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이 바른 사람은 그 성(性)도 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희로애락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그 성(性)도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에 쌓여 있는 것은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밖에 나타난 것을 따라 그 속에 쌓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결이 흐리면 그 근원이 반드시 맑지 못한 것이므로, 물결의 흐름을 보고 그 근원의 맑고 흐림을 알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데 백성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선(善)이 아니고, 내가 싫어하는데 백성이 싫어하지 않는 것은 악(惡)이 아니다. 이는 한 사람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가지고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뭇 백성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뭇 악인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참된 선과 악이 아니다. 참으로 선한 사람(善人)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바로 참된 선과 악이다. 이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수가 많거나 적은 것을 토대로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그 사람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서 그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걸러내어 선과 악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평생의 선과 악은 습관하는 바에 달려 있고 일에 임하는 선과 악은 '미루는 바'(推, 체험이나 검증된 지식 등을 통해서 이미 알려진 것으로써 자신 및 다른 것을 비추어 헤아림)에 달려 있다. 그런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각각 선과 악의 구분이 이미 그 마음속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선을 미루는(推) 사람은 끝내 그 선을 따르고 악을 미루는(推) 사람은 반드시 그 악(惡)을 택한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9), 『기측체의(氣測體義))/추측록(推測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