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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박 Sep 08. 2020

퇴사 D-66 : 넌 왜 여기 왔냐?

35.

단군이래 최대 최고 역대급 스펙. 대한민국 밀레니얼 및 Z세대에게 따라붙는 찬사 혹은 꼬리표다.

취업 문턱은 매분매초 좁아만 지는데, 거기에 들어가려 들이는 노력도 천정부지로 올라가니,

신입사원들의 학력 경력 스펙은 끝을 모르고 대단해진다. 

인턴을 모집하는 공고에도 인턴경력이 우대사항으로 나와있는 세상이다. 


경제가 호황기이자 고속성장기였던 시기에 입사한 현재의 시니어 직급들에게 확실히 이는 익숙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지금의 2030이 '스카이캐슬'을 시청하면서 "아니 대학 가는 것에 저렇게까지 목숨 거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면접 때도, 면담 때도, 가끔 회식 자리에서 상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왜 여기에 왔냐?" "더 좋은 데 가지 왜 들어왔냐?"

오히려 나는 되묻고 싶다. "그럼 도대체 어딜 가라구요?"


지금 다니는 회사, 쉽게 쉽게 그냥 원서를 종이비행기로 날려 사뿐히 들어온 곳인 것 같은가? 


'사'자 직업도 아닌 회'사'원이 되기 위해 대학생들이 투입하는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학 간판이나 전공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외국어 성적, 자격증,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등 이력서에 단 한 줄 한 글자라도 더 적기 위해 노력한다. 1990년대 초반의 3:1 입사 경쟁률은 이제 200:1, 300:1을 넘어서고 있다. 


힘들게 얻은 직장이기에, 사실 그 악명 높은 '열정 페이'에도 크게 불평을 할 수가 없다.

2020년 기준 20대 전체를 아울렀을 때 전체 평균 급여는 한 달에 약 206만 원이라고 한다.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1년을 모으면 약 2500만 원이고, 4년을 그렇게 모아야 1억 원이다.

이나마도 세전 기준이고, 전부 저축한다는 가정을 해야 하니 1억 모으기란 엄청난 도전인 것이다.


2020년 기준 전국 평균 전세가는 1억 9천만 원, 서울에 살고 싶다면 3억 6천만 원은 필요하다.

아니, 4년을 넘게 고생해서 악착같이 긁어모아도 대출이나 주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살 집도 구할 수 없다.

이러니 20대의 60%, 30대의 50%가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소위 '캥거루족'일 수밖에 없다.


한 달에 20대 신입사원에게 600~700만 원으로 쥐어주는 직장이 있는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신입사원들은 그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도 캥거루족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간절히 원해서 들어왔다.

우리의 스펙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저 수많은 캥거루족들이 현 세태를 대변하고 있다.

이 자리가 아쉽고, 점점 팍팍해지는 기업과 사회에 항상 목마른 상태로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나가고 있다.


YOLO를 욕하지 마라. 비트코인에 뛰어들었던 젊은 불나방들을 욕하지 마라.

어차피 이 임금 고스란히 다 모아도 내 능력으로 지를 만한 것이라곤 해외여행 티켓이나 중형차 정도다. 

마치 현재의 직장이 나의 하향지원인 양, 손쉽게 들어온 것인 양 폄하하지 마라.

칭찬의 의미로라도 그것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너는 왜 여기서 이런 보상에 만족하며 일하고 있냐?"라는 말은 누가 들어도 기분이 썩 좋은 표현은 아니지 않은가. 


나의 다음 세대, 

그러니까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나, 박지성보단 손흥민을 눈에 담으며 살아온 세대는 더욱 다를 것이다.

학력, 외국어, 자격증은 물론이고, 기상천외한 대외활동, 심지어는 코딩능력까지 기본으로 갖추고 Job Market에 뛰어들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나보다 더 많이 벌고 더 풍요롭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회와 국가도 전체적으로 부유해질 것이라고 본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 '인재'보다 나은 자원은 없다.


"적당한 스펙에, 이런 자리에도 감사하게 열심히 일하는 단순한 애들만 데리고 일하고 싶다."라고,

한 상사가 어떤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머릿속에 맴돈다. 그리고 기분이 너무나 나쁘다. 일하는 기계를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소나 노새같은 가축을 원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길 바란다. 스펙 점수가 있다면, 오름차순으로 정렬해서 원하는 '단순한' 애들만 채용해서 일하길 바란다.

노력이 부정당하는 사회는 병들었다고 한다.

노력이 부정당하는 회사라고 다를 이유가 있는가?


종박의 퇴사까지 앞으로

D-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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