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e Hate Cheap Things
우리는 값싼 물건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 그렇게 행동할 때가 잦다. 파인애플을 생각해보자. 콜럼버스는 이 과일의 육체적인 웅장함과 강렬한 단맛을 기쁘게 경험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파인애플은 원래 남미가 원산지이지만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 도착했을 무렵 이미 그곳에 전파되어 있었다. 1493년 11월 과달루페섬의 카리브 마을에서 유럽인과 파인애플이 처음 만났다. 콜럼버스의 선원들은 사람의 팔다리를 끓이는 냄비 옆에서 그 과일을 발견했는데, 겉모습은 솔방울을, 안쪽의 과육은 사과를 떠올렸다.
그러나 파인애플은 운반이 무척 어려웠고 경작하는데도 큰 비용이 들었다. 오랫동안 오직 왕족만이 그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와 영국의 찰스 2세는 이 과일의 열혈 팬이었다. 17세기에 이 과일 하나가 오늘날 가치로 5000파운드(한화 약 742만원)에 거래되었다. 파인애플은 지위의 상징이어서 하나만 수중에 들어와도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전시해두기도 했다. 18세기 중반, 파인애플 열풍이 한창일 때는 귀족들의 만찬이 이 과일을 전시하는 의식을 중심으로 구성되기도 했다. 이 과일을 찬양하는 시가 씌었고 작은 조각 하나만이라도 사 먹는 게 1년 중 가장 최고의 순간이 되기도 했다.
1761년 파인애플 열풍은 무척이나 뜨거워서 제4대 던모어 백작은 자신의 스코틀랜드 영지에 파인애플을 기리는 사원을 짓기도 했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은 세인트폴 대성당의 남쪽 탑 위에 주저 없이 이 신성한 과일 장식물을 올렸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두 가지가 변했다. 하와이에 대규모 상업적 파인애플 농장이 설립되었고 증기선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생산비와 운송비가 크게 낮아지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파인애플을 먹는 심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 파인애플은 1.5파운드(한화로 약 2200원)면 살 수 있다.
과일의 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파인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덜 매력적인 과일 중 하나가 되었다. 멋진 만찬 파티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고, 주요 도시의 건물 꼭대기에 장식조각으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파인애플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과일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변했다. 파인애플의 역사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과일을 향한 사랑과 경제학 사이에 묘하게 겹쳐지는 지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멋진 물건에 많은 돈을 내야 하면, 그것을 최고로 인정한다. 그러나 시장 가격이 하락하면 열정도 함께 사라지기 쉽다. 물론 그 물건이 처음부터 전혀 장점이 없으면 아무리 높은 가격이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만, 물건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데도 가격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무시당할 위험이 있다.
이런 행동 양식이 다양한 영역에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 구름을 내려다보는 일을 생각해보자. 1927년 찰스 린드버그라는 당시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항공 우편 조종사는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이라는 이름의 허술한 비행기를 타고 최초로 대서양을 단독 횡단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바람과 비와 폭풍우를 견디며 가장 힘든 조건에서 비행했다. 그는 눈 아래로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멀리서 천둥 번개가 수평선에 내리꽂히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경외심에 사로잡혔고 순간 자신이 거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느꼈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그와 같은 경험을 하려면 비용이 매우 많이 들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일의 가치가 무시당할 위험은 결코 없었다.
그러다가 1970년 여름 보잉 747이 생기면서 비행기표 가격이 내려갔다. 이 점보제트기는 비행의 경제학을 기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구름을 내려다보고 그 아래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 더 이상 삶을 바꾸는 대단한 만남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하고 심지어 약간 지루한 일이 되어버렸다. JFK 공항까지의 야간비행에 대해 열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닭고기 요리가 점심으로 나온 직후 마주한 화려한 구름 기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특이해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존 컨스터블을 매료시켰을 여행이 지금은 침묵과 함께 끝난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심리적인 재앙을 초래하는 경제적인 기적을 겪었다. 즉, 실제 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가격이 하락하면서 중요성은 끝이 났다.
아니면 목욕에 대해 생각해보자. 수백 년 동안 집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최상위층에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무척 소중하고 대단한 경험이었다. 우선 물을 데우고 욕조에 물을 채우고 외풍을 막고 수건을 들고 있고 비누를 건네줄 몇 명의 조력자가 필요했다. 대관식이나 전쟁에서 승리와 같은 특별한 행사였으므로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기록할 가치가 있었다.
