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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바언니 Dec 11. 2022

노견의 식사를 책임진다는 것

비밀작전을 수행하라

 

댕청댕청하던 똥강아지 시절의 에바는

병원에서 받아온 알약 하나도

"앉아, 기다려" 를 해내고 쟁취했고,


산책을 하다가 누가 길바닥에 버린 빵조각,

치킨뼈가 하나라도 있으면

기를 쓰고 주워먹으려고 했다.


가슴팍 풍성한 하얀 털에

빨간 양념을 죄다 묻히면서까지

양념치킨을 가족 몰래 먹어놓고도

모른척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통 안에 묻은 요거트도

마지막 한입까지 쓱쓱 핥아먹는다고

통 안으로 얼굴을 파묻기도 일쑤였다.


그러던 에바가 요즘은 식사로 나를 애먹인다.


1년 전 진단받은 만성 신장염 약도 먹어야 하고,

무기력증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기 위해서 잘 먹어야 하는데 밥을 먹지 않는다.

간식은 주는대로 덥썩덥썩 받아 먹으면서

사료 섞인 식사는 자꾸 거부를 한다.


예전처럼 먹기 싫음 먹지 말라고 그릇도 치워보며

스스로 찾아 먹기 전까지 굶겨봤는데

이 고집불통 으르신은 쫄쫄 굶다 끝내 노란 토를 한다.


그래서 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다음 주 예약된 병원에 데려가기 전까지

일단 에바를 잘 먹여서 기력보충을 하는 게 우선이기에

알러지와 신장염으로 피해야 밀가루 들어간 빵과 소고기 들어간 캔사료를 사와

에바의 밥그릇에 섞는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하는 약간의 오기와 함께.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작전을 펼친다.


1. 에바가 깨 있는지 확인한다. 

    - 자고있다 깨면 비몽사몽해서 잘 안 먹으려 하니, 

      최대한 눈이 좀 말똥말똥 할 때를 노린다.

2. 물그릇을 잠시 옆으로 치워둔다.

    - 에바는 애기 때부터 밥을 다 먹고 물을 마셨다.

      요즘은 신장이 약해서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

      물을 먼저 마시면 밥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3. 입맛 시동을 건다.

    - 일단 좋아하는 영양제 한알로 입맛을 돋구고,

      밥 위에 토핑으로 뿌린 말린 소간을 조금씩 준다.

      몇번 받아먹는다 싶으면 은근슬쩍 사료를 한알 섞어서 준다.

      그럼 에바는 기가 맥히게 '퉤'하고 사료만 골라 뱉어버리지만,

      몇번 더 반복하면 먹기 시작한다.

4. 내 손바닥을 은근슬쩍 밥그릇으로 대체한다.

     - 먹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잘 먹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렇게 잘 먹으면 그렇게 기특하고 예쁠 수가 없는데

그래도 안 먹으면 짠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한가득 생긴다.

그럼 바로 고민에 빠진다.


건사료를 먹이기 위해 첨가하는 것들


양상추+당근을 삶아 갈은 즙

약 한스푼

방울 토마토 3알

노란 파프리카 3조각

말린 소간 조각

소고기맛 습식사료


이 구성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지...

단백질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돼지고기와 쌀, 밀가루도 피해야 한다.


연속 세끼를 꼬박 굶은 에바가 어제 저녁은 기특하게 한그릇을 뚝딱했다.

에바가 식사거부를 하는 동안 나도 나대로 맘고생을 좀 했기에

빈 밥그릇을 보고나서야 안도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밥을 반도 먹지 않는다.

덩달아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오늘...

에바의 밥그릇을 내일은 또 무엇으로 채워주어야 할까?


노견의 식사를 책임진다는 건

늘 노심초사하는 비밀요원이 되는 것만 같다.


에바야, 제발 잘 먹기만 하자 ㅜㅜ


작전 성공한 날 (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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