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인간 Sep 15. 2024

소심한 오지라퍼


 일기예보에 없는 예상치 못한 비로 길거리에는 우산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일기예보는 챙겨본 적도 없고 왜 봐야 하는지 모르겠는 나도 당연히 우산이 없어야 했지만, 가방에서 우산 하나를 찾아내었다. 며칠 전 사용한 우산을 귀찮다는 이유로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가방에 방치한 덕분이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지 않아도 되니, 돈 굳었다고 좋아하며 우산을 힘껏 펼쳤다. 그 사이 우산과 마찰하는 빗소리가 토독토독에서 투툭투툭이 될 만큼 빗줄기가 굵어졌다. 

횡단보도 앞에 다다랐을 때 작은 손바닥을 머리 위로 올려 쏟아지는 비를 막아보려 하는 중년 여성분이 눈에 들어왔다. 소심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산을 씌워드릴까. 뭐라고 말을 하면서 씌워드리지. 요즘 세상도 흉흉한데, 모르는 사람이 이러면 오버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동안 신호등은 초록색의 보행 신호로 바뀌었고, 중년의 여성분은 머리 위로 펼친 손바닥이 무의미하게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앞서 뛰어가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오지랖과 소심함이 동시에 자라난다. 예전엔 타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오지랖이 생기며 눈에 띈다. 백팩을 제대로 닫지 않아 활짝 열린 채 걸어가는 사람을 보거나, 옷에 먼지나 머리카락이 묻어 있거나, 바지가 엉덩이에 끼었거나 하면 다가가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작디작은 소심한 사람. 말을 건네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걱정할 뿐이다. 깃털 같이 움직일 수만 있다면 살포시 다가가 눈치채지 못하게 가방 지퍼도 닫아주고, 먼지도 떼어줄 텐데.(바지는 큰일 날 수도 있으니 넘어가자)

가끔은 퇴근길에 마주한 터벅터벅 걸어가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이나 한 손엔 4~5살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어깨엔 아기 띠를 한 엄마를 볼 때면, 다가가 토닥토닥 해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면 미친자로 몰릴 수도 있으니, 마음속으로만 응원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뒤늦은 오지랖과 소심함이 뒤엉켜 마침내 ‘소심한 오지라퍼’가 되었다. 소심한 오지라퍼의 정체는 슈퍼 히어로처럼 본인만이 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사람들을 돕는 정의의 용사라니! 하지만 우리는 소심하니까, 아무도 모르게 소소하게 도와주고 작게 응원한다. 어쩌다 소심보다 오지랖이 강한 순간에는 허세 가득한 래퍼처럼 고개를 45도로 꺾고 “드랍더비트!!!”라고 외치듯 오지랖을 떨고 싶지만, 다행히 소심한 오지라퍼는 상상만 할 뿐이다.     


 ‘소심한 오지라퍼’라는 단어에서는 왜인지 폴폴 날릴 것 같은 가벼움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작은 마음과 약간의 쓸데없음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가볍디가벼운 마음이 민들레 홀씨 마냥 어디로든 날아가 곳곳에 퍼진다면, 고담시 같은 이 세상도 살만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잉여롭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