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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Aug 15. 2024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준, 세련미 가득한 시크한 도시

코펜하겐(Copenhagen)

스톡홀름에서 올라탄 기차는 스웨덴도 아닌, 덴마크도 아닌 ‘또 다른 세계’였다. 여섯 시간 남짓 그 묘한 세계에서 보낸 시간은 거창하지만 ‘사유의 기회’였다. 당시 사유의 산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미래는 과거를 다시 쓰는 법’ 아니겠나. 기억이 아닌 상상을 동원해 본다. 그러니까, 아마도(바라기를) 한 도시에서 한 도시로 건너가는 그 여정은 마치 철학자 들뢰즈의 ‘From being to becoming’의 ‘느낌’이 스친 순간이지 않았을까. 한주 간 고정돼 있던 세상(스톡홀름)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세상(코펜하겐)에 도착하는 여정(becoming)에 몸을 던졌던 것은 아니었을지. 기차는 떠올리기만 해도 나를 동화 속으로 혹은 철학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단 말이다. 그래서인지 코펜하겐을 추억할 때마다 ‘미지의 세계에 다다른’ 기분이 함께 감돈다. 도시와 짝지어진 감정이 ‘오묘함’이라니, 이것만으로도 특별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대체로 신뢰한다. 하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알기 전에 느끼고 싶다. 알기 전에 발견하고 싶고, 알기 전에 질문하고, 또 탐험하고 싶다. 미리 알아두면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해 줄 역사와 언어는 물론 예외지만 서도. 바이킹 문명의 거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왕조의 나라, 그리고 코펜하겐의 덴마크어 뜻이 ‘상인의 항구(Merchant’s Harbour)’라는 것 정도만 알고 떠난 여행이었다. 아는 것은 여기에 그쳤지만, 설렘과 기대가 향했던 건 따로 있었으니. 바로, ‘건축과 디자인’, ‘미식’, ‘재즈’, ‘커피’, 그리고 ‘휘게 문화’였다. 이에 더해 나름 추가로 준비한 건 ‘오픈 마인드’와 잔뜩 깨워둔 ‘감각’이었다. 코펜하겐은 왠지 ‘느끼다’라는 표현보다는 ‘감각하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도시인 것만 같아서 말이다. 한주 동안 코펜하겐이 지닌 온갖 매력과 감각을 내게 유감없이 발휘해 주기를 잔뜩 기대한 채 코펜하겐과 조우했다.

기차가 중앙역에 들어섰다. 빨간 벽돌의 향연이 여기서도 펼쳐지다니. 스톡홀름에서 수혈해 온 붉은 낭만이 끝없이 계속되는 기분이 들더라.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에 두 발을 딛고 나니 설렘의 세포들이 일 하기 시작했다. 말랑 거리는 마음 부여잡고 방향을 잡으려던 순간 기차에서 한 남성이 빛의 속도로 뛰어나왔다. 그러고 나서 크나큰 배낭을 메고 있는 여성 둘에게 다가가 노트북을 건네주는 거 아닌가. 그들이 기차에 두고 내렸던 것 같다. 노트북 주인인 여성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 남성에게 감사를 표했다. 기차는 다음역으로 다시 떠나야 했기에 그 남성은 인사를 채 받지도 못한 채 기차에 다시 올라탔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모두가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들었을진 모르지만 기차역 플랫폼이 박수갈채로 가득 채워졌다. 누군가 멋지게 낸 휘슬 소리도 들려왔다. 미미하지만 내 박수도 공기 중에 보탰다. 이토록 따스한 다정함과 친절을 첫 발걸음 뗀 순간에 목격하다니. 좋은 예감이 피어올랐다. 


중앙역에서 나와 코펜하겐에 첫걸음 뗀 순간 마주한 건 재밌게도 티볼리 공원 속 ‘마테호른’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놀이동산이라는 티볼리 공원 안에는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있는 마테호른 산의 모형이 우뚝 솟아 있다. 꽤나 흥미로운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섣부르게 순진했다. 며칠 후 해 질 녘 별 기대 없이 티볼리 공원으로 향했는데, 감동과 흥에 취해버린 나머지 헤어 나올 수 없었다. 170년 된 놀이공원이 기대 이상으로 재밌는 건 물론이고, 이곳이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원’이란 걸 깨달아 버렸던 것이다. 코펜하겐에서, 그것도 놀이공원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여행의 묘미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잠시 티볼리 공원 예찬으로 한눈을 팔아볼까. 

