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그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아주 가까운 미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도전에 처참하게 실패한 지 며칠 뒤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전 직장의 친구가 나를 세상 밖으로 불러냈다. 점심이나 한 끼 같이 하자고.
내 방, 임시 공간이 위치한 이 동네, 테헤란로는 점심시간이면 어느 동네보다 활기차게 북적인다. 온 거리에 우뚝 솟아있는 성냥갑, 담뱃갑에 숨어있던 온갖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거리를 메운다.
나에게는 어느새 낯선 풍경이 되어버린 그 흐름. 그 흐름 사이에 오늘만은 나도 태연하게 섞여서 흘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익숙한 횡단보도를 아무렇지 않은 척 건널 때였다.
"어?" "오, 주성이!"
앗.
"오…, 안녕하세요!"
당연히 반갑지만, 그리 반갑지 않은 우연한 재회였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상사분들. 회사 안에서도 워낙 서로 케미가 좋기로 유명해서, 그들은 항상 한 쌍으로 불렸더랬다.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처럼, 모자란 부분은 채워주고 힘이 필요할 땐 더해주는 그런 좋은 사이. 나는 어쩌다 보니 그들의 직속 후임이 되었고, 퇴사를 하기 직전까지 그들과 함께였다. 다행히 그들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수월하게 진행하며 돈독한 관계를 다졌고, 또 다행히도, 그들은 내 퇴사를 결사반대했었다.
그런 그들을 퇴사 이후에 아주 오랜만에, 하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다니. 차라리 약속을 하고 만났으면 진득하니 이야기라도 나눌 것을, 되레 길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듯 만나자니 괜스레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
"잘 지내지?" "연락하래니까. 이따 꼭 연락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대답으로 무마한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 소리. 그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