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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Aug 09. 2023

Why Saipan?

우리 가족은 어쩌다 사이판에 가게 되었나


원래는 스위스에 가려고 했었다. 

24개월 미만 유아는 항공권이 무료라서(세금 및 유류할증료는 내야하지만) 그 전에 해외 어디든 한번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생각을 먼저 경험해본 육아 선배님들을 포함 주변에선 모두 말렸지만(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고 고행이다, 비행기에서부터 정말 죽는줄 알았다 공짜래도 다신 안간다, 돈주고 고생하는 길이다, 애기랑은 집이 최고다 등등), 후회하더라도 직접 경험해보고 후회해야 하는 쪽이라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안갔으면 어쩔뻔했나, 노을지는 사이판 해변에서 너무 행복했던 아기와 나


아기는 어차피 기억도 못할텐데 뭐하러 비싼 돈들여 해외 여행을 가느냐, 애나 부모나 고생이고 주위 사람들한테도 민폐다 이런 말들은 옛날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경우 내 만족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아기때문에 모든걸 희생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육아 지론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말은 이런 나에게 훌륭한 면죄부다. 굳이 행복한 아기를 만들겠다는 결론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나는 우선 내가 행복해야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런 나의 성격 때문에 나는 엄마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모성애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근본적인 죄책감 비슷한 것을 종종 느낀다. 

지난 달에도 아이와 아빠를 남겨두고 나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일주일 넘게, 영국과 이비자로. 아기가 보고싶기도 했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너무나 즐겁고 매 순간 행복했다. 그게 가끔 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오롯이 아기에게, 우리 가족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2023.6 이비자 해변



나 혼자 유럽에 다녀온게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여행지로 스위스를 골랐었다. 신랑이 제일 좋아하는 곳이 스위스라서. 드넓은 알프스 잔디밭에서 아기를 마음껏 뛰어 놀게 해줄 생각에 내 가슴도 벅차올랐다. 일사천리로 항공권을 예약하고 (이코노미석이 인당 200만원을 훌쩍 넘었지만 아기 한 명은 무료라는 생각에 200만원을 절약한 것 같은 정신 승리도 했다) 일정과 동선을 구상하는 나날을 보냈다. 

원래라면 항공권과 숙소 정도만 예약해두고 대충 가고싶은 곳 몇 군데 찾아보고 적당히 그냥 떠나서 그때 그때 되는 대로 자유롭게 다녔겠지만, 두 살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가려니 일정을 잘 짜야할 것 같았다. 스위스 기차 노선도 알아보고 아기와 걸을만한 트레킹 코스도 찾아보고 행복한 상상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대한항공에서 자꾸 메일과 알림톡이 왔다. 공지가 올때마다 비행 시간이 늘어났다.. (아마도 러시아 전쟁과 화산 등 때문인 것 같았다) 급기야는 14시간을 넘어갔다. 분명 10여년 전에 내가 유럽 배낭여행을 가던 시절에는 9시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열네 시간은 뉴욕 가던 시간인데..?


남편이 선언했다. 열 시간 넘는 비행은 자신 없다고. (갈 때는 셋이 다같이 가지만 귀국편은 남편 혼자 아기를 데리고 와야 했다.) 아기와 첫 비행인데 처음부터 그런 긴 시간은 어떨지 엄두가 안난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 파일럿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급 바로 다음 주말 1박 2일 제주도를 다녀오게 되었다. 아기와의 첫 비행. 김포에서 제주는 한시간 정도이니 울더라도 내내 울어봤자 한시간이라 나는 크게 두렵지 않았다. (처음 수면 교육을 할 때는 두시간 가까이 운 적도 있었다..) 우리도 처음이라 요령이 없기도 했고 아기도 처음 겪는 비행이 낯설고 괴로웠는지 얼마간 꽤 울기는 했지만 체감상 30분 정도이고 실제로는 10분 남짓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정도면 선방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안되겠다고 했다. ㅎㅎ 




여튼 스위스행 항공권을 취소하고, 이번 여름 휴가는 그냥 국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강원도를 좋아해서, 고성 양양 강릉 속초 이런 쪽으로 돌며 일주일을 보내면 어떨까 했다. 기왕 스위스까지 가려다 포기한거, 국내에서 플렉스하자 싶어 평소 쉽게 가기 어려웠던 비싼 호텔들로 일정을 짰다. 요즘 국내 호텔 숙박비가 많이 오른건지 기본 1박에 50만원 정도였고 오션뷰며 스위트룸이며 업그레이드를 하면 1박에 1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렇게 5일 정도 하니 숙박비만 300만원이 넘더라. 예약이 어려워서 포기해야 하는 곳들도 많았고, 예쁜 갬성 숙소들의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은 왜 점점 박해지는지. 4시 체크인 10시 체크아웃은 좀 너무한거 아닌가! 이 돈이면 동남아 럭셔리 리조트 가고도 남겠다.. 현타가 올때쯤, 제니언니의 사이판 여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언니도 나와 똑같은 사고의 흐름으로 결국 국내여행을 접고 해외를 알아보던 중, 사이판이 비행 시간도 서너시간 정도밖에 안걸리는데 호텔도 올인클루시브가 1박에 40만원 정도라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게다가 사이판은 미국령이 아니던가(사대주의 주의ㅎㅎ) 

그렇게 아주 즉흥적으로 사이판으로 여행 계획을 급선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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