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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Oct 30. 2022

무한 무기력 상태

게으름이 아니라 무기력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을 헤아려 봤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아니, 한 달, 두 달, 세 달..... 사실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이 있음에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뒤로 미루고 미루며, 과연 내가 이걸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까. 결국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건 아닐까. 아니야, 포기는 하지 않고 미련을 뚝뚝 흘리며 잠시 방심하면 힘없이 놓칠 귀퉁이 끝자락을 슬쩍 잡고는 졸졸 따라가겠지. 따라가며 아마 그럴 거야. 내가 이걸 언제까지 붙잡고 있어야 할까. 손가락 힘만 슬쩍 풀면 될 텐데. 그럼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거잖아. 그렇지만 고민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살랑이는 바람 한번 불면 훅 꺼지는 불씨 같은 거라 나도 확신이 안 선다. 확신이 없는 바람은 결국 시야를 가리는 안개처럼 내 눈앞을 가리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면 환상처럼 사라져 있겠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민을 했다. 뭐가 문제일까. 사실 명확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고민의 고민의 고민을 하다, 이내 그 고민마저 말끔히 털어버렸다. 생각 자체를 하기 싫어. 단순한 뇌가 더 팽팽하게 당겨져 주름 없이 평평하게 회춘한 건가. 깊어가는 팔자주름이나 사라질 것이지. 나는 그런 인간이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은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다 귀찮다. 깊이 생각하는 것도, 세탁물을 개어 놓는 것도, 노트북 전원을 켜는 것도, 채소를 작은 크기로 다지는 것도, 잠이 드는 것도, 잠에서 깨는 것도,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순간적으로 소멸할 것만 같은 크기의 점이 되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한다.     


 

 이런 상태가 생각보다 꽤 오래 지속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나아질까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었다. 내 의지로 하는 일은 없어 아무것도 안 했지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하루의 대부분을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완전히 비워내고 그 상태를 지속하며 즐기면 나아질까 했는데,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확신을 못하겠다.      



 해야 하는 일이 나와 맞지 않아 그런가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무기력에 뒤덮여버렸다는 걸. 무기력을 처음 만난 건 21살 때였다. 그땐 아팠으니 그랬지. 이제 다 나았으니 무기력도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어딘가에 투명하게 숨 쉬며 가만가만 살아있다가, 한 번씩 존재감을 내비친다. 그 존재감은 멍한 머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곤 점차 온몸을 잠식하며 모든 게 귀찮아진다. 무기력과 게으름은 혼동이 되기도 한다. 생각조차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은 지금은 무기력이 맞다. 



 몸속의 장기처럼 자리 잡은 이것과 언제까지 공생해야 하는 걸까. 언제쯤이면 제거할 수 있을까.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신체가 만들어지는 순간에 감정도 만들어지면서 이것도 함께 따라왔겠지. 감정의 일부를 더는 유지하지 못할 장기를 떼어내듯 끊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감정의 덩어리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떠오르지 않게 다른 감정 안으로 꽁꽁 뭉쳐 넣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을 즐기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매우 예민한 형질이라 인식하는 순간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처럼.     



 근 몇 달 동안 비렁뱅이 같던 나의 상태가 이것 때문임을 안 지난 몇 시간 동안 그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무기력이었다. 조금씩 걷히는 것 같다가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지만, 자각하는 순간 한 발짝 물러나는 모양새가 목구멍을 화하게 만든다. 일단 지금은 이걸로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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