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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여정에 꼭 ‘탐험과 모험의 시대’가 있길 바랐다. 유럽사에서 가장 평화롭고도 경제 문화 발전이 가득했던, 19세기말의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belle époque)’가 내 삶에도 반드시 나타나길 소망했다. 이 내밀하고도 강렬했던 염원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펼쳐진 게 아마도 여행을 지속하는 이유 아닐는지. 아득한 어린 시절 여행을 꿈꾸며 상상했던 순간부터 오늘의 나에 이르기까지 가장 찬란하고 빛나던 ‘나’는 여행 속에 있었다. 때론 혼자였고, 때론 함께였다. 혼자일 때 나는 분명 빛났고, 자유와 독립의 향기가 났다. 함께 할 때엔 나는 종종 어리석은 철부지였지만 분명 성장했고, 우린 찬란했다. 연인과 함께 다듬고 빚어낸 여행에선 사랑과 성숙의 향기가 났다. 혼자이든 함께든 어쩌다 찾아든 외로움의 향기는 가장 근사한 사람 냄새였다. 여행에서 마주했던 다채로운 감정, 깊은 성찰과 개구진 생각, 이따금씩 기이했던 공상 그리고 틈만 나면 감탄하기 바빴던 마음가짐 모두 여행이 건네준 귀한 선물이다.
마치 ‘절찬리 상영 중인 영화’처럼 인생에서 여행은 계속되고 있지만 한 번쯤은 꼭 이름을 붙여 글로 남기고 싶었다. 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욕망이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두려움, 게으름, 그리고 바쁜 현대인의 삶 등 갖다 붙일 핑계가 한가득이지만 ‘이야기의 조각들만 있고 씨줄과 날줄로 엮을 준비는 되지 않은’ 상태였다. 불혹을 지나니 ‘모든 일엔 때가 있다’는 말이 이보다 더 실감 날 수가 없다. 이 또한 회한 섞인 핑계에 불과하지만. 글로 여행 연대기를 훑는 시간을 갖다 보니 수년간 뇌리에 깊이 박혀 맴돌던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 여행은 흡사 그랜드 투어다. 그렇다면 나는 21세기형 그랜드 투어리스트인가?’라는 생각. 16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그랜드 투어는 르네상스에 이르러 ‘더 멀리 갈수록 더 많이 보고 알게 된다’는 모토를 탄생시켰다. 뿐만 아니라, 여행을 떠난 나라의 지리, 역사, 정치, 예술, 건축,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리라고 기대되었다고 한다. 물론 가장 궁극적인, 이상향의 목적지는 교육과 여행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탈리아 로마였다고. 1786년 로마에 도착한 괴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 같다”라고 했으니. 아, 로마여!
최초의 르네상스인, 최초의 근대적 인간이라 칭함 받던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여행의 즐거움’ 자체가 목적인 여행을 한 최초의 관광객이라고 한다. 그는 호기심에 떠나는 여행을 ‘찬탄할 만한 것, 가치 있는 것’으로 천명했고, 세상을 ‘넓은 배움터’라 표현했다. 여행은 점점 비즈니스보다는 교육, 문학, 예술과 접목되어 즐거움과 호기심 그리고 배움의 영역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의 내 여행을 키워드로 정리해 보니 이러하다. ‘자유와 독립’, ‘감각과 감식안’, ’ 호텔’, ‘오래된 것을 향한 흠모’, ‘미식’, ‘음악과 미술’, ‘언어’ 그리고 ‘사람’.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쌓아둔 호기심이 늘 여행의 동력이었고, 할 수 있는 한 더 멀리 가서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도시의 어제를 공부하고 도시의 오늘을 마주했고, 도시를 거닐며 자연과 문화유산 그리고 예술을 탐닉했다. 언어를 배우며 앎과 재미의 영역을 확장했고, 모든 감각을 깨워 집중하고 감탄하면서 감식안과 심미안을 키웠다.