우선, 야간개장은 어른들의 친구. 끝없이 펼쳐진, 어여쁘게 정돈된 산책로를 거닌다. 단, 맥주로 목을 촉촉하게 축이면서 말이다. 게다가 널브러지고 굴러다닐 잔디밭이 널찍하게 여기저기 펼쳐져 있으니 유혹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른들은 누워있고, 아이들은 굴러다닌다.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궁극의 적당함을 자랑하는 조명빛에 기분이 한층 달아오른다. 조금 걷다 보면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재즈 연주 소리에 홀리듯 빨려 들어간다. 연주를 즐기며 몸을 흐느적거리다 갑자기 혼자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바라보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즐거움에 각자의 방식대로 몰입할 뿐. 놀이공원에서 누리는 조용한 즐거움이라니. 직접 겪고도 믿기지 않았지만 정말 차분하고 조용했다. ‘정말이지 너무 내 스타일이잖아’라고 허공에 대고 외치고 싶었다. 깜찍한 티볼리 공원 종이지도를 들고 호수를 낀 중국식 정원 산책도 즐기고, 마테호른도 찾아갔다. 코펜하겐 속 세계 테마 기행이 따로 없었다. 놀이기구에 올라타지 않아도 ‘노는 기분’을 제대로 만끽했달까. 

글쎄,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내게 ‘어른들의 놀이공원’은 충격이면서 동시에 희망이었다. ‘어른의 놀이는 무엇인가, 어른은 어디에서 놀아야 하는가’가 삶의 화두였던 그시절 맞닥뜨린 명쾌함이었달까. 호텔이야말로 어른들의 놀이터이자 복합 문화 공간이라 생각했었는데 티볼리 공원도 목록에 추가. 코펜하겐의 어른들이 노는 방식을 하나 엿본 것만 같아 내밀한 만족감이 솟아올랐다. 나이 들수록 잘 놀아야 한다. 어느덧 40대에 들어선 나는 삶의 모토를 변경하고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아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잘 노는 어른들이 만들어갈 세상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포기할 수 없는 ‘어른들이 잘 노는 건강한 문화’를 향한 열망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코펜하겐의 거리는 아름다운 파스텔톤과 다채로운 색감으로 가득하다. 그 어떤 건물도 ‘남다움’을 거부한 채 ‘나다움’을 추구한다.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가려지는 건 용납하지 않으려는 기세다. 위풍이 당당하면서도 부러 드러냄 없이 담백하고 시크하다. 그윽하고 고혹적인 향수처럼 얼마간의 포즈(pause)가 있은 후 그 매력에 퐁당 빠진다. 대놓고 유혹하는 법이 없다. 직접 발로 뛰며 탐색하고 감각하라고, 스스로 알아채라고 하는 것만 같다. 무심코 두 걸음 앞세울 게 아니라 잔잔하게 다가가야 마음을 열어줄 것만 같더라. 도시를 가득 채운 매력의 8할은 사람들에게로부터 비롯된다. 무표정과는 사뭇 다른 다정함, 거리의 모습을 닮은 듯한 형형색색의 개성 넘치는 패션 스타일. 멋지게 차려입고 자전거를 타며 도시를 누비는 쿨한 역동과 오후 2시 모델의 기운을 풍기며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오는 평균키 190 라테 대디들이 누리는 복지의 여유까지. 

멋들어진 보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 도시의 진풍경은 매일 봐도 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뿐이랴, 도심 한가운데로 굽이 굽이 흐르는 운하가 만들어내는 운치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오래된 철제 다리 밑으로도, 분위기 좋은 카페가 늘어선 수변 산책로 근처에서도 우아한 보트가 지나간다.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과 빛을 받아 반짝이는 운하 그리고 울퉁불퉁하지만 고상한 맛이 일품인 돌길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독보적이다. 왕국의 면모가 물씬 풍겨 나는 궁전 건축, 특히 로코코 양식의 아말리엔보르성과 르네상스 양식의 로센보르 성을 바라보노라면 품위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와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도 확연히 다른 코펜하겐만의 운하와 해협의 정취를 어떻게 표현해야 누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화려하다고만 하기엔 웅장한 기풍이 더 우세하고, 아름답다고만 하기엔 특유의 세련미가 충만하니 말이다.


