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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방 May 29. 2020

거리두기가 필요해

 


“현서씨 진짜 짜증나는 스타일인거 알아요? 호홓호호ㅎ홓”



 그녀와의 첫 대화였다. 혹시 단어를 잘못 들은 건 아닐 지 의심했지만, 확실히 ‘짜증’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때는 입사한 지 3개월 되었던 시점. 장소는 회사 내 작은 탁자. 함께 있던 사람은 당시의 천사같던 차장님. 차장님이 갑작스레 내 칭찬을 시전하셨고, 그 이후에 저 문장이 콧소리 얹은 돌덩이처럼 날아왔다. 갑자기 퍽 하고 맞았지만 원래 말씀을 저렇게 하시는 분인가? 하고 넘겼다. 돌아보니 이후의 일들에 대한 완벽한 예고였다. 


 한달 뒤, 그녀는 우리 팀으로 발령났다. 나보다 직급은 낮지만 15년은 더 근무한 선배라는 애매한 위치였다. 그러자 복수의 선배에게 메신저가 왔다. 내용은 주로 현서씨 조심하란 이야기였다. 말도 별로 해보지 못한 다른 팀 선배의 걱정에 반은 의아하면서 반은 궁금했다. '대체 어떤 분인거지?' 그리고 디데이. 그녀는 예의 그 콧소리로 홓홓홓 웃으며 우리 팀으로 왔다. 


 한 달을 지내본 결과, 괜찮았다. 첫 대화처럼 묘하게 말이 이상하다던가, 쏘아보는 것 같다던가,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기분 탓이겠지! 라고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왜 사람들이 걱정한 지는 알겠지만, 뭐 그리 나쁘진 않다.’라고 탐색을 마칠 때 즈음, 무언가 시작되었다. 



 여느 때처럼 출근하며 어려운 마음을 다스리던 날 아침이었다. 자리에 짐을 두고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그 좁다란 복도에서 나는 화장실로, 그녀는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꾸벅하며 ‘안녕하세요!’ 했는데, 손에 텀블러를 든 그녀는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잘 들려서 짝꿍과 떠들어도 혼자 혼나던 내 목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을 것이었다. 의아한 상태에서 넘어갔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인사를 하루에 3번 씹히자, (이미 못 봤을 리 없겠지만) 더 적극적으로 얼굴 쪽을 바라보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보기도 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씹기 시작했다. 



 인사 다음은 업무 대화였다. 파티션 너머로 그녀의 귀에 이어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일어나서 목을 가다듬고 ‘선배님~’ 불렀다. 묵묵부답이었다. 열린 귓구멍에 모니터를 보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은 미동도 없었다. ‘선배님.’ 한번 더 크게 불렀다. 미동도 없었다. ‘선배님!’ 사무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목소리로 높여 다시 한 번 불러제꼈다. 


 그러자 그녀는, 아주 천천히. 정말 아아주우 처언처언히이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놀랍게도 표정은 내가 부른다는 사실 자체로 화가 나 있는 듯한 싸늘한 표정이었다. 마치 ‘너 까짓게 감히 나를 불러?’라고 짜증내는 듯한 얼굴로 나를 쏘아보는 그녀를 보며 나 역시도 속에서 뭔가 불끈했다. ‘시간외 근무 확인 부탁드립니다.’라고 업무에 필요한 확인을 하는데 3번을 씹히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상황은 지속되었다. 그녀는 내 인사를, 업무 대화를 완전히 씹었고 때에 따라서 좀 더 다정하게 씹던가, 재수없게 씹던가 왔다갔다 했다. 다정하게 씹는다함은 3번쯤 불렀을 때 못들었단 식의 핑계라도 대는 씹음이었고, 재수없게 씹음은 내가 부른 것 자체를 힐난하는 듯한 완벽한 씹음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씹히면서 내 안엔 은근한 상처가 쌓여갔다.


