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여 졸업생이 되어라
지난 몇 년간 수 차례 방문했기 때문에
결코 낯설다고는 할 수 없는 복도.
큰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는 것보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이 사람을 더 미치게 하는 것처럼
자신의 발소리만 울리고 있는 그 복도에서
소년의 불안은 더욱더 커져갔다.
그렇게 다다른 곳에는 2중으로 된 문이 있었고
떨리는 손으로 노크를 하자
인자한 미소를 띤 노년의 신사가 소년을 웃으며 맞이했다.
"들어오세요"
그는 내 지도교수였다.
자리를 잡고 들어간 교수의 방에서 그는 나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며
내가 보냈던 메일을 출력해서 가지고 왔다.
그 메일은 내가 그동안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쥐어짜며
'우야든지 낑기가'
써내 보인 땀과 눈물의 결정체.
이 60페이지의 글을 써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의 노력이 있었던가.
그러나 나의 지도교수는 내 지난날에 대한 감상을 허락하지 않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 글은 너무 모호하다"
아름다운 도자기가 될 줄 알았던 나의 작품은
그의 촌철살인의 평가와 함께
속절업이 무너져내려
아무런 형태도 가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아무런 형태를 가지지 않은 것보다 더 흉물스러운
똥이 되었다.
그렇다, 내가 했던 것은 타인에게 그 성과를 받을 수 있을만한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노력이 아니라
눈물의 똥꼬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게 모조품으로 판명난 "TV쇼 진품명품" 속 0원짜리 도자기 같은
내 글을 교수의 방에 남겨둔 채 밖으로 나왔다.
걸어 나오면서 지나 온 그 복도는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로 인해 더 이상 적막한 곳이 아니게 되었다.
어두운 밤 산속에서 혼자 걷다가 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부스럭 거리는 소리의 정체가 하루종일 굶은 호랑이인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불안은 이제 확실한 공포가 되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지도교수의 말이 내 머리를 맴돌았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다. 시간이 없다. 이제는 빨리 끝내야 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최악의 결과를 받아 들게 되었을까?
그렇게 자학과 자책의 시간 동안 신나게 나 자신을 괴롭히고 나니
이제는 알고 싶어졌다.
내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실패를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을까?
원래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모든 것을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하나하나 척척 해 나가는 그런 아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미루고 미뤄서 졸업을 한도 끝도 없이 미룬
학생으로서의 '신용불량자'가 되었는가?
이것이 나의 '무계획 계획'의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