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IP의 무덤을 바라보다.
기업의 연구 개발(R&D) 부서는 특허권, 디자인권, 상표권이라는 무형의 보물을 캐내는 곳이다. 이 산업재산권들은 곧 회사의 미래 경쟁력이며, 회계 장부상에는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진 '무형자산'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탄생과 달리, 이 자산들이 맞이하는 마지막은 종종 쓸쓸하고 냉정한 불용(不用) 및 폐기(廢棄) 절차이다. 나는 이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우리가 수많은 비용을 들여 만들었다가 버리는 이 '죽은 자산' 속에 숨겨진 씁쓸한 비판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산업재산권은 처음부터 자산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막대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사람의 열정을 먹고 자라난다.
출원 단계: 발명가나 디자이너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변리사 선임료와 특허청 관납료라는 명목으로 첫 투자를 받는다. 특허 하나를 출원하는 데 수백만 원, 해외로 나가면 수천만 원이 투입된다. 이 비용은 권리 확보를 위한 '착수금'이며, 곧 자산의 취득 원가에 합산된다.
심사 및 등록 단계: 특허청 심사관의 날카로운 심사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의견서와 보정서 제출이라는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는 아이디어를 방어하고 앞선 선행 문헌관의 권리 범위를 다듬는 지난한 작업이다.마침내 등록 결정이 나면, 변리사에게 성공 보수를 지급하고, 특허청에 1~3년치 등록료를 납부하여, 아이디어는 장부상 '특허권'이라는 무형자산으로 공식 등재되며, 미래의 수익을 약속하는 작은 희망이 된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돈과 노력의 산물이며, 마치 귀한 아이를 키워내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모든 투자가 항상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다.
무형자산으로 당당히 등재된 특허권이 끝내 버려지는 상황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등록 전, 꿈을 접다: '출원 포기'의 잡손실 심사 과정에서 선행 기술이 발견되거나, 갑작스러운 시장 변화로 해당 기술의 사업성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 특허는 등록이 어렵겠습니다", "회사 전략이 바뀌었습니다"라는 통보와 함께, 수백만 원을 들여 작성했던 명세서는 휴지 조각이 된다. 법적으로 권리를 취득하지 못한 채 포기된 출원 건에 투입된 모든 비용은 회계 장부에서 연구 개발비용 또는 손실 비용이라는 쓸쓸한 이름으로 처리되며 사라진다.
등록 후, 연차료 앞에서 무릎 꿇다: '미납에 의한 소멸' 가장 흔한 폐기 형태이다. 어렵게 등록을 받았지만,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특허청에 납부해야 하는 연차 등록료 앞에서 회사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특허권의 연차료는 연도가 지날수록 누진적으로 증가한다.
"이 기술은 더 이상 제품에 쓰이지 않지?",
"이 특허로 경쟁사를 막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아니요'라는 답이 나오면, 회사는 더 이상 등록료를 납부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법률적 권리가 완전히 소멸되는 순간, 회계 부서는 장부상 남아있던 이 자산의 '미상각 잔액'을 털어낸다. 이는 '자산폐기손실'이라는 계정으로 회계 처리되며, 한때 수백만 원의 가치로 빛나던 무형자산은 장부에서 영원히 지워진다.
1. 덫에 걸린 비효율: IP 담당자는 씨앗을 심는 농부이다
많은 기업과 R&D 센터가 정부 지원 사업이나 내부 성과 지표 때문에 '특허 몇 건 출원/등록'이라는 양적 목표에 집착한다. 등록 가능성이 낮거나 사업화 전망이 불투명한 아이디어에도 일단 돈을 들이고 보는 '묻지 마 출원'이 만연하다. 결국, 수많은 IP가 처음부터 '잠재적 폐기 예정 자산'은 아닐까?
이 불필요한 IP들을 만들고 심사받게 하는 데 들어가는 변리사 비용, 관납료, 내부 관리 비용은 R&D 예산의 거대한 비효율적인 낭비다. 죽은 IP를 양산하는 이 시스템은 혁신의 씨앗을 키우기보다 비용의 쓰레기통을 채우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특허 담당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허 담당자의 역할은 단순히 서류를 처리하는 사무관이 아니라,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씨앗을 잘 골라 심는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들의 판단이 곧 기업의 미래 자본을 결정한다.
2. 장기적 관점의 부재 : IP전략에 대한 좌절 비용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장기적인 관점의 부재이다. 기업이 IP를 폐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장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허의 가치는 현재의 수익뿐만 아니라 미래 기술 융합이나 경쟁사의 진입을 막는 방어적 포트폴리오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이 장기적인 시야를 놓치고 단기적 비용 절감 앞에서 IP를 포기한다. 수많은 '자산폐기손실'은 사실상 IP 전략에 대한 '손상차손'이다. 진정 비판해야 할 지점은 폐기 처리라는 냉정한 사후 처리가 아니라, 사전 검토라는 핵심 프로세스를 놓친 것이다. 출원 전의 철저한 사업성 및 기술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초기부터 이 쓸모없는 IP에 거액의 돈과 인력을 쏟아붓는 낭비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부에서 지워지는 IP는 곧 전략 부재의 증거이다.
3. IP 공시 제도: 투명성의 압박
최근 IP 공시 제도 국내 도입 필요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 지고 있다. 이러한 IP 전략의 민낯을 가차 없이 외부에 드러내는 투명성의 압박이다. 이전에는 '보유 특허 100건'이라는 양적 수치만으로 혁신 이미지를 포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100건 중 실제 매출에 기여하는 것은 몇 건이며, 나머지는 왜 연차료도 내지 않고 폐기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곤란해 질 것이다.
IP 공시 제도 아래에서 대규모의 '자산폐기손실'은 단순히 회계상의 비용 처리가 아니라, 무책임한 IP 전략의 명확한 증거로 비춰진다. 기업이 IP를 대량으로 폐기한다는 것은, 처음 투자를 결정할 때 기술의 미래 가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가치 평가의 실패이다.
더 나아가, 폐기되는 IP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 투입된 인적/재무적 자원은 결국 아무런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사라진 소각 자본(Burned Capital)이다. IP 공시는 기업이 핵심 사업과 무관한 '죽은 자산'을 양산하며 자원을 낭비하고 있음을 투자자들에게 스스로 고발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결론: 양이 아닌 질, 그리고 책임 있는 공시
우리는 이 씁쓸한 회계 장부 속 '자산폐기손실'과 IP 공시 제도의 압박을 보면서, 특허권을 단순히 개수 세기나 회계상의 자산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핵심 전략과 직결된 무기로써 질적인 관리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IP 공시 제도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공개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IP를 책임감 있게 대하고, 미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질적 성장에 집중하라는 엄중한 요구이다. 회사가 버린 '죽은 자산'은 결국 R&D 시스템의 실패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자이며, 이 무덤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양이 아닌 질이며, 기술이 아닌 전략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