목욕은 곰곰이 생각해보고, 기억하고, 반추해보고, 친구들과 토론도 해 볼 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따뜻하게 몸을 둥둥 띄워주는 액체에 몸을 담그는 경험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을 며칠 동안 곱씹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관 및 물 공급, 에너지 공급 기술이 향상되고 1인당 평균 주거 공간 면적이 확대되고, 더 저렴한 욕조가 생산되면서 목욕이라는 경험 역시 평범해졌다. 따뜻한 물로 목욕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행사가 아니게 느껴졌다. 오히려 이 과정이 너무 느리게 느껴지기도 해서 목욕 대신 샤워를 하는 사람도 있다.
반복되는 양식은 똑같다. 어떤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방식이 하락하면 이는 그 경험을 얻는 비용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저녁의 조명에 대해서도 비슷한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양초 시대에는 저녁의 조명을 높이 평가했지만, 할로겐 전구 시대에는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진다. 갓 세탁한 옷도 꽤 오랫동안 놀랍고도 특별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깨끗한 면 티셔츠에 굳이 주목할 가치가 없다. (샤를마뉴 대제나 루이 16세였다면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가격이 싸면 가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 식의 반응은 산업화 시대 이전부터 온 유물이다. 사실 인간의 역사 대부분에서 가격과 가치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가격이 높을수록 그 물건은 더 좋기 마련이었다. 가격이 낮은데 품질이 좋은 물건은 없었다.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야 했고, 비싼 비용을 들여 훈련을 받은 장인들이 운반하기 매우 어려운 원료로 직접 만들었다. 그래서 값비싼 칼과 재킷과 창문과 수레 등은 언제나 더 좋았다. 이러한 가격과 가치의 상관관계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기술과 새로운 노동력 조직 방법 덕에 싼 가격에 고품질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된 18세기 말까지 끊임없이 유지되었다.
만약 당신이 공예에 기초한 사회에 산다면 물건의 품질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숙련 노동력이 투입되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15세기 밀라노의 미사글리아 가문이 만든 칼과 투구는 특히 비쌌다. 그러나 이렇게 가격이 비쌌던 건 특별히 숙련된 노동력이 다른 물건보다 더 강하고 가볍고 균형이 잘 잡혔으며 더 날렵하게 디자인한 갑옷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일반적인 원칙이었다. 즉 값이 비싼 외투가 더 오래 가고 더 따뜻하고 더 우아한 장식을 달고 있다. 더 비싼 창문이 빛을 더 많이 들이고 외풍을 더 잘 막아주고 더 쉽게 열리며 더 오래 간다. 내구성이 좋은 원료로 더 솜씨 좋은 사람들이 만든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경험의 배경에서 진귀하고 비싸고 좋은 것 사이에 뿌리 깊은 문화적 상관관계가 형성되어 왔다. 즉 각자 빠른 속도로 다른 것으로 대체되면서, 널리 사용할 수 있는 값싼 물건이 덜 인상적이고 덜 흥미로워 보이는 자연스러운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원칙적으로 산업화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뒤집었어야 했다. 가격이 하락하면 보편적인 행복이 뒤따라야 옳았다. 질 좋은 물건들이 대량 시장에 진입할 것이고 우수한 품질을 민주적으로 여러 사람이 누릴 수 있어야 했다.
복음주의자들은 흥미로운 순간을 약속했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선포했다.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인 참정권이 모든 사회 계층에 물질적인 존엄과 명예를 안겨줄 것이라고.
1911년 헨리 포드가 자동차 조립 라인을 개발하면서 속도가 느린 숙련된 개별 기술자들을 대체했다. 자동차 가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했고 이제 일반 노동자들도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192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 운동의 디자이너들은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무척 저렴하고, 심지어 봉급이 아주 적은 사람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가정용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화는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 아닌, 우연히 전혀 다른 효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산업화는 사람들이 사랑스러움과 흥미로움과 가치에 관해 누릴 수 있는 특정 경험을 빼앗아갔다.
