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 지 1~2년 차, 혼자 사는 것을 와 닿게 해주는 것은 쓰레기였다. 매일 쌓이는 삼다수 2L 페트병을 필두로 컵라면 용기, 택배 박스, 포장지, 비닐봉다리 기타 등등. 잠시 정신을 놓으면 5평 남짓 원룸은 곧장 쓰레기장이 됐다. 침대 옆에도 쓰레기, 책상 위에도 쓰레기, 부엌 가득 쓰레기. 1-2주 분리수거를 까먹었을 뿐인데 가혹하다 싶을 만큼 빠르게 축적됐다. 누구 보여주기 창피할 정도의 방 상태가 되기 십상이었다(사실 항상 그랬다).
‘혼자 사는데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엄마는 5명 사는 집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던 거지?’
스스로의 쓰레기 생산 능력에 감탄하며 가사노동의 신성함을 확인했다. 한 번씩 마음을 먹고 쓰레기를 추슬러 모으면 놀라움은 배가됐다.
‘와, 이것들을 조립하면 내 몸보다 크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분리수거실에서 쓰레기를 슉슉 던졌다. 여름이면 벌레들이 꼬여있는 분리수거실에서 숨을 참고 쓰레기를 던졌고, 겨울이면 슬리퍼만 신어서 얼어가는 발가락을 꼬무려가며 쓰레기를 던졌다. 그렇게 한 계절 한 계절을 보내며 혼자 산다는 것은 혼자 처리할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배워갔다.
어느덧 혼자 산 지 10년 차. 10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혼자서 처리할 것이 물리적 쓰레기뿐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지난 11월, 여느 때처럼 혼자만의 방으로 혼자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갑작스런 비를 맞는 것쯤이야 혼자살이 9년 차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짬밥 찬 1인 가구원으로서 의연하게 외투를 뒤집어썼다. 빗줄기가 꽤나 셌지만,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었다.
맞은편에서 딸내미 우산을 챙겨서 데리러 가는 듯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오, 나도 초딩 땐 엄마가 저렇게 데리러 와줬었지.’
생각하며 갈 길을 갔다. 외투를 제외한 옷과 머리 사수에 성공한 채 집에 도착했다. 젖은 외투는 팡팡 털어내고 샤워를 했다. 머리를 위잉 말리고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자야지 생각을 하던 그때, 왈칵 눈물이 나왔다. 손쓸 새도 없이 방울방울. 몸을 일으켜 앉아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뚝뚝 떨어졌다. 아이씨 이렇게 된 거 나도 모르겠다 싶어서 우에에엥 소리도 내버렸다. 코도 힘껏 풀어가며 으아아아으에에엥 28살의 나는 8살 애처럼 펑펑 울었다.
점차 울음이 잦아들고, 슬 머쓱함이 찾아왔다. 9년 간 혼자 사는 삶을 지탱해오던 이성적 자아가 돌아온 것이다.
‘어이없네 방금 왜 운 거냐~’
이성적 자아는 방금의 행동을 머쓱함으로 나무랐다. 그날 밤은 서러움과 머쓱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잠 못 이뤘다. 잠 못 드는 새벽은 익숙했지만, 그 밤의 기분은 조금 낯설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 끝에 맞이한, 혼자 사는 것 본연의 외로움을 절절하게 느낀 밤이었다. 그 후 일주일은 나약한 멘탈 주간이었다. 아무나 붙잡고 의지하고 싶을 만큼, 이성적 자아가 나무라지 않는다면 대차게 흑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나약하고서야 나는 보통의 나약함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감정적 쓰레기도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외로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 뜻대로 되지 않은 하루 끝의 찝찝함,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뭐 그런 것 전부. 혼자 잠들고 혼자 눈 뜨면서 어느새 쌓여있는 감정적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것이다. 삼다수 페트병처럼 어디 쓸어 모아서 던져버리면 좋겠지만, 형체도 없는 놈들이라 영 시간이 걸린다. 작년의 일처럼 일주일 정도는 꼬박 들여야 없어질까 말까다.
인간적 온기라던가, 가사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 할 사람이라던가, 어쭙잖은 대화라도 건넬 누군가 있으면 더 나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1인 가구의 세대주니까 그에 맞는 책임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머쓱함으로 나무라기도, 쪽팔린 기억을 재생함으로써 채찍질도 가하지만, 나 아니면 나 챙겨줄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세대주로서 세대원을 챙겨가며 지내야지 싶다. 그래야 쓰레기도 원활하게 처리하고, 어쩌면 언젠가는 감정적 쓰레기를 조금 덜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우쭈쭈 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가혹하지는 않게, 나무라지만 말고 쬐끔 당근도 주면서. 그렇게 성능 좋은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갖춘 1인 가구를 꾸려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