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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Nov 10. 2022

왜 쓰는가


 우리는 살면서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수많은 ‘왜’를 직면하다 보면, 그중 대답을 주저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왜 그러한가에 대한 질문에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리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러게. 내가 왜 그럴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거다.

 





 늦은 밤,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켰다. 얼마 전부터 잠들기 싫어 늦은 새벽까지 드러누워 꾸물거리던 참이었다.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는 중이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깨어는 있는데, 하기 싫으니 멍 때리며 시간만 보내는 거다. 그것도 지겨워질 때쯤 오랜만에 영화나 보자 하고 탭을 켰다. 뭘 볼까? 보고 싶은 건 많은데, 딱히 보고 싶은 게 없다. 30분쯤 넷플릭스 안을 정처 없이 유영하다 눈길을 끄는 이미지 하나를 발견했다. 온통 새하얀 눈이 덮인 산을 새빨간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등반하는 포스터였다. 제목은 에베레스트. 작품 소개를 보니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설명에 흥미로워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내용은 전문 등반가 팀이 비용을 받고 일반인을 상대로 일정 기간 훈련 후 에베레스트 등반을 돕던 중 발생한 사고를 다뤘다. 이유는 다르지만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이 함께 등반을 위한 훈련을 한다. 훈련 마지막 날, 드디어 에베레스트 정복을 하루 앞두었다.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하던 중, 누군가 묻는다.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려 하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맞추더니 동시에 큰 소리로 장난스레 외친다. “산이 저기 있으니까” 질문한 사람은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진짜 이유를 듣기 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들의 진짜 이유라고 느꼈다. 산이 저기 있으니까. 나를 이끄는 곳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요즘 ‘글을 왜 쓰려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나는 왜 쓰려하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유려한 문체를 가진 유명 작가도 아니고, 글로 수입을 내는 것도 아니어서 돈벌이도 안된다. 그렇다고 취미라고 하기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지만, 마음만 열정적일 뿐 행동은 느리기 그지없다. 고민은 답을 찾지 못하고 매번 같은 의문만 던지다 끝이 난다.


그날도 같은 생각을 조금은 하며 길을 걸었던 것 같다. 날이 좋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아직은 물들지 않은 초록 단풍나무에 얼핏 붉은빛이 눈에 걸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온통 초록색 이파리들 사이로 나뭇잎 하나만 딱 절반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가능한가? 자로 선을 그은 듯, 절반은 초록빛이고 나머지 절반은 빨간색이었다. 귀찮아서 사진 따위 찍지 않는 사람인데, 신기한 나머지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찰칵! 찍는 순간, 절반만 물든 단풍은 나의 마음과 닮아 있음을 알았다. 무엇이든 선택의 길목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 시간 다 흘려보내는 어정쩡한 자세. 치킨을 시킬 때면 양념과 후라이드를 고르지 못해 결국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키고, 짜장과 짬뽕을 시킬 땐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앞둔 것 마냥 깊은 고민을 하며, 비빔냉면과 물냉면 중 갈팡질팡하다 결국 비빔냉면에 물냉면 육수를 부어 먹는다. 고민을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것도 매번 같은 고민을.


그렇지만 단 하나라도 잎이 저렇게 새빨갛다면, 아마 물드는 중이 아닐까. 그 이파리만 좀 더 일찍 물이 들기 시작했을 뿐. 그러니까 결국은 모든 이파리가 새빨갛게 물들게 될 거다. 아마 나도 글을 계속 쓸지 말지 고민하다 멈춘 게 아니고, 글을 계속 써가고 싶지만 속도가 미적댈 뿐 완전히 붉게 변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시간이 흐르니 자연의 순리대로 수많은 나뭇잎 중 하나만 붉었던 그 나무는 어느새 불꽃에 휩싸인 듯 새빨갛게 바뀌었다. 나의 마음도 그렇게 물들었으면. 그때가 되면 글을 왜 쓰려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은 고민하지 않겠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이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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