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방 May 25. 2020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아빠는 항상 튀었다. 체육대회에서 제일 크게 딸내미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아빠, 가장 활짝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웃는 것도 아빠, 주변에서 다 쳐다볼 정도로 응원하는 것도 아빠였다. 피아노 연주회에서 누가 보건 말건 피아노 앞까지 튀어나와 내 사진을 찍다 저지당하는 사람도 아빠였다.


  아빠는 군인이었다. 배에서 울리는 큰 목소리와 부리부리한 눈빛을 가진 장교. 매주 있는 부대 회식에서 누구보다 크게 말하고, 크게 웃고, 크게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술을 많이 마시고 가장 눈에 띄게 취하는 사람도 물론 아빠였다. 술에 취한 아빠가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진짜 비밀이 있는데’로 시작하던 말이다. 


 "나는 사실 안드로메다에서 왔어."


  취한 아빠는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런 말을 했다. 주변에서 비웃는 건 아빠에게 중요한 게 아녔다. 아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여기의 사람들과는 다른 별에서 왔다고 생각할 만큼.


  창피함을 모르는 나이일 때조차 그런 아빠가 살짝은 창피했다. 피아노 연주회에서도, 체육대회에서도, 심지어 어른들의 회식에서도. 취하지 않아도 튀는, 취하면 더더욱 부끄러울 정도로 튀는 아빠는 왜 저럴까 생각했다. 유난히 팔불출인 것도, 유난히 다혈질인 것도, 유난히 취하는 것도, 심지어 유난히 기도하는 것도.


  어릴 때는 내게 아빤 한 사람뿐이니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열댓 살쯤 되자, 이제는 다른 아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는 술을 저렇게 마시지 않는 아빠도, 잔뜩 취해 별에서 온 얘기를 하지 않는 아빠도, 무엇보다 딸을 창피하게 만들지 않는 아빠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술에 잔뜩 취한 날, 30번째쯤 듣는 안드로메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사실 안드로메다에서 왔어. 그리고 너는 그런 내 자식이니까 또 얼마나 특별하겠어.’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빠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에 유난인 아빠는 군 생활도 유난스럽게 했다. 남들이 좋다는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가 만류하는데 직업군인이 된 것부터 튀는 일이었다. 부대의 무언가를 바꾸려 했고, 결국 모두의 미움을 샀다. 어디서나 시끌벅적 관심을 끌던 아빠에게 돌아온 것은, 징계와 더 이상 부대 조직에 남아있을 수 없는 처분이었다. 중학생이던 내 눈에 어디서든 기세등등하고, 튀는 사람이던 아빠가 가로막힌 것은 처음이었다.


  더 이상 군복을 입지 않는 아빠도 여전히 바보 같았다. 잠시 기업에서 일할 때도, 그 일을 때려치울 때도, 다른 구상을 할 때에도 항상 기세등등했고, 항상 튀었다. 여전히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지구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결국은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배우게 된 아빠를 보고 할아버지는 두고두고 구박을 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다고, 리더십이 있다고 난리를 치던 자식이 가장 멍청했다고. 그런 할아버지 앞에서도 아빠는 바보같이 웃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아빠가 뭘 하는지는 내 눈에 띌 일이 없었다. 해야 할 공부와 친구로 가득 찬 일상에 아빠는 관심 밖이었다. 가끔 야자가 끝나고 취해있는 아빠를 발견하면 ‘아빠는 여전하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빠는 여전히 팔불출이었고, 유난이었고, 취해있었다. 어느 순간 별에서 왔단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래됐단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고3의 어느 날, 야자 끝나고 돌아오니 아빠는 또 취해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달랐다. 평소처럼 수염 따갑게 뽀뽀하지도, 활짝 웃지도 않았다. 그저 뻘게진 얼굴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나도 내 방으로 간지 몇 분이 지났을까,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은수야 너는 왜 아빠가 실패한 것 같아?"


바보 같은, 별에서 온 아빠한테 평생 듣지 못한 질문을 듣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남들보다 뭐든 잘했고, 무슨 활동이든 열심히 했고 항상 대장이었고, 멀쩡하게 생기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던   아빠는 실패했어. 왜인 것 같아? 너 생각이 궁금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빠는 안방으로 가버렸다. 어린 마음에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은 걱정되다 못해 무서웠다. 잠깐 말을 고르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해주기로 했다.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빠 나는 아빠를 진짜 사랑해 아빠가 뭘 해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빠는 말했다. 

  

  "그게 아니야. 아빠는 왜 실패한 걸까."


  그리고 아빠는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별에서 온 사람, 자기가 가장 특별했던 사람, 특별한 자신이 낳은 자식이 너무 특별했던 사람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뒷모습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살의 나는 조금도 이해하기 어렵던 그 뒷모습을,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은 짐작해보고 있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나는 얼마만큼의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얼마만큼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뒷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혼자 쓰레기를 처리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