썼고, 편지도 카페 첸트랄 주소로 받았다고 한다. 지정석에 이어 편지까지? 문학인을 향한 카페 첸트랄의 헌신에 가까운 애정에 찬사를 보낸다.
세기말 빈의 혼돈과 변화의 태동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예술가들을 유심히 관찰해 문학에 녹여냈다는 그를 지금도 카페 첸트랄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지정석에 앉아있는 전신상의 알텐베르크가 모두를 맞이해 준다. 층고가 높고 고풍스러운 카페 첸트랄에 앉아 150년 전의 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의 만남을 마음껏 상상해 보는 건 여행의 깊이를 한층 더하는 일이었다. 어느 카페에 누가 단골이었는지를 찾아본 후 나만의 지도를 그리듯 순례를 해보자. ‘오직 나만 아는 나만의 재미’를 그려볼 수 있으니까. 클림트의 단골 카페는 카페 무제움(Museum)이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에곤 실레가 클림트를 처음 조우한 곳이다. 당시 에곤 실레의 환희와 흥분을 한껏 상상해 봤다. 프로이트는 카페 란트만(Landtmann) 단골이었다고 한다. 란트만을 처음 본 순간 그 도도한 세련미와 강렬해 보이는 정체성의 느낌이 너무 프로이트와 잘 어울려 보였다. 역시 내식대로의 해석이지만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법 아니겠나. 그의 욕망이 닿는 곳은 기실 그의 성향이 투영되는 곳 아니었을지.
빈을 여행한다는 건 과거에 매료되는 것과 다름없다. 사랑에 흠뻑 빠져버린 도시의 과거와 역사가 궁금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오늘날의 빈은 오랫동안 잘 보존된 옛것들의 조합이 계속해서 진화하며 뿜어내는 아름다움과 자부심이 도시의 곳곳에 서려있다. 그렇기에 문화와 예술을 날카롭게 감각하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도시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귓가에 들려오는 것도 과거 어느 시절을 향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두 발로 거닐며 만끽하는 빈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겠는가. 빈의 과거에 빠져들수록 빈의 내일이 보이는 것만 같다. 빈의 내일을 함께 하고 싶다. 그러자면 빈과의 사랑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하는데 짧게만 느껴지는 인생을 어찌할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더 큰 사랑과 실천에 빠져보는 수밖에.
재즈를 즐겨 듣곤 하는데 둔중하고 묵직한 소리로 마음을 울리는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선명하게 포착될 때면 빈이 떠오른다. 콘트라베이스는 그 크기에 비해 주목을 받는 악기는 아니지만 음악과 연주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잠자코 있으면 잘 들을 수 없는, 특별히 추가의 노력을 기울여야 포착할 수 있는 그 소리. 그러니까 육중하고 우아한 그 저음에 보태는 나의 집중과 몰입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 순간 고요한 짜릿함이 감돈다. 콘트라베이스 솔로 연주는 평소 말이 없는 한 인간의 그윽한 독백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빈이 소리를 지녔다면, 그 소리가 모양새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자주 생각한다. 세상의 주인공도 아니고 눈에 띄지도 않고 파리나 로마나 뉴욕에 비하면 가야만 하는 이유가 손에 꼽는 듯하지만 내게는 인생을 바꿀 만큼의 힘을 지닌 도시가 바로 빈이니까 말이다. 내 삶을 투영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우주에 나라는 존재가 꼭 없어도 될 듯하면서도 반드시 ‘잘 살아가야 하는 나만의 이유’를 품고 살기에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니까.
도시와 여행에서 시작된 이야기와 성찰이 결국 인생으로 끝나다니. ‘빈’, 정말 당신이란 도시를 어쩐단 말인가. 이렇게 고백과 찬탄으로 마음의 구석구석을 내보인 김에 러브레터로 마무리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겠다. 당신의 과거에 사로잡힌 나를 어쩌란 말인가. 독보적인 분위기를 지녔지만 결코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는 당신의 우아함, 화려한 외양을 가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숨겨져 있다며 쉽사리 비밀을 내놓지 않는 당신의 자부심과 자존심, 작은 도시지만 위용과 기세만큼은 크나큰 당신의 기개, 문화와 예술과 학문을 최우선으로 지키려는 당신의 굳센 결의와 실천에, 큰 변혁과 변화를 이루어본 역사를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는 그 정신과 겸손에 사랑과 경의를. Prost!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