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행 방콕에서 아유타야까지
어느 날, 방콕을 여행하다가 아유타야로 떠났다.
갑자기. 기차를 타고.
아유타야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시간.
방콕 스쿰빗에서 Hua Lam Phong 행 전철을 타고
종착역인 Hua Lam Phong 역에 위치한 방콕 기차역.
단 15밧 500원짜리 3등석 기차 칸.
오전 9시 25분 기차이다.
2시간이면 1350년부터 400여 년 간 태국의 수도로
번영을 했던 옛 도시 아유타야에 도착을 한단다.
기차역에서 통하지 않는 언어로 애써 말하지 않아도
저렴한 표를 바로 내미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15밧의 기차표.
여러 번 작은 역에 정차를 한다. 잠깐씩.
누군가는 3등석 기차는 입으로 먼지가 다 들어오는,
에어컨도 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칸이라고
그런 걸 어떻게 타고 가냐고...
또 누군가는 빈티지한 기차를 타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향하는 기차.
유심을 끼워 넣고, 구글 지도로 못 찾아가는 곳 없이
여행을 쉽게 즐기는 요즘 시대.
나는 아직도 이렇게나 여행을 했음에도
그런 최첨단 여행 도구들을 여행에 자주 끼워주지 않는 편이다.
그냥 대충 몰라도 가고, 길을 묻고, 가면 알게 되겠지.
라며 낡은 종이 지도를 보는 게 편한,
아직도 난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게 시대에 뒤떨어진 거라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남들은 이런 나더러 "반맹"이라고도 한다.
요즘 스마트폰을 만지는 진짜 스마트한 사람들.
궁금한 게 생기자마자 구글링을 해가며 정보를
쫙 펼쳐놓는. 요즘 사람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며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고.. 그래서 그럴 거야.
사실 나처럼 모르고 가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데.
남들이 다 가는 맛집, 남들이 다 둘러본 그곳을 나도 꼭
가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검색을 즐겨하지 않아, 여행지에 대해 생각보다
무지한 변명이랄까.
나는 모르고 가서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한
감동을 놓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어쩌면 별것도 아닌데,
남들은 이미 다 아는 것도
나 혼자 남들보다 두배, 세배, 더 진한 감동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좀 괜찮지 않아?
같은 여행비 들여서 다니는데 두배 세배
더한 감동을 얻어오는 거.
이게 다 "맹"이라서 가능하다는 거.
좋은 말로 하자면 "아날로그 감성"이다.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향하는 기차는.
그렇다.
이 시대의 잊혀가는 아날로그 감성을
가득 싣고 있더라.
나 같은 사람을,
뱅글뱅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선풍기를,
표를 검사하는 역무원을,
기차 안의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들을.
그리고 "구글이 대체 뭐야?"라고 물을 듯한
소박한 모습의 사람들을.
반맹인 내가 "구글은 말이야~"라며
알려줘야 할 것만 같은.
늦었다.
그래도 모닝커피를 포기할 수 없어 허겁지겁
사들고 들어온 연유 듬뿍, 달디단 로컬 커피.
인도에서 자주 타던 기차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기차 안, 인도 사람들의 커다란 눈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뜨거웠던 시선. 그리고
그 이전을 포함해 지금까지도 그런 향은
난생처음이던....
아마 인도를 다시 가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못 맡아볼 것만 같은 그런
인도의 기차 향기.
달랑 쿠키와 바나나, 물 만으로 버티던
인도 기차의 30시간, 가끔은 40시간
어떻게든 화장실을 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길고 길었던 그리고 진했던
인도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마주 보는 좌석 기차 안에,
좋은 아유타야 여행 파트너가
건너에 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그냥 가는 길 잠깐의 이야기와
도착한 후 딱 밥 한 끼 정도면 될만한 사이.
쉽지 않다.
좌석이 지정되지 않은 기차.
앉아있는데 나에게 태국인 할머니 한 분이
알아들을 수 없는 태국말을 내게 건네신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고, 그 시선에 당황하는
내게 누군가 이리 와서 앉으라는 구원의 손짓을 한다.
고맙다. 코쿤카-
아마도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씀을 하신 걸까?
다른 곳도 자리는 많았는데 창가에서 볕을 쬐고 싶으셨던 걸까?
옮긴 자리도, 만만치는 않았다.
태국의 뜨거운 햇볕이 내 다리를 타오르게 했고,
그마저도 훌쩍거리는 꼬맹이를 안고있는
젊은 엄마에게 내어줬다.
평소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와는 안 어울리게
아이의 훌쩍거림을 달래 보겠다고 망고를 하나 사서 건넸다.
눈길을 나누고 손가락을 서로 만지작거리며
잠시 체온을 나눈 남자다. 아니 남자 아아다.
울지 말아라~
나도 어릴 땐 참 많이도 울었는데
눈물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엔 혼자 숨어서 울게 되었다.
덜컹덜컹 기차소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기차의 움직임.
적당한 사람들의 재잘거림.
뭔가 생각에 빠져드는 데에
참 적당한 조건이었던 것 같다.
요즘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 시기.
나에게 찾아온 약간의 정체기.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머무르지 않도록
무언갈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방콕에 머무르며 조금 지루해질 찰나 만난 새로운 생각의 시간.
그렇게 생각에 빠져든 내 귀에
"아유타~야! 넥스트 스탑! 넥스트 스탑!" 을
외치는 역무원. 다 왔나 보다.
그렇게 두어 시간
방콕 여행 중 기차를 타고 아유타야에 도착을 했다.
차비는 거저.
내 감성을 깨우던 낡고 낡은 모습들.
방콕에서 기차를 타고 아유타야로 온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근대 참 많이 덥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