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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Aug 15. 2022

아 유 해삐? [2]

대화의 기록

2020년 6월 19일 금요일 시작.


그리고 2022년,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바로 지금까지.


787일, 2년 1개월 하고도 26일 동안 이어진 89번의 대화. 그 기록을 되짚어 보자.




첫 만남, 2020년 6월 19일.


안녕하세요 OOO 선생님 맞으시죠..?
심리상담을 받으려고 하는데 예약이 혹시 가능할까요?
- 2020년 6월 16일 오후 5:00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그날 저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다, 남은 용기를 겨우 쥐어짜 내다가, 오후 5시가 되는 순간 보내기 버튼을 억지로 겨우 눌러버렸다. 내적인 망설임이나 주변의 시선보다 대화에 대한 간절함이 더욱 컸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 당시가 어땠냐 하면, 한참 남부러워 죽고 싶은 때였다고 할까. 나 혼자 저 멀리 뒤처져 길을 잃은 것 같은 그런 막막하고 답답한 느낌. 가득한 후회와 원망은 곧 자책으로 이어지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하염없이 한강변을 걷고 또 걸었다.


행복은 커녕, 불행하지나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1주년 바로 전 날, 2021년 6월 18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점심시간에 근처 정신과를 찾아가 볼까 하는데요. 처방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결국 어제는 잠을 거의 못 잤고 가슴 쪽 통증이랑 불안감이 계속되고 있어서 아무래도 약을 먹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오전 10:05


하지만, 뻔한 클리셰는 그만큼 일어날 확률이 높은 것처럼, 행복 대신 더 큰 불행이 나를 덮쳤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있다면 아주 격렬하게 전개되는 중인 것일까. 근데 왜 하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야? 항상 난 조연이었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 낯설어서, 국어사전에서나 찾아봐야 겨우 이해할 것 같은 느낌. 그런 슬픈 느낌.




가장 최근이었던, 2022년 8월 13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번 주 상담은 휴가를 가느라 못 갈 것 같아서 연락드립니다..!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급하게 연차를 냈어요 ㅠ
- 2022년 8월 4일 목요일 오후 3:07


가끔,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는 있지만, 이제는 그 끝이 보이려나.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가기 바로 직전, 빛과 어둠의 경계가 맞닿아 안도 바깥도 잘 보이지 않는 그 순간. 뒤에는 어둠뿐이고, 앞에는 빛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그 순간은 꽤 설렌다.


'행복해.' 이젠 행복하다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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