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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Oct 04. 2023

[무진기행]김승옥, 어떤 개인날과 목포의 눈물 사이

                                     ‘어떤 개인 날’ 과 ‘목포의 눈물’ 사이


 영화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 2022)에서 사랑한 여자와 헤어지고 마음을 다친 해준은 이포로 내려간다.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민음사, 2004)의 주인공 ‘나’가 서울을 떠나 내려간 곳은 무진이다. 무진과 이포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지상에 없는 가상의 공간이라는 점과 안개가 유명하다는 것이다. 안개는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현실과 꿈, 거짓과 진실 속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막막함의 은유로 자주 사용되곤 한다. 서래를 잊기 위해 해준이 선택한 이포와 <무진기행>의 희중이 현실세계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내려간 무진은 안개 자욱한 비일상성의 공간이다. 현실세계와 단절된 탈일상의 공간에서 희중은 혼란스러운 내면과 마주하고 출구를 찾아 방황한다.





<무진기행>(민음사, 2004)은 소설가 김승옥이 23살 때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현대문학 사상 가장 탁월한 단편으로 꼽히며 김승옥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함으로서 수많은 서평에 한 줄 보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작품을 읽고 나니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고 신형철이 썼던 서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호들갑 떨기 좋아하는 비평가들의 과장쯤으로 여겼던 <대성당>은 완벽 그 자체였고 그는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노라 고백했다. 평론가 신형철의 심정이 되어 <무진기행>을 읽었다. 1960년대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로 그려낸 소설은 세기가 바뀐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변함없는 울림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내 덕분에 제약 회사의 고급 간부가 된 희중은 승진을 앞두고 고향인 무진에 내려와 잠시 머리를 식히기로 한다. 그 곳에서 친구인 세무서장 ‘조’와 후배 박선생, 같은 학교 음악교사인 하인숙과 술자리를 갖는다. 졸업 연주회 때 ‘어떤 개인날’을 불렀던 하인숙은 술자리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집으로 가던 길에 하인숙과 윤희중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감지하고 오래전 희중이 묵었던 바닷가 근처 하숙집에서 몸을 섞는다. 하지만 곧이어 도착한 아내의 전보를 받고 잠시 고민하던 희중은 무진을 떠나고 인숙에게 쓴 사랑의 편지는 찢어버린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노래 가사처럼 인간은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존재다, ‘이 사람은 이렇다’ 라고 단순하게 규정짓기가 어려운 이유다. 소심하고 말 한마디 못했던 친구가 어느 날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집에 가면 말 한 마디 안 하고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한다든가 하는 일이 그다지 놀랍지 않은 건 한 사람 안에 다양한 인격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진기행>의 화자 ‘나’의 내면에도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골방에 숨어서 징집을 피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수와 이상을 간직한 ‘나’와 “빽이 좋고 돈 많은 과부를 만난 것을 반드시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p. 451) 지극히 현실적인 ‘나’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공존하고 있다. 무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내의 전보 한 장에 재빨리 현실로 복귀하는 자본주의적인 욕망에 물든 또 다른 자아역시 현재의 ‘나’를 규정하고 있다.






‘나’ 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무진에서 만난 친구 ‘조’는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싶어 하며 백 좋은 아내를 얻은 ‘나’를 부러워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순수해 보이는 ‘박교사’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며 서울에서 성공한 선배를 부러워한다. 하인숙은 ‘조’와 ‘박교사’ 사이를 저울질하면서 무진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어한다. 이들은 타인의 속물근성은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 안에 들어 앉은 욕망은 눈치채지 못한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와 똑같은 무게밖에 지니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p.395)


인간군상들의 이중성이 적나라게 드러나는 무진은 ‘나’가 떠나온 서울과 다를 바 없는 욕망의 각축장이었다. 무진에서 과거의 순수를 회복하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나’는 과거의 ‘나’ 들이 모인, 속물근성과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욕망으로 들끓는 무진을 떠나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현실세계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p. 471)


과거로 상징되는 무진, 과거의 자신과 닮은 하인숙과 이별을 고하며 현실 세계로 복귀하는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하며 소설은 끝난다.


유약한 지식인의 센티멘털리즘이라 치부하기엔 윤희중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와 지나치게 닮은 꼴이다. 현대인의 거울자아인 그를 비난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무진기행>은 자본주의적인 속물근성의 민낯을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드러낸 수작이다. 오래전 소설이지만 현대를 살아오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울림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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