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ra Kim Feb 19. 2021

전업주부의 프리랜서 전향기

전업주부가 살뜰히 나를 챙기며 사는 생존법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다. 아이가 하원하고 와서는 책도 많이 읽어주고 싶고, 같이 그림도 끼적이고 싶고, 몸으로도 놀아주고 싶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스케줄대로, 나는 나대로의 계획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촘촘하게 채워가고 있지만, 늘 뭔가 빠진 것은 없나 돌아볼 땐, 스스로 좀 안쓰럽기도 하다. 이렇게 바쁘게 살았는데도 늘 이렇게 죄책감 비슷한 마음이 일렁이니 말이다.   


그런데 본래 전업주부란, 집에 주로 머물며, 식구들과 집을 돌보는 사람 아니던가. 가족들의 뒤를 봐주느라 바쁜 것이라면, 가족 중에 나도 있는데? 라는 사실도 꼭 챙겨보기로 했다.  식구들이 집에 없는 시간은 그러니까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잘 쓰는 것이 합당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조금은 어색했다. 그러나 내가 조금은 충족되어야 가족들도 덜 예민한 엄마, 혹은 더 행복해진 엄마와 아내를 만나니 선순환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차츰차츰 나를 위한 시간을 차차 늘려가고 있다.



눈을 뜨면, 엄중하리 만큼, 정직하게 찾아오는 새 아침이 때론 부담스럽다가도, 인생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는 주기가 이렇게 금방 돌아왔다는 점에서는 자못 안도가 되기도 한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늘 날짜를 쓴다. 도망가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매일 일정 분량의 책을 읽고 있다. 물론, 깊이가 있는 전문서적이나, 집중력이 요구되는 책을 읽지는 못 했지만, 가독성이 좋고, 빛나는 통찰이 돋보이는 글들을 계속 골라서 읽어왔다. 나아가, 독서에서 비롯된 글감을 계속 모아간다. 


생각나는대로, 조금씩 써둔 글은 어쩌면, 컴퓨터 어느 귀퉁이에서 영영 다시 봐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글보다 나에게 더 가치있게 남는 것은, ‘몸의 기억’일 것이다.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손가락으로 매일 쓰는 습관을 쌓아온 것을 내 몸이 기억하고, 계속 그리로 나를 가게 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이 없다. 모델출신인 이소라씨가 어느 토크쇼에서 (모델 일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집안일을 할 때에도, 양치질을 할 때에도 언제나 배와 허리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고 서 있는 등 일상에서 긴장감 있게 몸을 가꾸어온 습관을 소개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모든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닌 것이다. 훈련은 익숙함을 낳고, 그것은 인생을 바꿀 것임을 믿고 나아가보는 것이다.  

   

그 외에 집중적으로 나를 위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부수적인 시간관리가 필요하다. 생활을 단순화 하기 위해, 인간관계에도 단호한 기준을 세웠다. 관계의 가성비를 따지는 데 이를 필요도 없다. 그저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나의 글쓰기, 가정 돌보기 등을 하고 나면,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가 극히 제한되니, 그것으로 우선순위는 이미 판별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만나고 싶거나, 정기적인 만남으로라도 붙들어 두게 되는 이들은 진정 나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고.      


설거지나 집안 정리 등 소음이 비교적 없는 일을 할 때에도, 오디오클립이나 팟캐스트로, 책이나 글쓰기 관련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사운드북 듣기도 참 좋다. 내가 고른 책으로만 독서가 편협해지는 것을 방지해 주는 좋은 가이드가 되고,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기름칠을 해주는 것 같다. 친절한 글쓰기 과외 선생님인 셈이다. 


뉴스나 부동산 주식 등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조금 멀리해 본다. 나에게는 선뜻 주식 투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부동산에 관심을 둬온 지난 어느 시간 동안은 어떤 책도 손에 잡지 못했다. 부동산 관련 정책을 놓치지 않아야 했고, 직접 임장을 가보고, 희망 매물의 추이를 또 계속 좇아서 확인하는 일련의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무언가에 확실히 중독된 상태였다. 그런 류의 정보들은 그것만이 오로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나를 자꾸만 그 생각에만 머물게 했다. 그러니, 투자를 할 때는 (이러기 쉽진 않지만) 단타로 치고 빠지거나, 혹은 본인의 투자 선택해 대해 묵묵히 기다리며, 큰 흐름을 신뢰하는 편이 낫다. 내 자신이 투자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괜찮은 것이다. 그리고 더 큰 그림, 즉 이 세계를 움직이는 기저에 무엇이 있는 지에 대한 책과 사유가 있는 쪽으로 얼른 달아나는 것이 삶을 훨씬 평화롭고 행복하게 해준다. 좁은 길을 계속 서성이는 상태는 나를 더 불안과 편협한 마음의 상태로 이끄는 것 같아서 괴롭기도 하니 말이다. 일상을 지속하기 위한 소소한 다짐이랄까. (물론 이 일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을 염두에 두고 공격하는 뜻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한계를 생각했을 때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마음의 정돈인 셈.)      



