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하는 고생길
가만히 붙들고만 싶던 순간.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순간.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으니까.
더 쉬어야만 한다고 몸이 애원하고 있으니까.
이 사진은 찍는 순간은 그런 순간이었다.
온 힘을 검지에 모아 찰칵.
내 생에 가장 애타게 찍은 사진 한 장.
동남아 배낭여행 중 떠난
스리랑카 아담스 픽스의 감동은
이곳에 올라온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왜 그런 말 있잖아. "쎄가 빠지도록."
진짜 나는 이곳을 쎄가 빠지도록
이를 악물고 올랐다.
그래서 아담스 피크의 감동은 다른 여행지에 두배,
세배의 감동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백삼 십배, 어쩌면 이백 오십 삼배 정도?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일거라고 생각해.
모두 나와 같은 맘일 거라고.
그렇게 공평하게 감동을 나눠 같고 같은 표정으로
일출을 바라보는 순간일 거라고.
이렇게라도 감동스러움을 격하게 포장해서라도
써야 할 것 만 같았어.
안 그러면 나 너무 억울하잖아.
여기 스리랑카의 아담스 피크를 오르던 순간을 솔직히 말해볼까?
육두문자, 쌍시옷이 육성으로 방언 터진 곳이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누군가가 나를 봤다면
종교적으로 신성한 곳에 와서 접신했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
진짜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거든. 끊임없이.
여행 중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에.
나는 종교에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 2시에 출발해
(일반 건장한 사람이) 계단을 4시간을 오른다니 오르기 전부터
다크서클이 무릎을 찍는 느낌이었다.
오르며보니 이건 더했다.
그냥 계단인 줄만 알았지, 네발로 기어오를 만큼
가파른 계단이라고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오르기 전 카메라부터 점검을 하고.
새벽 1시쯤, 남들보다 조금 일찌감치 출발을 했다.
출발 한 시간 후. 카메라가 웬 말이야.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냅다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백번쯤 들었다.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 아담스 피크의 꼭대기는 여전히 별빛 옆에 있었다.
목이 꺽거져라 올려다봐야 꼭대기가 보일랑 말랑 하다.
이런..신바랄.
오르는 동안 하도 헥헥거려서 입이 말라 붙는다.
입 다물고 코로 숨을 쉬니 이제는 코에 콧물이 맺힌다.
오르면 땀이 나고 서있으면 서늘한 새벽바람에 몸이 오들거린다.
중간에 내려올 수도 없는 상황에 죽을똥 살똥, 네발로 기어오르며
아담스 피크를 기어오르며 낙사한사람은 없는 것인지 생각했다,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내생에 최고 가파른 계단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곧 완만한 계단이 나올 거 아.
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종교의 시발점이라고 부르는 이 곳에
알라신, 시바신, 부처님, 하느님의 자비 따윈 없었다.
언제 끝이 날건지, 도대체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울고 싶던 그 길은 내 정수리에 별빛이 닿을 때쯤에 끝이 났다.
오르는 길 몸이 육중한 사람이 계단을 잘 못 오르고
정말 힘들어 보여서 밀어주고 싶을 만큼 안쓰러웠거든?
근대 그 사람이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내 옆인 거야.
남들 눈에 내가 그랬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네...
동남아 배낭여행을 찾은 스리랑카의 아담스 피크는
해발 2243m 높이이다. (설악산 1947m, 백두산 2744m)
산의 본래 이름은 "스리파다"라고 부른다.
이 산이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는 산 정상에
커다란 발자국 모양이 바위 위에 찍혀있는데,
그 발자국의 형상에 모든 종교인들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아담이 지상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라고 하고
힌두교는 시바신의 흔적, 불교도는 싯다르타가 세상에 세 번째 발을 디디면서
발자국이 생겼다고 주장을 한다.
제기랄, 그래서 이 산이 유명해진 거다.
산 꼭대기에 사원이 있고, 그 사 원 안에 발자국 형상이 찍힌
바위가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 입장료는 무료이다.
입장료까지 받았다면 진짜 산꼭대기에서 발성연습했을지도 모르는..
내가 이곳에 가기로 결정을 한 이유는
동남아 배낭여행을 다니다 보면 휴양지를 제외하면
여행이 종교와 뗄 수 없는 사이 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간다 하니 여행자의 의무감도 있었다.
그 당시 가장 후회하고 중요한 것은 더 가고 싶은 여행지를 열심히
찾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잘 모르고 떠난 아담스 피크.
매일매일 그 새벽 스리랑카의 여행자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그 험난한 곳을 악착같이 오르고 또 오른다.
내가 만난 모든 현지 사람들한테 물어보았더니 다들 몇 번씩이나 올랐다고 한다.
인생에 3번을 오르면 사후에 극락왕생을 한다고.
큰 죄지은 사람은 고행길이라 생각하고 세 번 오르며 죄사함 받고
극락왕생까지 더불어 얻길 바라본다.
새벽에 출발해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것인데
정상은 그 많은 사람이 오르는 것에 비해 일출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넓지가 않다. 사람이 좁은 공간 속에서 몇 겹을 에워싸고 서있는데
그중 살짝 윗줄은 이렇게 전선줄이 시야를 가리고
아랫줄은 철조망에 가린다.
모두 그리 힘들게 올라온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고자 좋은 자리는
다닥다닥 붙어 서서 해가 뜨는 시간까지 몸을 꼼짝 달싹을 할 수도 없다.
힘들게 계단을 오르고, 해가 뜰 때까지 그 고난이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 온 여행자들은 해가 어디서 올라오는지 조차 모르니.
해돋이를 못 보고 내려가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아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 개 두마리가
개쌈까지 해서 해뜨기 전 그 곳은 아수라장이되었다.
보이지 않는 등 뒤에서 개싸움 소리가 들려오니 진짜 등골이 오싹하더라.
해가 좀 빨리 떴으면.....
해가 다 뜨니. 이제 또 다른 큰일이 나를 기다린다.
그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게 생각만으로도 아킬레스건이
이미 끊어진듯한 느낌이다.
뻐근했던 다리가 더 많이 아픈 건 기분 탓이겠지.
보통은 2시 출발해 숙소에 9시쯤 다시 도착한다고 했는데....
나는 내려갈 때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퇴근? 하는 경찰의 부축을 받고
10시 반에 숙소에 도착. (경찰 아저씨들은 그곳에 매일 출퇴근을 하신다고.)
한 일주일간 걸을 때마다 "악! 내 다리!"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주인을 잘못 만나 항상 고생하는 다리에게 휴식을 주겠다고 휴양지로
이동을 했지만, 거친 바닷속에서 다이빙을 한다고 다리와 나는 쉴 틈이 없었다.
아담스 피크를 오른 후,
올랐던 게 너무 좋았다. 너무 감동적이었다.
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한 동안 내 다리에 찾아온
아픔이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시는 가지 않겠다.)
사진 찍기는 힘들었어도, 풍경은 멋졌다.
그리고 몸이 힘들었던 것만큼 마음이 뿌듯했다.
내 여행의 고생은 이렇게 또 근사한 여행 추억으로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으니까.
내가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겠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그 순간이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가는 것.
여행 추억이 돈이라면 나는 아마도 중견 기업의 회장님 정도의 재벌 수준이지 않을까.
꼭 가보라고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갈만한 의미를 찾는다면 좋은 여행지가 될 수는 있는 곳.
다만 체력이 너무 약한 사람. 허리 무릎이 안 좋은 분들께는 비추.
다녀온 후. 내 양말은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