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최근에 읽은 글이나 정보 중에서, 단어는 알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 즉 정확하게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가?
글을 전혀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상태를 일컬어 '문맹(Illiteracy)'이라고 한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한다. 누구나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글을 읽고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점점 더 자주 목격된다. 흔히 ‘심심한 사과’, '사흘 후', 소정의 절차' 등의 사건처럼 지위고하, 학력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단어의 개념 또는 맥락적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거나, 제품의 설명서 또는 공공 문서를 읽고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뉴스기사나 정보의 핵심 논지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글은 읽고 들을 수는 있지만 뜻은 모른다.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있지만 막상 내용을 이해하는 머리는 없다. 이는 단순한 무지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새로운 난제인 실질적 문맹의 문제다. ‘실질적 문맹’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수 없는 전통적 의미의 문맹과는 다르다. 이는 "문자를 해독할 수는 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을 문해력(文解力) 또는 독해력(讀解力)이라고 한다. 문해력이란, 음성적 읽기를 넘어 의미적 읽기까지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유네스코는 1956년부터 문해력을 글을 읽고 쓰는 기초 능력인 '최소 문해력'과 글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 '기능적 문해력'으로 구분했다. OECD는 문해력을 "사회의 참여, 개인의 목표 달성, 지식과 잠재력 개발을 위해 쓰여진 텍스트를 이해하고 평가하며 활용하고 참여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즉 '문해력의 결여'를 “자신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효율적으로 읽고 쓰는 능력의 결여”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문해력의 결여는 실질적 문맹과 직결된다. 실질적 문맹은 배움의 깊이나 정도, 학력과는 무관하다.
실질적 문맹은 개인의 사회, 경제 활동 참여에 어려움을 초래하며, 허위 정보에 취약하게 만들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문해력이 낮은 사람들은 정치 참여나 정치 발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유네스코의 기능적 '문해력 결여'의 정의를 '실질적 문맹'으로 가정하였을 때,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 성인의 실질적 문맹은 16. 6%다(교육부 2024.8. 29).
실질적 문맹이 증가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첫째로 주입식 교육과 암기 중심의 학습에 치우친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있다. 이러한 교육시스템은 이해와 사고보다는 정답 맞히기에 집중한다. 또 조기교육과 선행학습도 그렇다. 이는 아이들의 독서 시간을 빼앗고, 창의적 사고를 제한한다. 둘째로 독서량 부족때문이다. 이는 어휘력과 표현력의 결핍뿐만 아니라 문해력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셋째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영향이다.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디지털 세대는 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깊이 있는 사고와 정보 해석 능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즉, 실질적 문맹은 단순한 언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해석, 비판적 사고, 사회적 참여 능력의 결핍을 의미한다. 개념적인 의미에서 실질적 문맹은 지능의 결핍이라기보다 교육 방식, 사회적 경험 부족, 디지털 환경에 따른 집중력 저하 등에서 비롯된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실질적 문맹은 개선 가능성이 크다. 꾸준한 독서 습관과 논리적 글쓰기 훈련 및 비판적 사고 중심의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지편향', '경계선 지능'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질적 문맹과 비슷한 상태를 유발한다.
'인지 편향'이란, 개인의 비논리적인 추론으로 인해 발생하는 체계적인 판단 오류 또는 지각 왜곡 현상을 말한다. 인간이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관적인 현실 구성 때문에 객관적인 현실을 벗어나는 판단이나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인지편향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확증 편향', 처음 제시된 정보가 기준점이 되어 의사결정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준점 편향', 자신이 이미 선택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만 보려고 하는 '선택 지원 편향' 등이 있다
인지편향으로 인해 자기 주관이나 생각에 배치되는 말이나 단어에 꽂혀서 글의 내용과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 글의 논지와 내용과 맥락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해할 생각조차 없다. 일부 문장 혹은 특정 단어에 꽂혀서 전체를 판단하고 단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혹은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시하며 대놓고 비난하거나 항의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무지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낸다. 객관적으로 글의 개연성과 사실적 논거가 명확하고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식으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게 말한 네 잘못”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집단을 형성해 인터넷에 잘못된 여론을 퍼뜨리고 생어거지를 쓰기도 한다.
목불견첩(目不見睫)이란 사성어가 있다. '자기 눈으로 자기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지 편향을 줄이는 방법은 자신에게 인지 편향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비판이나 반대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고,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나누어 보고, 상관관계뿐 아니라 인과관계, 즉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인지편향을 줄일 수 있다.
