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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un 07. 2019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19.1.13


연인과 취미가 비슷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나와 닮아서 큰 갈등 없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마음 깊은 곳까지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추천


알랭 드 보통의 '사랑론'은 사랑 앞에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현대의 사랑은 '낭만'의 이름으로, 비현실적이고 완벽한 모습으로 쉽게 포장된다.


그것에 비하면 잘 풀릴 새가 없는 나의 연애, 가끔 (어쩌면 자주) 평생 후회할 짓을 한 게 아닌가 싶은 내 결혼생활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나도 한 때는 영화 같은 사랑을 했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꼬인 걸까?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잘못은 삶이 아닌 예술에 있을지도 모른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사랑에서 낭만주의를 걷어내고 현실적인 통찰 찾기'의 여정이다. 그 여정에는 우리를 한 층 더 깊이 성숙하게 해 줄 빛나는 통찰로 가득하다.   


 


시작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줄 '짝'과 결혼하기를 바라며 첫 문단과 같은 생각을 해봤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누군가는 연애를 결혼 전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여길 것이다. 위 질문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제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짝'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는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284p





1. 신성한 시작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27p


첫 만남, 첫 데이트, 첫 키스. 대부분의 연인들에게 그들이 공유하는 '처음'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처음은 우리의 사랑이라는 특별한 여정을 이끌어 갈 열정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점이다. 조금은 익숙하고 아직은 낯선 사람과, 너만을 사랑하노라고 유무언의 용기 있는 표현으로 채워가는 마음 설레는 시간들.
 


이 가슴 벅찬 열정에게 사랑을 대변할 자리를 너무 많이, 혹은 모두 내어주게 되면 우리는 곧 시작 뒤의 '그 후로 오래오래' 이어질 이야기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사랑의 철학으로 복잡한 삶을 이해시켜주는 속 깊은 현자들 -알랭 드 보통, 에리히 프롬과 많은 철학자들- 은 얘기한다. 사랑은 열정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그 후로 오래오래'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붙잡아 들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지혜(기술)'를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28p





2. 별 것 아닌 것들


그들은 각자 이렇게 의심한다. 만약 상대방이 항상 이렇게 되는 대로이거나, 정반대로 항상 이렇게 엄격하다면 뭔가 -세상, 본인, 배우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긴장을 일으킬 때마다 그 긴장감을 더욱 팽팽하게 하는 진짜 의문은 이것이다.

 "이걸 어떻게 평생 견디고 살지?"

76p


정말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상상도 못 했던 -상상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소한 일로 연인과 다퉈본 경험이 있는가?

라비와 커스틴은 신혼집에 놓을 컵으로 어떤 것을 사야 할지를 두고 말다툼한다. 이런 사소한 주제로 싸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한 것은 컵의 종류가 아니라,

'그저 내가 마음에 드는 컵을 집에 놓는 별 거 아닌 일인 것뿐인데, 겨우 이걸로 이 사람은 이렇게 화를 낸다고?'

'이런 사소한 일로도 다투는데 이 사람하고 살아도 되는 거야?'
이런 생각들이다. 
(물론 순간적으로 욱할 때 '스치는' 생각일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언젠가 전화 중에 내가 '머리를 깎는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 친구는 '머리는 깎는 게 아니라 자르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사소한 다툼이 그렇듯이 제삼자가 보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갈 일인데, 다시 모든 사소한 다툼이 그렇듯이 나는 (아마도 자존심 때문에) 조금은 날카롭게 응수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머리는 자르는 건지, 깎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은 채 그 날 저녁 내내 토라져있어야 했다.


나 역시 내가 세운 자존심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자기 연민에 빠져 '머리를 깎는다고 표현한 게 잘못이 되는 비정상적인 연애'를 원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으며 싸울 이유는 더 아니었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국제무역, 이민, 종양학 등)에서는 복잡성을 감안하고,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나간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만큼은 치명적일 정도로 안이한 가정을 세우곤 하며, 이 때문에 협상이 오래 걸리는 데 대해 날카로운 반감이 생긴다.

