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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Nov 14. 2023

올해는 달랐다!

29년 만의 KBO리그 챔피언 LG TWINS!

LG 팬들에게 2023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MLB에서는 62년 만에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첫 우승을 하고

NPB에서는 38년 만에 한신 타이거즈가 우승을 하더니

KBO에서는 1994년 우승 후 무려 29년 만에 통합우승을 해 버렸다.

그동안 엘지 팬으로서 겪었던 영욕의 세월(?)이 생각나서 우승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문이 왈칵 쏟아졌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그 시간을 이 글을 통해 잠시 돌아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 LG와 인연을 맺었던 것은 1995년이었다.

당시 우리 집 앞에는 렄키금성 슈퍼마켓이라는 슈퍼가 있었는데

1994년 LG Twins가 우승한 기념으로 

2만 원 이상 구매고객에게 전원 사인볼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했었다.

그렇게 내 손에 쥐어졌던 사인볼은 한자로 쓰인 이름 탓에 누구 사인볼인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그 공이 엘지 트윈스의 영구결번이 된 41번 '노송' 김용수 사인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축구로 가득 차서 야구는 관심사 밖이었다.

그래도 스포츠 뉴스에 나오는 야구 뉴스에서 나오는 엘지 트윈스의 소식은 간간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선수는 엘지 트윈스의 유격수였던 '꾀돌이' 류지현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여름 방학 때 

체험학습 숙제의 일환으로 '야구 페스티벌'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그날이 하필 엘지와 롯데의 선수들이 사인회를 여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엘지와 롯데가 인기가 그렇게 많은 구단인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류지현 선수가 사인회에 온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사인 줄에 서서 기다렸다.

그렇게 4시간의 시간을 기다렸건만, 온다던 류지현 선수는 오지 않았고 다른 선수들의 사인을 받았다.

그날 엘지 소속으로 온 선수는 송구홍, 김재현, 손혁이었고

롯데 선수로는 김응국 선수만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야구와는 인연이 없게 지내던 나였는데

군대에서 엘지 트윈스의 팬이었던 맞선임을 만나게 되어

나도 본격적으로 엘지 야구를 챙겨보게 되었다. 

전역하고 찾아갔던 잠실구장 첫 직관.

잊을 수 없던 첫 경기는 2011년 5월 4일 두산과의 어린이날 시리즈 라이벌전이었다.

당시 엘지는 타격에 비해서 투수, 특히 불펜이 매우 약해서 역전을 많이 당하던 팀이었다.

그렇게 상대의 선발투수 니퍼트에게 1:0으로 끌려가다가

경기 후반 엘지의 두 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된 '라뱅' 이병규의 투런 홈런으로 

2:1이 되었지만 역시나 불펜이 방화를 저지르며 다시 점수는 3:2.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9회 초에 상대 마무리였던 임태훈을 상대로

다음 타석에서 이병규의 투런 홈런으로 4:3으로 역전에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엘지의 마무리 김광수 (나중에 한화의 유원상과 트레이드되었다) 선수가 

여전한 불쇼를 보여주며 5:4로 역전패했지만

9회 말 좌익수 수비로 나와서 관중석에 모자를 벗으며 인사하던 이병규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어

바로 9번 유니폼을 사게 되었다.


나의 팀 엘지의 야구는 안타깝게도 수많은 조롱을 받아왔다.

약한 불펜 탓에 앞서나가던 경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이길 것 같다가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해서

'추격은 하되, 승리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추격쥐'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고

전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의 명언대로 시즌 초에만 잘하다가 여름이 되면 귀신같이 추락해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뜻의 'DTD (Down Team is Down)'이라는 놀림도 받았다.

(이때 한경기만 지면 타 팀 팬들은 '꽉 잡아! 떨어진다!!!' 뭐 이런 드립을 쳤었다)

매해 시즌이 끝나고 겨울이 되면 희망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봄이 돼서 시범경기 때 좋은 성적을 거두고

4월 달 5월 달에 조금 잘하면 항상 '올해는 다르다!'라는 기사가 뜨면서

94년의 신바람이 분다고 모두가 엘레발을 떨었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여름이 되면 신바람이 쉰 바람이 되어서

'신바람 야구'가 아니라 팬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신 발암 야구'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 

2010년 후반에는 그래도 전력 보강을 꾸준히 하면서

가을야구는 진출하는 팀이 되었지만 

가을야구만 가면 귀신같이 광탈을 하면서

팬과 선수들은 '역시 안 되는 팀'이라는 패배의식 속에 살아야 했다.


내 마지막 직관 경기는 내가 유학길에 오르기 전 갔던 2013년도 두산과의 포스트 시즌 경기였다.

당시 엘지는 신생팀 NC 다이노스 덕분에 휴식일을 갖는 시즌을 치렀고

끝까지 힘을 유지하며 

10월 5일 펼쳐진 두산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이병규가 타격왕 타이틀을 지켜내는 적시타를 때리고

타구장에서는 한화의 바티스타가 승리를 거둬주고

유원상-이동현-봉중근의 철벽 필승조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대수비 우익수 양영동이 잡아내며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패해 준우승에 머무른 뒤 무려 11년 만에 가을 야구에 진출했다.

그리고 두산과의 경기에서 시리즈 전적 3-1로 허무하게 패배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는데

이 중 유일한 승리였던 2차전을 직관했었다.

당시 선수들이 두산에 비해 많이 밀린다는 느낌이었지만 선발투수 리즈의 호투로 꾸역꾸역 승리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매번 실패만 하고 항상 가을야구까지는 올라가도 타 팀의 조연이 되면서

'역시 엘지가 그렇지 뭐'라는 조롱을 들으며 버텨왔다.

그 사이 엘지의 우승은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나는 엘지가 질 때면 '그깟 공놀이'에 관심을 끄려고 하고

답답해서 내가 사회인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엘지가 속 터지는 야구를 해도 다음 날 여섯 시 반이면 야구를 보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염원이 모여 오늘 드디어 엘지가 우승을 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역사에 남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1차전에서 마무리 고우석의 방화로 KT에게 3:2로 졌을 때만 해도,

2차전에서 우승을 위해 팀 내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이었던 이주형을 주고 데려온 최원태가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 4 실점 한 뒤 내려갔을 때만 해도,

'아 역시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선수단도 팬들도 포기하지 않았고

2차전 8회 말 기적 같았던 박동원의 역전 투런를 시작으로

3차전 9회 초 오지환의 기적의 쓰리런 (역시 엘지는 쓰리런...)

그리고 9회 말 원아웃 만루에서 이정용의 병살유도.

그렇게 엘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승을 달성했다.

항상 자조석인 목소리로 '그깟 공놀이'라고 했지만

9회 말 2 아웃을 잡고 나서 어느새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엘지 트윈스 팬 여러분

그리고 엘지 트윈스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 여러분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긴 세월 동안 참 힘들었지만 

오늘만큼은 엘지트윈스 팬이라 정말 행복합니다.

온갖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29년 만에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뤄낸 내 응원팀처럼

나도 내 삶 내 분야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서 목표를 이뤄야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엘지 트윈스!

오늘만큼은 조롱받지 않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외쳐봅니다

무! 적! 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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