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조반니 / Deh! Vieni Alla Finestra>
주택가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학교 가는 길에 보이는 친구의 집 대문마다 멈춰 서서 ‘친구야, 학교 가자!’를 외쳤던 장면이 생생해요. 집이 가장 먼 혜정이가 지나는 길에 효영이를 불렀고, 혜정이와 효영이는 나를 불렀고, 나와 혜정이와 효영이는 미진이를 불렀고 나와 혜정이와 효정이와 미진이는 화신이를 불렀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키득키득 웃음이 납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0분이나 걸려 겨우 지각을 면하곤 했지만 친구네 집 앞에서 친구를 부르는 즐거움은 놓칠 수 없었어요. 주택가의 추억 중에 또 하나 그 시절의 동네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었는데 ‘함 사세요!’하는 외침, 함진아비의 목소리입니다. 그 외침 하나만으로도 ‘누구누구네 딸이 곧 결혼을 하는구나’를 알 수 있었죠. 주택에 산다는 것은 이런 소소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선물과도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더 예전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집 앞 창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낭만적인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하고 드라마나 영화로만 봤어요.
‘세레나데’라는 음악이 있습니다. ‘연인의 창가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낭만적인 사랑노래’, 세레나데는 ‘늦은’이라는 뜻의 ‘ser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니 ’ 늦은 시각에 연주되는 음악’또는 ‘저녁의 음악’이라고 해석하면 되겠네요.
Deh, vieni alla finestra, o mio tesoro,
Deh, vieni a consolar il pianto mio
Se neghi a me di dar qualche ristoro,
Davanti agli occhi tuoi morir vogl'io
Tu ch'hai la bocca dolce più del miele,
Tu che il zucchero porti in mezzo al core
Non esser, gioia mia, con me crudele!
Lasciati almen veder, mio bell’amore
오, 사랑하는 이 창가로 와주오.
오, 여기 와서 내 슬픔 없애주오
내 괴로운 마음 몰라주면
그대 보는 앞에서 목숨을 끊으리
그대의 마음은 꽃보다 고와
나에게 가혹한 짓 하지 않으리
여기 나와, 그에게 그대 찬미하게 해 주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에서 돈조반니가 부르는 세레나데, ‘Deh, vieni alla finestra(오, 사랑하는 이여 창가로 나와주오)’는 가장 아름다운 세레나데 중의 하나로 손꼽힙니다. 만돌린 반주에 맞춰 부른 나긋한 사랑 노래는 오페라가 아닌 무대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곡이죠. <돈조반니>의 전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돈조반니가 바람둥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텐데 여기서 다시 대본작가 다폰테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후안의 이야기를 스페인의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가 연극 대본으로 만들었고,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후에 돈조반니에 버금가는 바람둥이 다폰테가 다시 오페라 대본으로 만듭니다. 다폰테의 오페라 대본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인물이 참여하는데 바로 돈조반니를 뛰어넘는 당대 최고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입니다. 카사노바라니! 카사노바는 모차르트와 함께 프리메이슨에 소속되어 있어 둘 사이에는 친분이 있었던 데다가 오페라의 큰 틀이 바람둥이에 관한 이야기여서 카사노바는 돈조반니의 대사를 수정하는 데에 손을 보탰다고 합니다. 초연 때에도 객석을 지키고 있었고요.
이 오페라에는 돈조반니에게 당한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먼저 돈조반니가 몰래 겁탈하려다 실패한 귀족 여인 ‘안나’, 돈조반니를 사랑하게 되어 버림을 받고 난 후에도 계속 따라다니는 여인 ‘엘비라’ 그리고 ‘자신의 연인과 결혼식을 올리다 돈조반니가 유혹을 하자 신분상승을 꿈꾸며 잠시 마음이 넘어갔던 마을 처녀 ‘체를리나’. 그러니 이 여인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한 곡씩은 나오겠지요? 그중 돈조반니와 체를리나가 함께 부르는 이중창 ‘la ci darem la mano(우리 손을 맞잡고서)’는 결혼식날 신랑을 버려두고 귀족인 다른 남자와 부르는 사랑 노래로 사실은 어처구니없는 노래랍니다. 극의 시작 부분에서 하인인 레포렐로가 부르는 아리아 ‘Madamina, il catalogo è questo(아씨, 이게 바로 그 명부랍니다)’는 일명 ‘카탈로그의 노래’라고도 불리는데 ‘우리 주인님이 얼마나 바람둥이냐면요, 여기 그 명부가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죠.
ogni villa, ogni borgo, ogni paese è testimon
di sue donnesche imprese
Madamina, il catalogo è questo
Delle belle che amò il padron mio
un catalogo egli è che ho fatt'io
Osservate, leggete con me
In Italia seicento e quaranta
In Almagna duecento e trentuna Cento in Francia,
in Turchia novantuna Ma in Ispagna son già mille e tre
V'han fra queste contadine Cameriere, cittadine V'han contesse, baronesse Marchesine, principesse
E v'han donne d'ogni grado
어느 마을, 어느 도시, 어느 나라건
그가 사랑 행각 벌이지 않은 곳 없습니다
아씨, 이게 바로 그 명부요
나리께서 정복하신 미녀들의 명부
내가 공들여 꾸몄습니다
이걸 보시고 나와 함께 읽어보지요
이탈리아에서는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프랑스에서는 100명, 터키에서는 91명,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1000 명하고도 3명이랍니다
그중에는 시골 아가씨도 있고, 시중드는 하녀도 있고,
도시의 미녀에, 백작부인과 남작부인 후작부인
그리고 공주도 섞여 있다오
대단하죠? 바람둥이 돈조반니와 정말 똑같은 내용의 팝송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A little bit of Monica in my life
A little bit of Erica by my side
A little bit of Rita's all I need
A little bit of Tina's all I see
A little bit of Sandra in the sun
A little bit of Mary all night long
A little bit of Jessica here I am
A little bit of you makes me your man
Mambo number five
Jump up and down and move it all around
Shake your head to the sound, put your hands on the ground
잠깐 동안 모니카랑 인생을 즐기고
잠깐 동안 에리카도 옆에 뒀다가
내가 원하는 전부인 리타와도 잠시 있다가
보고 싶은 티나와도 잠깐
낮에는 산드라와 잠깐 있다가
메리와 온밤을 함께하고
제시카와도 잠깐, 나 여기 있어요
당신들과 잠깐 함께 한다면 기분 좋게 해 줄텐데
위아래로 점프하고 빙글빙글 돌아요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손을 내려놓고
(Lou Bega, Mambo No.5)
바람기 다분한 극작가 다폰테의 대본에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손길을 더했으니 오페라 <돈조반니>의 스토리가 바람바람바람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비극으로 막이 내립니다. 아, 바람둥이의 최후가 비극인 것이 당연한 걸까요? 하지만 제 아무리 바람둥이의 이야기를 다뤘다 해도 모차르트의 음악 선율을 따라 가보면 바람둥이 돈조반니의 철없는 바람기가 그저 귀엽게만 느껴지기도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