물론 우리는 비싼 물건 혹은 값싼 물건을 사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값싼 물건에 흥분하는 게 약간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작은 통 하나에 100파운드인 철갑상어 알에 흥분하는 건 괜찮아도 12개에 2파운드인 닭의 알에 흥분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그 배경에는 어떤 것에 감사하고 어떤 것에 결핍을 느끼며 반드시 가지고 싶다고 느껴야 하는지를 형성하는 위협적인 계층구조가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계층구조는 안타깝게도 값비싼 물건 쪽에 유리하게 굴러가고, 그만큼 우리는 좋은 것을 누릴 여유가 없으므로 우리 삶은 슬프고 운명적으로 불완전하다고 느끼게 된다. 돈의 계층구조는 계속해서 우리를 궁핍하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믿는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죽어가거나 나쁜 병에서 회복 중일 때만 알아채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닭이 낳은 최상급 알을 살 만큼 부유하면서, 이런 데서 우리의 부를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의 불임에 가깝고 수상한 이란의 철갑상어가 낳은 몹시 비싼 알(그러나 실제로 엄청 더 좋지는 않은)을 살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을 뒤집을 수 있을까? 해답은 약간 의외의 영역에 있다. 네 살짜리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 아이가 웅덩이를 보고 있다. 한 시간 전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지금 거리엔 웅덩이가 잔뜩 생겼으며, 아이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인도제도의 부귀영화는 장화를 신고 물에 뛰어들었을 때 생기는 파문과 소용돌이, 미세한 잔물결, 그 밑의 바다를 바라보는 즐거움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아이들은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고 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격 자체가 결코 가치의 지침이 되지 못한다. 대신 아이들은 주어진 것의 본질적인 장점에 대해 자신의 기쁨에 (혹은 기쁨의 부족에) 의존해야 하며, 이 사실이 이들을 놀라운(그리고 때로는 미치게 하는) 방향으로 데려간다. 아이들은 단추 하나를 가지고 한 시간을 놀 수 있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대칭을 가르쳐주길 바라고 스웨덴 장인이 만든 49파운드짜리 나무 장난감을 사주면, 아이들은 그 장난감이 들어 있던 판지 상자를 더 좋아한다. 전등불이 켜지는 경이로움에 푹 빠져서 스위치를 100번 눌러보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멋진 장난감 상점(혹은 국립박물관)보다 DIY 상점의 못과 나사 코너를 더 좋아한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아이들은 우리가 오래전 호기심을 억제하게 된 물건들에 매료당한다. 물건에 가격을 매겨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물건의 제조 원가가 아니라 그 물건의 효용성과 매력을 기준으로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이례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이게 더 정당한 결과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은 스테이플러가 한 100파운드는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고, USB가 1파운드가 조금 넘는 가격이라는 것을 알면 몹시 놀라고 심지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만약 가격이 인간적인 가치와 중요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아이들의 생각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가격은 그렇게 결정되지 않는다. 가격은 얼마나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반영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침으로 경제적인 가격만을 이용해서는 안 될 때 가격을 중시하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나이가 되면 아이들의 이런 능력이 매우 쇠약해진다. (보통 여덟 살쯤) 이들은 ‘비싼 것’과 ‘싼 것’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고, 비쌀수록 더 좋을지 모른다는 견해를 흡수한다. 용돈을 모으는 것을 좋게 생각하고, ‘더 싼’ 장난감보다 ‘큰’ 장난감을 훨씬 좋게 생각하도록 권장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곧장 역행할 수는 없고, 가격에 대해 아는 것을 잊어버릴 수도 없다. 그러나 물건값이 얼마인지보다 우리의 반응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는 있다. 이때 우리는 예술가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들은 아이들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자신의 열정을 끌어낸 것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전문가다.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은 프로방스에 있는 작업실에서 19세기 후반의 많은 시간을 사과를 그리면서 보냈다. 그는 사과의 질감과 모양과 색깔에 열광했다. 특히 사과 껍질 위를 가로지르는 노란 황금색과 깊은 붉은색 사이의 변화를 좋아했다. 그는 ‘사과’라는 일반적인 단어가 얼마나 무한한 개별적인 예들을 담고 있는지 알아채는 전문가였다. 그의 시선 아래서 각 사과는 하나의 행성이 되었고 독특한 색과 아우라를 갖춘 진정한 우주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진정한 기쁨과 위안의 원천이 되었다.