실은 내 여행이 교육 목적의 모습을 띤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 길 위의 철학’이라는 말처럼 여행의 길 위에서 생각과 취향을 벼린 여행이었다. 어쩐지 닮아 있는 몇백 년 전의 여행과 나의 여행이 좋다. 18세기 후반을 지나며 그랜드 투어는 ‘스스로를 향상시키기 위한 통과 의례’로 여겨졌다고 한다. 근사하다. 명쾌하고 멋진 별명 아닌가. 지금까지 여행이 나를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역사 속 한마디가 그 생각을 방증한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도시와 건축, 자연과 예술에 대한 자기만의 감상이 가지런히 쌓인다. 감상이 쌓일수록 감정 표현이 서슴없어진다. 나만의 감상과 감정 표현 혹은 비평이야말로 변화와 속도만을 추구하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진정한 교양 아닐까. 감각과 감식안은 내면에 ‘나만의 것’이 쌓일수록 탁월해진다. 묵직한 만족감과 자신감은 1+1 보너스. 데이터 없이 돌아가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나만의 데이터’야말로 AI가 훔칠 수 없는 강력한 무기 아니겠나.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자.
여행으로 맛본 ‘자유와 독립’은 무척 달콤했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자유를 실컷 누린 여행에선 때로는 초콜릿 맛이 났고, 때로는 청량한 샴페인 맛이 났다. 모든 여정을 오로지 내 욕망과 취향으로 디자인하고 마음껏 즐기거나 언제든 어길 자유가 바로 독립의 감각이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촘촘히 세운 계획대로 하루를 채워보면 느낄 수 있는 희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생각과 상념 만으로, 혹은 공상과 잡념 만으로 하루를 채우는 것도 짜릿하다. 휴학생 시절 6개월 간의 어학연수를 미시간주에서 마치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뉴욕주 롱아일랜드로 향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때였고 6개월 간 쓰던 피처폰은 정리한 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맨발로 여행한 것과 다름없다는 느낌이 든다. 오직 종이 지도에만 의지해 매일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로 출퇴근하며 누빈 한 달간의 뉴욕 여행은 완전한 자유와 독립 그 자체였다. 매일 아침 미드타운에 있는 브라이언트 공원으로 향해 길거리 노점에서 블랙커피와 베이글을 산 다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테이블에 앉아 그날의 여행을 계획했다. 책과 지도만 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감각'을 가졌던 그때의 여행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다시는 없을 그 시절의 자유와 독립을 그리고 사무치게 그리운 뉴욕을 찬미한다.
도시 속 도시 ‘호텔’에서 받는 영감과 에너지의 크기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도시의 축소판이자 지역사회의 생생함을 지닌 공간. 도시를 누비고 거니는 즐거움 못지않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머무름의 여행도 중요하다. 그 순간도 ‘여행’이니까. 여행의 무드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이 바로 ‘호텔’이다.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해주는 공간을 찾아 그곳에서 매분 매초 영감을 받는 희열은 비타민 수혈과 다름없다. 내 취향과 호기심을 충족하는 호텔을 만나면 공간과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현재라는 시간의 개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도시의 옛 시절 속으로 혹은 내 상상이 가미된 도시의 미래로 나를 데려다준다. 독보적인 미를 지닌 공간 디자인을 마주할 땐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사랑에 빠져버린다. 도시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는 영감의 순간엔 경험과 상상이 연결되면서 세로토닌이 활약하기 시작한다.