"나는 틀릴 수도 있고, 당신이 맞을 수도 있으며, 노력을 통해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진정한 무지란,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지식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의 환상이다." -칼 포퍼
인지편향은 단순한 무지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새로운 난제인 실질적 문맹의 문제와 결부된다. 동시에, 이와 유사하게 혼동될 수 있는 또 다른 현상으로 경계선 지능이 있다. 두 개념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다르다.
경계선 지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은 IQ 70~85 범위에 해당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핀란드 지능테스트 기관 윅트콤(Wiqtcom)이 2024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평균 지능(IQ)은 110.80이다. 경계선 지능은 문자 그대로 지적장애((IQ 70 이하)와 일반 지능(IQ 85 이하)의 경계선에 있는 지능 수준을 말한다. 경계선 지능은 장애(지적장애 또는 지적 발달장애)로 평가되지 않는다. 지적장애는 지능지수(IQ)가 70 이하이면서 일상생활에서 적응행동 기능에도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지적발달장애'라고도 부르며, 지적 기능과 사회적, 실용적인 적응 행동 기능 모두에 심각한 결함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경계선지능은 일상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사회적, 실용적인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다만 일반인에 비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뿐이다.
2023년 국회입법조사처의 보도자료에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3.6%가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 이들의 특징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작업은 잘 수행하지만, 추상적 개념 이해나 복잡한 문제 해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주로 선천적·발달적 요인에 기인한다. 반복된 학습과 훈련과 지원을 통해 일부 보완은 가능하지만 근본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문맹과 구별된다.
참고로 2024년 통계청 조사(국민 삶의질 지표)에 따르면, 성인(25~64세) 인구 가운데 대학을 졸업한 인구의 비율, 즉 고등교육이수율은 56.2%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즉 대학 졸업자들 중에서 경계선 지능인이 상당수 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교육과정 전체가 주입·암기·반복·정답맞추기식 학습방식때문에 지능이 낮은 사람도 노력여하에 따라 좋은 성적의 유지 및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직업, 임용 등의 사회적 활동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경계선 지능은 인지편향과 마찬가지로 사회 적응의 어려움을 낳는다. 계약서, 정책 문서, 공공 정보 등 현대 사회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이들은 쉽게 소외되거나, 사이비 또는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또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쉽게 노출되며, 무지하거나 게으르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학습과 적응에 남들에 비해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다시말해 사회생활 등 일상생활의 영위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지만, 학습이나 적응 등이 보통사람들에 비해 더디기 때문에 사회성의 발달과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인들의 이해와 끈기있는 배려가 요구된다.
실질적 문맹과 경계선 지능은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본질적으로 실질적 문맹은 주로 교육·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올바른 학습과 훈련을 통해 개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경계선 지능은 발달적 요인에서 기인하며, 배려와 지원을 통해 생활 적응을 돕는 것이 핵심이다. 적응 혹은 학습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시간적인 배려와 이해가 필요할 뿐이다.
정리하면 실질적 문맹과 인지편향과 경계선 지능은 모두 “읽고 이해하는 능력”의 결여라는 겉모습을 공유한다. 그러나 실질적 문맹과 인지편향은 교육과 학습과 경험으로 그리고 인식의 전환으로 충분히 변화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이고, 경계선 지능은 발달적 특성에 따른 사회적 배려의 문제다. 이러한 현상들은 공히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질적 문맹과 인지편향은 획일적인 암기식 교육, 독서 부족, 디지털 환경의 피상적 정보 소비가 만들어낸 결과라면, 경계선 지능은 개인적 특성임에도 사회가 적절한 배려와 지원을 하지 않으면 더 큰 불평등과 소외로 이어진다.
결국 실질적 문맹은 단순히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가 아니다. 이는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을 이해하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의 문제다. 따라서 실질적 문맹은 사회적 참여와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읽을 수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정보 과잉 시대에, 진짜 필요한 능력은 ‘읽는 힘’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는 힘’이라 하겠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변화할 수 없고, 또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칼 R. 로저스(Carl R. Rogers)
행여 공공기관 문서를 읽고도 신청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뉴스 기사나 칼럼을 읽고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한다거나, 단어의 뜻을 문맥과 상관없이 직역하여 오해 또는 왜곡한다거나, 특정 단어에 꽂혀 내용을 거두절미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거나, SNS에서 자극적인 단어만 보고 잘못된 정보 또는 허위왜곡 정보에 휘둘린다면, 당신이 바로 16.6%에 해당하는 '실질적 문맹'일 수도 있다. 만에 하나 13.6%에 속하는, 주변의 이해와 배려와 지원이 필요한, '경계선 지능'이 당신일 수도 있다. (2025.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