욕실 관리를 두고 꼬박 이틀간 정상회담을 하는 건 너무 유별나고, 저녁 약속을 위해 집에서 정확히 몇 시에 출발해야 하는지를 정하기 위해 전문 중재인을 고용하는 건 분명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76p



그러나 우리의 평화로운 사랑을 위해 연인과의 말다툼(갈등)이 '복잡성을 감안하고,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야하는 중요한 임을 얼른 깨닫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라비와 커스틴의 결혼생활에서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말다툼은 거의 없다.

작은 쟁점들은 사실 단지 필요한 관심을 받지 못한 큰 쟁점들이다.

일상에서의 논쟁은 그들 성격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어져 나온 실밥이다.

 78p



우리가
1. 자신이 몰두하고 실망하는 바를 예리하게 파악할 수 있고
2. 자신의 태도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말다툼 속에 숨어있는 각자의 욕구의 맥락(갈등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상대방이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나 경험이 무의식 속에 깔아놓은 믿음, 행동양식, 성격 상의 결함을 파악하는 것이다.


상대방이나 나는 '별 것 아닌 문제'로 다투는 옹졸한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감사하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지닌 모순에 자애심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현명하게 대답했다면,


'나는 자존심이 센 사람인가 봐. 지적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혼자 감정이 상했고, 순간적으로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하려 했어. 날 항상 신뢰해주는 네 앞에서는 전혀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라고 설명할 수 있었을까?





하이라이트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

-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감상


책을 읽으며 강렬한 전율을 던져준 많은 통찰을 예리하게 담지 못했다. 대신 갈피가 잡힐 듯 흐릿한 생각을 어떻게든 설명해내기 위해 글이 지루하게 늘어졌다. 독해력과 글솜씨가 충분하지 않은 지금이 아쉽다.  또 끈기가 부족해 독후감을 쓰면서도 자꾸 다른 일에 한눈을 팔고, 인내가 부족해 글을 빨리 끝내려 지난한 글쓰기에 게을렀기 때문에 부끄러운 글이 나왔다. 쓰고 싶은 바를 다 쓰지도 못했는데도 너무 길다.


이 소설은 따뜻하고 유쾌하다. 마치 자상한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만약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때,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염두에 뒀다면 이 책은 '사랑을 유지하는 부부생활 비결'류의 제목이 붙은 자기 계발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는 요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는 대신 라비와 커스틴의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에 녹여 놓았다. 빛나는 통찰은 두 인물의 삶을 통해 은은한 인간미와 재치로 베어난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와 나이도 환경도 다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어찌 이토록 익숙할까 싶다. 나를 사랑과 갈등과 통찰의 중심으로 데려가는 건 '심리학과 뇌과학을 그럴듯하게 섞어놓은 이론의 요약정리'가 아니다. 위화감 없이 온 집중을 내어준 채로, 라비와 커스틴의 생각을 따라가며 느끼는 '나도 그랬는데' 혹은 '내가 그랬구나'라는 공감과 깨달음이다. 그 어떤 자기 계발서나 철학서가 이렇게 깊은 공명을 줄 수 있겠는가?


전달하려는 말을 오히려 숨겨놓고, 개연성과 친숙한 우리네 삶의 모습으로 상처 받은 이의 마음에게 에둘러 말을 거는 소설만의 힘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연인의 토라짐 이면에 존재하는 신뢰받는 이의 특권. 

가정생활과 육아 속의 위대한 용기와 빨래의 위신(信). 

섹스와 사랑의 불편한 동거 그리고 검열.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하기.


그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게는 감사하고 소중한 배움이다. 이 책을 잊지 않고 언제나 이해하며 살아가고 싶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쓰는 이 독후감에 쓰고 싶은 내용이 많은 것은 조금이라도 더 써서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싶은 군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깊어지고 무르익는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서른 살, 마흔 살, 쉰 그 이후로도 계속 읽고 쓰고 경험하며 배우고 싶다. 그 시작에서 정말 감사한 책을 만났다. 한 장 한 장 마다 잊고 싶지 않은 문장들이 쓰여있다. 망각의 축복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면 언제든 다시 꺼내 펼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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