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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이목 May 01. 2024

좁은 방

고단한 하루의 끝, 나의 두 발목에 채워진 족쇄는

종일 진심을 숨겨야 했기에 겪은 자괴감이거나

사는 게 내 마음 같지 않음에서 오는 고집스러움

이전 다짐엔 조금의 기별도 가지 않는 성취감과

언제부턴가 상시 내게 묻어있는 음울함의 집합이다


묵중한 덩어리를 내려놓을 곳이라곤 좁은 방 한 칸뿐

넓디넓은 세상의 산물에서 해방되는 나만의 천국

가슴이 메어오는 모순에 울대를 긁으며 울부짖는다


이윽고 방의 갈라진 틈 사이에서 기어 나온 벌레들이

마치 연기처럼 나부끼며 곳곳을 갉아먹기 시작하고

움츠러든 몸뚱이는 이제 몸 누일 곳조차 잃어버린다

날카로운 이빨이 박힌 가슴은 칼로 도려낸 듯 쓰렸지만

이대로 끝일까 두려워 다문 눈꺼풀을 힐끔 들어본다


정작 시야 속엔 무거운 족쇄도 무수한 벌레도 없다

그것들의 실체는 전부 나의 내면에서 존재한 것이다

한데 응축된 사지에 힘이 빠지고 눈은 다시 감긴다


그러니 방이 좁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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