오래된 것에 깃든 영혼의 숨결과 이야기를 흠모한다. 숨겨진 이야기, 오래된 이야기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일까, 더 큰 울림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문학에서 만나는 어느 시절, 영화에서 만나는 옛 도시를 여행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자주 한다. 오랜 습관과도 같은 이 감상과 상상이 아마도 여행에 숨결을 불어넣어 준 건 아니었을지. 유럽의 오래된 도시 속 돌길을 거닐 때마다 불편한 발바닥을 희생양 삼는 대신 살아보지 않은 시절을 향한 향수와 갈망을 해소한다. ‘왜 오래된 것에 끌리는가’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해보며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삶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종종 외할아버지의 낭만과 취향이 네게로 흘러간 것 같다며 말하곤 한다. 엄마가 고등학생 때 소천하셨기에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와 닮았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행복했다. 다만, 교편을 잡고 계시다가 무턱대고 그만두신 후 사업을 했지만 망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기에 칭찬인 것만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여행 가냐고 잔소리하던 이유를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알았다. 엄마에게는 여행과 낭만의 동의어가 ‘(망한) 사업’인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내 정서에 가장 편안하게 와닿는 ‘오래된 것만이 가진 매력과 에너지’는 계속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계속 떠날 수밖에?
몸과 마음에 각 잡고 오페라와 오케스트라에 심취하는 밤이 있는가 하면 몸과 영혼을 자유로이 풀어둔 채 재즈와 와인에 빠져드는 밤이 있다. 가히 여행 속 여행이다. 음악은 그리고 미술은 현실에서 가장 빠르게 올라탈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여행을 떠난 곳에서 또 다른 시대로 떠나는 여행. 이보다 더 가성비와 가심비가 좋을 수 있겠는가. 그런 데다가 ‘뜻밖의 순간’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포착할수록 여행 속 여행이 흥미로워진다는 것.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에 빠져버릴 줄 알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 만난 마티스와 피카소에 정신을 점령당해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이 두 거장의 작품 세계를 향한 애정은 커져만 간다. 파리에서, 빈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도쿄에서 계속 쫓아다니는 중이다. 오랑주리 지하에서 열리고 있던 ‘장 발터와 폴 기욤 컬렉션’ 전시로 145점의 작품을 만난 건 늘 재미로 읊조리던 말의 주인공을 만난 드라마 같은 순간이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19세기말 파리의 아트 딜러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허공에 대고, 묻지도 않은 친구들을 향해 외치곤 했었는데 천부적인 컬렉터이자 화상이었던 폴 기욤을 이렇게 만난 것이다. 피카소, 세잔, 모딜리아니, 마티스, 르누아르 등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에 서 있노라니 작품과의 대화보다 마치 폴 기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내가 당신이 꿈꾸던 바로 그 사람이오”라고 말하면서. 우스꽝스럽지만 여전히 생생한, 소중한 추억이다.
미식, 괄호 열고 술과 음식. 아무리 찾아봐도 이 조합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여행의 꽃이자 화룡점정은 단연 미식이다. 흘러온 시간과 거듭된 여행으로 쌓여가는 ‘음식과 술의 페어링 경험’은 마치 재산 같다. 물질로 교환할 순 없지만 몸과 마음 곳곳에서 적시에 ‘충만함’과 ‘즐거움’을 담당하고, ‘미각’을 연마시켜 주는 재야의 고수 격 기술이라고나 할까. 스트리트 푸드에서 파인 다이닝까지 미식 경험의 스펙트럼을 넘나들 때의 희열도 빼놓을 수 없다. 