 객관적 상황은 명백했다. 나는 회사에서 싹싹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지 못했던 신입사원으로서 그녀에게 싹싹한 후배로서의 도리를 다 했다. 한 달 사이에 행동이 바뀌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돌변했고 나는 처참히 씹히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억울하고 어이없었다. 그치만 동시에 원인을 찾아내려고 머리가 바빴다.  ‘도대체 왜? 왜 그녀가 나를 이리  씹지?‘


 원인찾기는 주로 나를 향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뭐 말실수했나? 내가 뭐 재수없게 굴었나? 그녀의 첫 대화처럼 내가 ‘짜증나는 스타일’인건가? 물음표는 늘어가면서 나를 샅샅이 털었다. 상황이 명백한만큼 회사 동기들은 모두 그녀가 이상하다고 욕했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머리 속에서 원인을 찾으려들 땐 나 자신에게로 화살이 돌아왔다. 내가 뭘 잘못한거지 대체???? 물음표는 끝나지 않았다.



 답은 시간이 알려줬다. 몇 주를 이미 쌩깔대로 다 깠던 어떤 날, 갑자기 화사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가 있었다.


 “어머 현서씨~”


 쌩깜을 당한 이후로 듣기 힘들었던 홓홓홓 콧소리와 함께. 세상 활짝 웃으며 나를 붙들고 재잘대는 그녀는 공포 그 자체였다. 몇 주 간 째려보고, 씹고, 무시하고, 업무 대화에도 왜 말 거냐는 듯이 하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팀장님이 글쎄 홓홓홓호홓ㅎ 아우 나는 현서씨 힘들까봐서 홓홓호호호홓”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모르게 콧소리를 섞어가며 팀장님 욕을 하는 그녀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장착한 사회적 표정과 리액션도 발동하지 못했다. 바보같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그 충격적인 웃는 낯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뒤로 그녀는 종종 돌변했다. 디폴트 값이 무시이지만, 한 번씩 기분이 좋을 때면 웃는 낯으로 재잘댔다. 몇 번의 반복으로 1년을 보내고야 나는 내 잘못이 없음을 인정했다. 이 문제의 원인은 내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의 감정의 기복이든, 개인적인 다른 문제이든 그녀 안의 어떤 것이 나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 쉬운 답을 오랜 시간과 시간만큼의 상처를 건너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팀장, 동기, 옆 팀 사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내 잘못이 아님을 확인 받아도 뭐랄까,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는 내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왔던 것이다. 



 관계에서 무언가 어긋나면 원인을 내게서 찾으려는 사고회로. 누구나 갖고 있는 회로일텐데, 나의 경우에 조금 강한 편이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색할 때면 입을 열어야 할 것 같은 요상한 책임감, 상대방이 언짢아 보이면 곧장 나의 모든 요소를 검토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찾는 집착 뭐 이런 것들이 해당된다. ‘관계의 문제’가 ‘나의 문제’로 치환되는 사고 방식. 이 사고 방식은 몹시 피로한데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아마도 

 1. 노오력하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2. 나는 갱생의 대상이다. 

 라는 머리 속 대전제에서 비롯된 게라 추측한다. 전제를 바탕으로 관계의 방점을 너무 내 가까이에 두었다. 관계는 나의 노력에 따라 더 나아질 수 있고, 나를 무언가 더 나아져야할 필요가 있는 대상으로 보는 것. 이게 받아야 할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키워주는 성능 좋은 스트레스 증폭기가 되었던 것이다.



 “선배님, 방금 총무팀 김영석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도 그녀는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 말을 씹는다. 잠깐 싸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가 자리에 도로 앉을 뿐이다. 잠시 또 감정이 뒤틀리지만, 또 아이씨 내가 뭐 잘못 말했어? 싶지만. 또 켜지려는 스트레스 증폭기의 전원을 끄며, 이제는 거리를 두려 한다. 문제의 원인과 나 사이의 거리, 나의 문제와 관계의 문제 사이에 거리두는 연습을 한다. 내 문제 아니야 ㅈ까~ 찌질하게 속으로 읊조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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