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KTX, 빨리 달린다고 승리라고 말할수 있나....
특허 제도에는 ‘우선심사’라는 제도가 있다. 말 그대로, 출원된 특허를 다른 건보다 먼저 심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일반 출원은 심사청구 후 심사 착수까지 평균 18개월, 등록까지 평균 26개월 정도 소요된다. 반면 우선심사를 청구하면 심사 착수까지 약 2~5개월, 등록까지 평균 6개월 정도로 단축된다. 기술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는 이 제도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시장에 곧 출시될 제품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사보다 먼저 권리를 확보하고 싶거나, 정부 과제나 투자유치 과정에서 ‘특허 등록’이라는 증거가 필요할 때 우선심사는 유용하게 쓰인다. 빠른 등록으로 상징적, 절차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상무님께서는 제품 출시를 앞둔 기술 중 타사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그 특허가 등록되었는지 자주 묻는다. 그럴 때 나는 “출원은 되었지만, 아직 등록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한다. 등록 특허 자체도 중요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청구항이 실제 기술과 제품에 제대로 적용되는지가 핵심이다.
실제로 ‘우선심사’를 통해 등록된 특허가 기업의 실질적 무기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통계적으로, 우선심사로 등록된 특허 중 사업적 활용이나 분쟁에서 실제로 권리가 사용되는 비율은 10~20% 수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빠르게 등록된 특허일수록 ‘충분히 다듬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쟁사 기술을 면밀히 분석하고
시장 흐름을 관찰하며
청구항을 타사 제품까지 포섭할 수 있게 최적화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심사 전 단계에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등록된 특허는 형식적 자산에 그치기 쉽다.
기업의 특허 전략을 설계할 때, 단기 목표와 장기 전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빠른 등록’이 의미 있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넓고 유효한 권리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전략이다. 타사 제품과 맞닿을 수 있는 핵심 청구항을 확보하려면, 기술 변화와 시장 흐름을 관찰하고 경쟁사의 대응을 기다리며, 천천히 정제된 권리화를 하는 편이 유리하다.
결국, 우선심사가 주는 ‘빠름’이라는 장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허 전략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타이밍이다. 때로는 빠름보다, 적절한 시점의 느림이 진짜 경쟁력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빠르게 등록된 특허가 시장에서 활용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형식적 자산일 뿐이다. 반대로, 늦게 등록되었더라도 타사 제품을 포섭할 수 있는 강력한 청구항을 가진 특허는, 그 자체로 기업의 전략적 무기가 된다.
우선심사 제도는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특허를 왜 만드는가’라는 질문이 늘 따라온다.
나는 이 과정을 단순히 ‘빠른 등록’으로만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팀과 조직이 특허를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심사청구 시점, 청구항 구성, 시장 관찰, 경쟁사 분석까지 모두 포함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선심사를 선택할 수도, 시간을 두고 지연 등록 전략을 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결정의 근거와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기술과 비즈니스가 맞물려 움직이는 지점에서 특허가 진짜 힘을 발휘하도록 운용해야 한다. 결국, 특허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사업과 경쟁을 움직이는 도구다.
KTX처럼 빠른 속도도 필요하지만, 방향과 타이밍을 잡는 전략적 판단이 결국 승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