태어나 가장 맛있게 먹어본 채소 요리로 손꼽는 코펜하겐 만프레드의 비트 뿌리 요리와 직접 숙성시켰다는 사과주스의 합, 모든 식재료를 로컬에서 공수하는 빈 레스토랑 데발(DEVAL)에서 요리를 내어줄 때마다 오스트리아 동서남북 와이너리의 와인을 한 잔씩 짝지어 주었던 환상의 페어링, 암스테르담 나이트 키친에서 난생처음 맛본 까베르네 프랑 품종 이스라엘 레드 와인과 최고의 마리아쥬를 이룬 병아리콩과 고수를 곁들인 크림 세비체까지. 어디 이뿐이랴. 빈 마리아힐페 거리 스탠드에서 먹었던 커리부어스트, 파리 르 봉마르셰 백화점을 향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안젤리나에서 딱 2개만 맛본 천상의 마카롱, 세수도 안 하고 일찌감치 향했던 암스테르담 카페 커피 디스트릭트에서 맛본 시금치 필링으로 가득 차 있던 참깨 데니쉬를 라테 거품에 찍어 먹던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로컬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있는 듯 없는 듯 잠입할 수 있는 요긴한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선글라스를 낀 채 노천에 앉아 커피를 홀짝 마시며 시선을 허공애 대고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 하나 둘 알아듣는 외국어 단어 몇 개를 단서 삼아 이야기의 맥락을 상상으로 꿰어보는 재미는 겪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다. 이해의 폭이 단어에서 한 문장으로, 한 문장에서 여러 문장으로 확장되는 희열은 말할 것도 없다. 이해의 단계에서 원하는 말 몇 마디를 구사하는 단계로 나아가면 성취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든다. 너무 거창한가? 아니올시다. 생활의 현장에서 자존과 성취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방법이올시다. 아는 게 보일 때, 들릴 때, 그리고 적시에 내 입에서 발화될 때의 순수한 즐거움은 놓치고 싶지 않은 여행의 순간들이다.
비가 갑자기 무지막지하게 내리던 어느 가을날 저녁 호텔 로비에서 만난 네덜란드인 미리엄 부부와 함께 오페라극장으로 향하기 위해 택시에 함께 올라탔다. 만약에 택시를 탄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말 두 마디 ‘Zum Staatsoper, bitte(오페라 극장으로 가주세요!).’를 냉큼 먼저 외쳐버렸다. 너무 유치하게도 누군가 할 것만 같아 조바심이 들었던 것. 그랬더니 미리엄이 갑자기 유창한 독일어로 ‘독일어를 할 줄 아네, 어디서 배웠느냐, 언제 배웠냐’를 속사포로 건네는 거 아닌가.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던 아픔을 뒤로하고 하고싶었던 두 번째 말 ‘Ich learne gerade(배우고 있어요).’만 뱉어낸 채 남모를 뿌듯함을 품고 입을 다물었다. 두 문장만 구사해도 이 느낌 가능하다. 한 거에 비해 과분한 감정이라고? 뭐 어떤가. 나만 좋으면 그만인 것을. 미리엄 부부는 4개 국어를 유창히 구사한다며 대놓고 자랑했다. 여태껏 들어왔던 자랑 중에 가장 매력적인 자랑이었다. 경이로움과 부러움이 택시 안에 둥둥 떠다녔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다 다르다는 건 정말이지 축복 아닐까. ‘다름의 미학’을 충전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선 마음이 활짝 더 열린다. 그 도시만의 고유함과 누군가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결국 다른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곳의 환경과 예술, 정취에 잠겨 ‘고유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 여행 아닐까. 부러 꾀하지 않아도 여행에서 돌아와 어느 즈음 나를 보면 어딘가 한 뼘 자라 있는 것 같고, 세상과 삶과 사람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만났을 때 끄적이던 시간, 환희에 차 멍하니 무언가를 응시하던 찰나, 무언가에 홀린 듯 어떤 끌림을 따라 한없이 거닐던 순간, 주고받은 친절과 다정함의 순간, 그리고 무언가에 마음을 심히 빼앗겨 매료된 순간은 분명 여행의 길 위의 순간들이었고 나에게 배움과 깨달음으로 남아있다. 물론 여전히 ‘여행 자체가 즐거움’인 여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어딘가 그랜드 투어스럽다는 걸 발견했던 어느 날 시작된 물음 ‘나는 왜 여행하는가?’에 화답하는 여행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행과 성장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다. ‘더 나은 나’ 보다는 ‘더 느끼는 나’로 살기 위해 우리 모두 나만의 그랜드 투어를 디자인해 보자. 어느 즈음엔 ‘고유한 나’라는 여행지에 다다르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