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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Nov 11. 2022

새벽형 인간


 꿈속을 헤매다 눈이 번쩍 뜨였다. 갑작스레 뜨인 눈을 껌뻑이며 옆에 놓인 핸드폰 액정을 바라봤다. 새벽 5시 48분. 전날 늦게 잠이 들어 몇 시간 잠들지 못한 탓에 머리는 무겁고, 눈꺼풀은 한없이 감겨왔다. 이불 밖으로 내놓은 얼굴에 닿는 서늘한 공기에 비해 이불속은 어찌나 따뜻한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상태로 한없이 웅크리고 있고 싶다. 눈을 슬며시 감으며 ‘10분만 있다 일어나야지’라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한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벌써 20분이 지나 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젠 정말 일어나야 한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닌, 새벽까지 안 자고 있는 인간이상하게 자정을 넘어서면 내내 바닥을 치던 에너지가 한껏 솟아나고, 집중도도 높아진다. 세상엔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있고, 그중에 하나였던 나는 나의 패턴대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부지런한 주위 사람(특히 나의 부모님)은 절대 이해하지 못해 잔소리를 하고 답답해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예전처럼 살다가는 나는 물론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걸 깨닫고, 작년부터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여전히 밤에 일찍 자는 건 힘들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감정과 껴안아야 한다. 어제 늦게 잤으니 체력을 위해 조금만 더 잘까 하다가도, 차가운 공기에 옷을 껴입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 느껴지는 평안함을 생각하고. 직전까지 꾸었던 기억나지 않는 꿈을 이어 꾸고 싶어 다시 눈을 감다가도, 고요한 집중을 통해 피어오르는 에너지에 둘러싸이고도 싶다. 짧은 시간 해일처럼 밀려드는 생각을 팔다리를 위아래로 쭉쭉 뻗어 순식간에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게으른 몸을 옆으로 반쯤 뒹굴어 병든 노인처럼 서서히 일어난다. 방문을 나서면 침대와 나의 몸을 하나로 꽁꽁 묶어 엉겨 붙어있던 잡념들이 스르르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역시나 일어나길 잘했다는 기분 좋은 뿌듯함이 채워진다.     

 

 책상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쳐 있는 길 팔 티셔츠를 껴입고, 뽀글뽀글 두툼한 줄무늬 수면 양말을 신는다. 정수기에서 85도의 뜨거운 물과 냉수를 섞어 미지근한 물이 든 머그잔을 들고, 스탠드를 켠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부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다. 책을 읽기도 하고, 멍하니 쓸데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글을 끄적여 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은 하지 않는다. 뭐든 미루고 미루는 데에 달인이라, 본능적으로 중요도 순이 낮은 일부터 찾아 한다. 게으른 사람의 습성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기상을 계속 이어나가겠다 다짐한다. 밋밋하고, 정체해 있던 시간이 앞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으니까. 하고 싶은 게 생겼고, 배우고 싶은 게 생겼고, 이루고 싶은 게 생겼다. 이게 뭐라고 대단한 것 같이 구냐 하겠지만,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무기력하던 나에겐 캄캄한 심연에서 숨 쉴 수 있는 산소와 같다. 산소 방울이 하나하나 몸속에 스며들며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이제 나에게 새벽은 포근한 이불속에서 나갈까 말까 나태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 아닌, 자유롭게 유영하는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시간 속의 나를 상상하면 5분만, 10분만 더 자야겠다는 생각은 이내 사라지겠지. 라고 착각한 것 같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버티며 노는 걸 좋아하는 새벽형 인간이라, 부지런한 새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누려야지 하면서도 자정에 가까워 오면 눈이 말똥말똥 해진다. 새벽 기상에 성공하면 그날 하루는 기분이 좋다. 하루의 시작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날은 그보다 많기에 패배감에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야지 하면서 새벽까지 잠들지 않는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 속에서 동력을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하겠지 하는.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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