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는 나를 위한 의식이었다.
나는 설날이라던가, 추석이라던가, 크리스마스라던가, 이런 명절에는 꼭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그동안 바빠서 못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한다. 주로 고마웠던 분들, 연락 못 드려서 마음이 쓰이고 뭔가 죄송했던 분들에게 특히 이런 명절에는 ‘좋은 게 좋은 거니까’의 마법을 빌려 스리슬쩍 연락한다. 집돌이에 바쁜 척이 심한 나로서는 오늘 안부를 많이 전하면 전할수록 죄책감을 더 많이 더는 기분을 느꼈다. 엄청난 자기 합리화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 정도가 심각해서 크리스마스에는 하루 종일 연락을 돌려댈 정도였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평생 용서를 못 받을 것 같아서였다. 다들 까먹지 않았다고. 그대들과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고, 전만큼 자주 보지 못함에 있어서 나도 많이 아쉽다고. 마음속에 있는 미안함을 이런 식으로라도 용서를 구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근데 죄책감을 기반에 두고 얘기하니 재미가 없었다. 반가움도 잠시 뿐. 그냥 추억팔이를 하는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한 번씩 명절에 생각나면 연락해서 추억팔이 하기.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의 의식처럼 굳어버렸다. 죄책감에 의해 연락하고, 옛날 얘기하고. 그게 다였다.
근데 이제는 연락을 아무리 연락하려고 해도 못 챙기고, 못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생겨버렸다. 언제 봤는지도 까먹은 사람도 많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 얼마 만에 본거지?" 하고 내가 “한 반년 됐나? 1년 됐니?”라고 말했을 때 “우리 한 3년 됐어 뭐라는거얔ㅋㅋ”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알아버렸고, 또 친구들도 전만큼 섭섭해하지 않더라. “바쁜데 뭐 어떡해 ㅎㅎ 이렇게 그래도 가끔이라도 얼굴 보고 하니까 좋지 뭐”. 이런 지인들과의 관계만 계속 유지가 된다. 정말 많은 것들을 공유했었던 친구들과는 조금씩 사이가 멀어지고, 점점 적적하고 먹먹한 사이가 되어가는 요즘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이해하기에, 서로에게 전만큼 기대가 없어진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면서도 슬픈 요즘이다. 하지만 좋았던 것들까지도 다 놓아버리기에는 같이 쌓아둔 많은 것들이 너무 아쉽다. 조금만 힘을 내면 앞으로 더 재밌는 것들을 얘기하고 나눠볼 수 있을 텐데, 사실 내가 '너무 과거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안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안부 인사를 조금씩이라도 일부러 해보려고 한다.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기에 기대는 줄일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 오늘 하루는 푹 쉰다.
좋은 커피를 마신다. 가을 해를 쬔다.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추석 연휴는 기니까! 그리고 그렇게 축적한 에너지로 안부 연락을 다시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좋은 추억을 나눴던 소중한 사람들과 죄책감에 의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아닌 행복하고 재미있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며 안부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