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01
나 이번 여름부터 코리빙 하우스에 살게 되었어.
2019년, 푹푹 쪄도 마스크를 안 쓰고 돌아다니던 때 테드는 홍대에 있는 한 코리빙 하우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오피스텔도, 빌라도 아닌 코리빙 하우스라니. 사람들은 코리빙 하우스가 뭔지 물어봤다. 딱히 머릿속에 떠오른 그럴싸한 정의는 없었다. 그냥 TV에 나올법한 단어들을 적절하게 배열하며, 젊은 사람들끼리 부엌이랑 거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사는 그런 집이라고 설명했다.
거기 완전 짝이네. 너는 남자 몇 호니?
같이 유학을 했던 형은 진짜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을 쳤다. 하트 시그널이 이미 시즌 2가 끝난 지도 1년은 더 됐을 때였는데 말이다. 남녀가 같은 공간에 산다고 한다면 그런 거밖에 생각이 안 드나 보다.
1년 동안 함께 살게 된 친구들은 모두 재밌고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친구, 자기 패션 브랜드를 가진 친구, 마음 챙김을 생활처럼 하는 친구, 타로를 볼 줄 아는 친구, 인물 사진을 찍는 친구, 유튜브를 하는 친구 등등 어떻게 이렇게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다 한 건물에 모이게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마치 신입생들끼리 MT에 온 것 마냥 모든 것들이 새롭고 또 신선했다.
우리는 분명 어릴 때부터 매직 키드 마수리, 논스톱, 거침없이 하이킥 등 수많은 신기한 가족 및 주거 관계를 목격하고 보면서 자라왔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는 집은 왜 상상하기 어려운 걸까? 뭐 물론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을 기대하고 입주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이내 아까 그 형이 좀 올드했을지언정,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잠옷 차림으로 거실에 물 뜨러 나오는 사이에도 썸도 생겼고 틀어진 관계들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물론 그냥 가족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MT의 설렘은 오래가지 않아 마치 동아리방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과 익숙함으로 계절과 함께 짙어져 갔다.
하루는 눈이 얕게 오던 그런 겨울 저녁이었다. 테드는 출장을 다녀오면서 종종 동네 주류 점에서 와인을 사갖고 왔는데, 그날도 그냥 그런 날 중 하루였다. 같이 마실 약속을 한 것도, 단톡방에 와인을 사온다고 나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 것도 아녔다. 그냥 그렇게 와인을 들고 거실에 들어가니 한 6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 앉아서 방금 배달된 것 같은 피자를 막 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밥은 먹었어?
그냥 저 한마디 말을 듣고 나니 테드는 이렇게 서울에 집이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다. 뭔가 약속을 하고 만나지 않아도, 어쩌다 마주치기만 해도 반가운 가족들이 생겼구나.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일정하게 공유하는 공간이 생겼다고 느꼈다. 입주 기간이 지나 모두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나갔지만 아직도 한 번씩 얼굴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경험 때문에, 아직도 그럴싸한 정의는 없지만 테드는 코리빙을 하고 있다.
[코리빙 라이스프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