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입장에서 조금 답답한 학생의 유형이 있다. 느리게 배우는 학생이다. 여기서 느리다는 의미는 이해력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느린 학생이다. 예를 들면 이런 학생들은 말도 느리게, 쓰기도 느리게 한다. 말을 느리게 하니까 대답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쓰기도 느리게 하니까 필기도 느리다. 요즘에는 칠판보다는 텔레비전을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수업이 가끔 지체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학생일수록 천천히 계속 열심히 한다. 기억에 남는 학생 중에 초급 1에서 수업을 할 때 만난 학생이 생각난다. 중국 국적의 여학생이었는데 자모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에 와서 처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물론 고향에서 자모를 공부했을 것이다. 단지 배움의 속도가 느릴 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자모를 배우면서 이미 자모를 알고 있는 학생들은 지겨워했지만 그 학생은 꾸역꾸역 쫓아왔다.
단어와 문법을 배우는 시간이 오자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더 늦어졌다. 2주가 지났지만 그 학생은 계속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느렸다.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길래 가서 보니 이른바 '빽빽이'를 하고 있었다. 빽빽이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조금 다른 방법으로 단어 외우는 것을 가르쳐 줬더니 그다음부터는 내가 말해준 방법으로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1급의 중간시험은 쉬웠는데 그 학생은 유급을 면할 정도였다.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서 안타까웠지만 그 학생은 묵묵히 계속했다. 10주 내내 똑같은 속도로 공부하던 그 학생은 중간시험보다 기말 시험을 잘 봤고, 성적도 중상위권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흐른 뒤 나중에 만났을 때 대학교 간다고 나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여전히 말은 느렸지만 자신이 연습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말할 정도였다.
어디에서나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끝까지 하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