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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Nov 02. 2021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책 리뷰] 사다인, "리셋, 다시 나로 살고 싶은 당신에게"

'끓는 물속의 개구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개구리가 도망칠 수 있지만, 개구리가 들어가 있는 미지근한 물을 점점 끓이면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맥락에서 쓰이지만 바쁜 삶에 치어 살다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게 되며 서서히 지쳐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에도 잘 적용된다.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겪게 되는 현상이 바로 '번아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번아웃'이나 '공황장애'같은 단어는 생소한 단어였다. 물론 육체적인 아픔뿐 아니라 정신적인 아픔에도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되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할 정신적 아픔을 겪는 사람의 수가 숨길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리셋, 다시 나로 살고 싶은 당신에게"라는 책은 '많이 아파본'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학업과 직장 모두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던 작가는 어느 순간 열심히 사는 삶이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을 작가에게 알려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삶의 에너지를 직장과 학업 등에 남김없이 쏟아낸 그녀는 결국 번아웃이 왔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다. 공황장애와 번아웃은 그 어떤 일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돌봐달라는 지친 내면의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전화위복으로 아픔을 통해 잃어버릴 뻔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고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가 아파보니 정말 많이 힘들더라고요. 저처럼 많이 아프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봐줬으면 좋겠어요'라는 조언을 건넨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먼저 친절함에 있다. 담담한 자기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을 보며 독자들은 내 고민과 고통이 결코 나의 잘못이나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구성은 작가 역시 독자의 이야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느낌을 준다. 작가의 경험담을 읽고 나면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분석이 시작된다. 작가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 반영된 것 같은 심리학적/뇌과학적인 분석은 작가가 읽었던 전문 분야의 서적들의 인용으로 신뢰감을 더한다. 책을 단순히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예시와 함께 쉬운 용어로 설명해주기 때문에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작가의 이러한 배려 덕에 책이 쉽게 읽혔다. 물론 깔끔한 문장력도 한몫했겠지만.

두 번째 장점은 공감이다. 제목을 보고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면 아마 작가와 비슷한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나 겪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유학생활의 초기에 번아웃이 온 적이 있다. 열심히만 하려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이미 줄의 중간까지 와 버려 돌아갈 수도, 떨어질 수도 없는 '외줄 타기 꾼'이 되어 있었다. 유럽의 우울한 날씨와 더불어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고 전공서적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와 책을 읽지 못하고 대학교 건물을 보기도 힘들어서 길을 빙빙 돌아다녔다. 공황발작도 두 번이나 왔었는데 아마 그때 내가 이 책을 만났더라면 조금 더 쉽게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오히려 나 역시 작가와 같이 힘든 시기를 겪고 벗어난 뒤에 이 책을 보니 더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보고 느꼈던 세 번째 장점이었다. 언젠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겪는 힘듦의 총량은 사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유학생인 나는 나만의 힘듦이 있고 회사원인 친구들은 그들만의 고민과 힘듦이 있는 것이다. 힘듦의 종류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 삶에서 저마다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는 먼저 운동을 시작했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으며, 밥을 최대한 잘 챙겨 먹었다.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인들의 조언도 받아들여서 내가 갇혀있던 세계를 깨고 나오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글쓰기부터 하나하나 시작해서 슬럼프를 극복하고 학위를 끝내고 현재는 다음 과정을 밟고 있다. 작가의 슬럼프 극복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공부였다. "언제나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는 자신이 아픈 이유와 원인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아픈와중에도 멈출 수 없는 그녀의 순수한 앎에 대한 욕구가 읽는 내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경험과 작가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책은 마치 오리털로 만든 따뜻한 이불 같다. 작가의 이야기가 지친 우리의 마음에 따스한 위로를 건네지만 그 따스함을 주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아픔은 자신의 털을 내어준 오리만큼이나 컸으리라. 더 아프지 않기 위해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위로에 귀 기울여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조언처럼, 자기 자신의 아픔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자기 자신에게 이방인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amor fati. deny me, and be doo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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