한스베그너, 핀율, 아르네 야곱슨 그리고 루이스 폴센의 나라 덴마크 아니던가. 물 한 방울 만치의 과장을 덧대면 코펜하겐 어디를 가도 디자인에 취할 지경이다. 산업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의 강국인 만큼 거리의 건축에도, 건물 내부 인테리어에도, 가구와 조명에도 품격이 가득하다. 정돈된 절제미를 지닌 선과 선명한 색채미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 한 데 뒤섞여 있는 듯한 타임리스(timeless)적 디자인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거리의 안팎이 온통 현대미술 갤러리라 해도 놀랍지 않달까. 코펜하겐의 ‘미’를 눈으로만 보고 느낀다면 그건 유죄다. 온갖 섬세함과 꼼꼼함 그리고 집요한 집중력까지 총 동원해야 한다. 여기서 멈추면 반칙이다. 오감과 육감을 분초단위로 일하게 하며 영혼에 채워지는 미감과 흥분과 전율을 누리고 즐겨야만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감탄을 자아내는 유려한 선과 색의 근저에는 과연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해 보게끔 나를 부추겼다. 


노르딕 퀴진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한창이던 때에 코펜하겐에서 만난 레스토랑 라디오(radio)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옛 라디오 방송국 근처에 위치해서 이름이 'Radio'라고 한다.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덴마크 고유의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 노르딕 퀴진의 선구자 격 레스토랑이라는 라디오에서 마지막날 밤 나 홀로 만찬을 즐겼다. 노마(Noma)의 공동운영자 클라우스 메이어(Claus Meyer)가 조금 더 편안하고 합리적인 가격대로 노르딕 퀴진을 맛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 셰프들과 함께 공동 창업을 한 곳이라고 한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노르딕 퀴진’이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있을까. 신선한 로컬 식재료로 계절성을 띤 특유의 노르딕 푸드를 코스로 맛볼 수 있었다. 기발함과 놀라움 가득한 음식이야 기대를 충족했지만, 한 명의 여행자를 위해 기꺼이 할애해 준 에너지와 섬세한 친절에 마음의 온도가 한껏 올랐다. 

이전날 만프레즈(manfred’s)에서 즐긴 런치에 이어 라디오에서도 맛본 비트 뿌리 요리는 코펜하겐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 황홀했던 식감을 어찌 묘사할 수 있을는지. 부드러이 씹히지만 뿌리의 힘이 있었다. 와인에 조린 듯한 맛과 풍미가 입 안 가득 맴돌고 향긋한 허브 딜과 튀긴 해초가 곁들여지니 혀 위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모든 코스가 끝난 후 절인배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견과류와 화이트 초콜릿을 디저트로 내어주셨다. 한 스푼에 각각의 맛을 하나씩 올려 모두를 한꺼번에 맛보기를 권해주신 셰프님의 말대로 하나씩 예쁘게 올려 한 번에 맛을 보았다. 감각할 수 있는 모든 장르의 맛을 느낀 최고의 디저트였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고 감동에 묻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코펜하겐은 극도의 세련미를 지닌 무표정의 얼굴을 한 신비로운 도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시크한 매력이 한 꺼풀 씩 벗겨질수록 오색찬란한 빛깔을 내뿜는다.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여행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아 끌어당긴다. 반복과 중복을 거부하고 다름과 독특함을 환영한다. 오래된 것을 경외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도시다. 단순함에 깃든 깊이와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완전함을 추구한다. 자연과 건축과 예술 그리고 사람 간의 건강한 관계를 고민하며 도시의 보존과 번영을 위해 느린 성장을 선호한다. 느릿느릿 도시를 거닐며 온갖 예술적 감각과 미감과 미식의 향연을 마음껏 누려보시라. 녹음이 짙게 물든 푸르른 공원에서 그리고 태양빛 아래 반짝이는 운하와 해협과 항구의 어귀에서 코펜하겐 특유의 시크함과 매력을 잔뜩 수혈받아보시라. 한층 감각적으로 바뀐 나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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