오직 생명이 제한되었을 사과가, 단맛에서 신맛으로 천천히 옮겨가는 사과가, 특정 나무에서 참을성 있게 자라, 새와 거미의 호기심으로부터 살아남았고, 춥고 거센 바람, 특히 바람이 세찬 5월을 견뎌낸 사과가 예술가의 당연한 귀감이 되고 그에 따른 적당한 대우를 받았다. (여기서 세잔이 막대한 은행 자산을 물려받은 무척 부유한 사람이었음을 언급하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겠다. 그는 어쩔 수 없어서 사과를 그린 사람이 아니었고 금괴를 숭배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사과 그림은 스스로 필요해서 그렸고, 황금은 숭배하지 않았다.) 세잔은 예카테리나 대제와 찰스 2세가 파인애플을 숭배했던 것만큼이나 사과를 숭배하고 사랑하고 찬탄했지만, 세잔이 발견한 경이로움은 이토록 고조된 강력한 감정들이 우리 주머니 속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과 관련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었다. 세잔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혁명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혁명은 모두가 값싼 물건을 누릴 수 있게 해준 산업혁명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과정인,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새롭게 주목할 수 있게 해주는 감사의 혁명이었다. 그는 가격을 낮추는 대신 평가를 높였는데, 아주 적은 돈으로도 훌륭한 것들을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더 소중한 방식이 되었다.
우리가 사과를 마주하면서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면은, 익숙하지만 어느새 잊어버린 감사의 태도로 복귀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비옷에 달린 막대 모양 단추를 사랑했고, 종이 클립을 매력의 원천으로 생각했지만, 그것들이 얼마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 후 우리는 사물과 우리의 관계에서 가격이 몹시 중요해 보이는 ‘돈의 세계’로 밀려 들어왔다. 세잔의 작품을 즐기는 동안 우리는 뜻밖의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진정 사랑했고 열광했던 것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어른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굴복당해야 했는지 인정할 때 찾아온다. 어쩌면 우리는 원천적인 사랑을 너무 많이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사과는 우리가 더 이상 경이로워하지 않게 된 대륙 전체의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세잔의 작품이 상업적 형태를 띠면 바로 광고가 된다. 광고는 세잔의 작품처럼 어떤 물건의 최고의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안심시키고, 우리에게 지속적이고도 열정적이고 민감한 방식으로 이 세계의 어떤 점이 사랑스러운지 말해준다. 예를 들어 광고는 능숙하게 BMW 신형차종의 새로운 상부와 실린더, 가죽 시트의 주변부와 유연하면서도 근육질인 바퀴 둘레의 몰딩, 그리고 당연히 전방 도로의 어둠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솜씨 좋게 빛을 운집시키는 전등의 군대를 보여준다.
광고의 유일한 문제는 이것이 우리가 감사할 만큼 유용하고 편리한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광고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약간 틀렸다. 문제는 우리가 BMW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과 경외심의 상당 부분이 오직 그 방향으로만 쏠려 있고 더 현실적인 다른 분야에서는 적절하게 흥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극적이고 강렬한 감각과 야망을 품고 추구하지만, 볼펜과 물웅덩이와 올리브를 향해 가는 광고가 필요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불길하지도 심오하지도 않다. 그저 우리가 낮은 가격의 물건을 아름답게 꾸며서 광고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금액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값싼 물건을 두고 열광하지 않는 것은 인간 본성의 고정된 쇠약함 때문이 아니다. 단지 현재의 문화적 불운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터득했다. 해결책의 구성요소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우리는 미술관과 광고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가격과 우리의 상관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떤 물건의 가격은 주로 그것이 만들어지는 비용에 의해 결정되지 거기서 인간적 가치가 얼마나 많이 도출될 것인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잘못된 시각으로 가격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가격을 내재적 가치의 표시로 인식해왔고, 해당 영역에서 얼마나 열광할 수 있는지, 특정 장소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격에 의해 결정되도록 허락해왔다. 그러나 가격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격에 너무 많은 생명력을 불어넣어서 값싼 것들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심하게 무디어지고 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산업혁명의 기적 덕분에) 이미 우리 손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하도록 부추겨지는 것보다 훨씬 더 부자다.
번역: 인생학교 서울 이주혜 클래스리더
편집: 인생학교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