나의 오래된 친구는 나에게 “글쓰는 건 정말 똑똑한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니야?” 라고 했다. 이제 갓 글쓰기 인생을 시작해보고자 겨우 마음을 먹은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그 말 때문에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는 사실 아무것도 쉽게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움츠러들기 십상이지만, 그럴 때마다 어떤 핑계를 대며, 하고 싶었던 것을 멈춰버린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의지로 이미 시작한 일이라면, 중간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계속 하는 것이 맞다. 순탄하기만 한 일이 어디 있을까. 


마흔 가까이에 한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해, 예순까지만 쓴다고 해도, 근 20년을 글 쓰는 삶을 살아낸 것이니, 그것은 타인의 존중보다 그 세월에 대해 나부터가 든든한 언덕이 될 것이다. 그걸로 족하다. 친구는 (굳이 나의 시작에 딴지를 걸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글쓰기 자체에 두려움이 큰 것 일수도 있다. 그렇게 깊은 생각 없이 툭 떠오른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는 친구라면, 한 권의 책을 완성하려는 친구가 더 없이 먼 거리에 있는 누군가처럼 느껴져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굳이 “너는 아닌데? 라는 반문으로 그 말을 서운하게 여기고, 당장 관둘 일인가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꼭 섬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사회적 본능이 그렇게 두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애쓸 필요없이 그렇게 된다. 그것이 아주 어렵다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나의 이야기를 조금 시원하게 털어놔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열린 서비스이니, 얼마든지 그래도 되는 이를 찾아가면 되는 것.) 


뿐만 아니라, 바쁜 중에도, 어렵게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친절한 또래 이웃이나, 멀리 있지만 언제든 통화가 가능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카메라 앞에서 수다를 떨어도 아주 좋다. 다만, 이러한 관계들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즉, 너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 되게 엄격하게 자신을 옭아맬 필요도 없고, 혼자 글 쓰고, 책 보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값지고 좋다면, 그것만을 고집해도 좋을 일이다.     


그렇다고, 매일 출근하듯 살 수만은 없다. 연차도 있고, 휴가도 쓰는 것처럼 자신에게 여지를 줘야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다. 오은영 선생님이 어느 강의에서 “오늘 쉬었다면, 그걸로 만족하세요. 그 날은 그럴 만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날 만약 쉬지 않았다면, 그 날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 몸이 탈이 나셨을 겁니다. 잘 쉬셨으니, 너무 자책 마세요.” 라고. 너무 긴장하지 않으면서, 또한 너무 늘어지지 않는 그 어느 지점을 잘 유지하라는 이야기 같다. 


무엇보다 너무 늦지 않게 자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날 내가 글쓰고 책을 읽을 체력이 된다. 내 체력으로는 12시 반을 마지노선으로 해야 다음날 7시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음날 아이에게나 남편에게 (그리고 결국 나의 하루에게) 소홀해지지 않기 위한 중요한 규칙이다. 몸이 고단하면, 아무래도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예민해지곤 하는 나를 본다. 이건 남편에게도 똑같이 요구하고 싶다. 금요일, 토요일 밤에 1시 넘어서 영화를 보고 잠든 날은 주말에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됨을 말이다. 쉬어야 하는 건 맞기도 하고, 잘 알기도 하지만, 1시간 더 영화를 보고, 다음날 하루종일을 힘겹게 보내는 건 효용이 그닥 좋지 않은 쉼 같기에.


나아가 아침에 반드시 가볍지 않은 화장을 하고, 제대로 갖춰서 입고 글을 쓰기로 했다. 늘어진 고무바지를 입지 않는 것이다. 언제라도 집안일을 할 차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산책을 하거나, (차가 있다면) 춥고, 더워도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이따금 생각을 정리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꽁꽁 언 생각을 풀어헤쳐주는 역할이랄까. 이렇게 써놓고도 글쓰는 공간에서 잠깐 화장실이라도 간다고 나가서는 중간중간 아이 책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기도 하는 나를 보지만 말이다. 출근한 사람처럼 조금 긴장해서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에 어린이집 선생님께 알림장 댓글을 달거나 집안 살림살이를 쇼핑하는 등의 잡일을 보기도 하니 말이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서면서, 머릿속에서 넘실대는 생각의 바다를 어서 자리로 돌아와 담아놓지 못하면, 어느새 썰물 빠져나가듯,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 같다. 어떻게 기억이 이렇게까지 안 나나 싶을 정도로 휘발성이 좋은 지 말이다. 가족들 하나하나를 챙기다 보니, 멀티태스킹이 언제나 원만할 수만은 없다. 아주 조그만 생각의 조각마저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 허무함과의 직면. 하지만, 잊혀지면 잊혀진 대로, 누구를 탓하지도 말고, 스스로를 자책하지도 않기로 한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기대어, 이대로 주저앉으라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본다. 네 식구 쫓아다니며 뒷바라지 하며, 매일 이렇게 엄격하게 나 자신을 위한 출근을 하며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하며, 때때로 스스로에게 과한 자뻑도 허락하면서, 용기를 줄 것. 그럼 시든 화분이 생기를 회복하듯, 오늘 조금 주저 앉았을지라도, 내일 다시 벌떡 일어나 계속 앞으로 가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주말, 번아웃 독박육아의 끝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