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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라 Feb 21. 2018

태교가 치유의 기본이다.

- 태아 때의 경험이 삶을 결정한다. -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임신 중 태교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표면 의식인 뇌 의식만 인정하기에

아기가 태어나 3~4살이 되어야 생각할 수 있고,

사물에 대한 판단과 지각력도 

그때가 되어야 생긴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태아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의식체로서

앎 그 자체이고, 마찬가지로

태아도 이미 뱃속에서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생명체이다.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생각과

산모가 주변으로부터 겪는 모든 경험들은 태아의 삶이 되며,

그 삶이 기준이 되어 나머지 인생이 

결정되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은 태아의 삶인 열 달의 재생이며, 반복이다.


우리 조상들은 태아가 의식 체임을 알았고

태아의 경험이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태교를 중시했다. 임산부에게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게 했으며,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배려했던 것이다.


현대에는 보이는 물질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잠재의식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므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존재를

의식이 있는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태아가 모든 것을 알고 느끼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에

태교에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태아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엄연히 태아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느끼고 있으며,

뱃속에서 느낀 모든 감정과 느낌들은

경험 정보로 잠재의식에 각인되었다가

태어나서 삶을 창조하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낙태하려고 하다가 태어난 아이는

죽음에 대한 엄청난 공포를 경험하고 태어났기 때문에

삶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황들에 대하여

두려움이 크고 겁에 질린 삶을 산다.


별 것 아닌 것에 대해 심하게 근심 걱정하고

긴장 불안을 잘 느끼며,

심하면 남이 자신을 해하려 한다는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자신은 부모가 원치 않았던 존재였다는

존재에 대한 수치심과 열등감도 커서 

그 열등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기에

겉으로 보이는 삶은 성공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 사람들의 경우 내면은 힘들고 괴롭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아들을 원하는 부모 밑에서 딸로 태어나는 경우에도

존재 자체의 수치심과 열등감이 커서

그 성적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남성들을 이기고,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겼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내는 등의 일을 하기도 한다.


또한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모가 원했던 성별의 모습으로 외양을 바꾸기도 한다.

여성인데 남성적인 모습을,

남성인데 여성적인 모습이 강한 사람들은

몸의 성별과 마음이 원하는 성별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사람들의 근본 원인은

태아 때 부모가 원하는 성별이 아니었기에 생긴

마음의 갈등 때문이다.


아들이 아빠를 유난히 미워하고 싫어해서

상담하러 온 50대 주부가 있었다.

아들은 눈이 심하게 사시였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도 보였다.

유독 아버지를 무서워하지만 어떠 때는 

아버지에게 심한 공격성을 보여서 고민이라고 했다.

이분이 임신했을 당시를 물어보니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

배를 발로 차고 때린 적이 있으며, 남편을 엄청 미워하고

싫어했다고 한다. 바로 그 경험 정보가 태아에게도 그대로 저장되어

아버지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게 된 것임을 알려 주었다.

이런 경우 태아 때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 때문에

눈이 사시가 되고, 두려움 때문에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심한 거식 폭식증 환자가 왔었는데

이분도 역시 태아 때 그 병의 뿌리가 있었다.

엄마가 아들을 원했는데 낳고 보니 딸이어서

너무 실망한 나머지 윗목에 밀어놓고

일주일간 젖을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행위는 사랑의 충족을 의미하는데

이때 사랑이 채워지지 않아서 심한 애정결핍에 걸렸던 것이다.


먹는 행위와 사랑받는 것을 동일시하다 보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심한 폭식을 하게 된다.

또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는

존재 자체의 수치심이 올라오면 먹는 행위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거식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면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 못 받은 존재라는

수치스러운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면서

현실에서 폭식과 거식을 오고 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 속 크고 작은 트라우마는 태아 때로부터 출발한다.


마음의 상처인 트라우마는 삶 속의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고

그것 때문에 괴롭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태아 때는 표면의식이 생성되기 

이전이기에 기억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태아 때의 경험 정보는

잠재의식을 열고 깊이 들어가야 하므로

성장해서 뇌 의식으로 기억된 경험 정보보다

치유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힘이 든다.

현대의 모든 불치 난치병도 그 뿌리는 태아 때로 보아야 한다.

삶 속의 반복되는 큰 고통의 뿌리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삶의 큰 상처를 예방하는 것이 태교인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의 시작점이 태아 때이니,

태교는 가장 중요한 삶의 교육이자 치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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