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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ra Kim Mar 31. 2021

인생 최고의 병맛 사건

어이없는 실수담이 주는 삶의 기쁨


차 트렁크에서, 워셔액이 들어있는 페트병이 자꾸 굴러다녔다. 가방에 넣어 한 쪽 구석에 잘 세워놓아도, 어느새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던 페트병. 안 되겠다 싶어서, 뒷좌석 문 아래 수납하는 곳에 페트병을 꽂아두었다.

최적의 공간! 페트병은 이제 더 이상 굴러다니지 않았다. 오예! 그러던 어느날, 제제가 졸리거나 뭔가 욕구가 거세지면, 그 병을 발로 찼다. 그래, 한 두 번은 괜찮을 거야. 했는데. 얼마전에 보니, 하도 걷어차서, 이제 페트병에서 워셔액이 줄줄 나오고 있었다. 


아이 둘을 싣고, 올림픽공원 한 쪽에 주차를 하고, 워셔액을 버리기엔 아까워서, 본네트 문을 열어 젖히고, 뚜껑을 하나 열어, 남은 워셔액을 콸콸! 아주 시원하게, 자신있게 다 부었다. 주차를 했으니, 아이들은 신이 나서, 벌써 저 멀리 언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아까운 워셔액을 얼른 리필하고자 했다.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엄마의 마음. 휴. 


그리고 페트병에 균열을 만든 아이한테, 조금 혼낸 게 미안해서, 또 얼른 따라가서 잘 놀아주고자 하는 마음에

아무튼 주차하자마자, 꼬맹이 둘이 열심히 뛰니, 황급히 일을 처리했다. 한 시간 가량 신나게 잘 놀았다. 날도 어둑해지고 있었고, 아이들은 배가 고파했고, 나는 화장실 갈 타이밍을 놓쳐서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날 따라 나는, 팔이 안 달린 조끼를 입고가서 춥기도 했다.


어머나, 그런데, 차 시동을 걸려고 하니, 차가 털털털, 시동이 걸리다 만다. 다시 한 번 기를 모아 시동을 걸어보았다. 기운이 좋지는 않지만, 차가 움직인다. 그러나 주차요금 정산소 앞까지 가까스로 가던 차는 P(파킹)로 기어를 옮기자, 이때다 하고는 완전히 멈춰 버리고, 시동이 더 이상 걸리지 않았다.


아뿔싸! 세상에! 계기판에 오일등이 깜빡깜빡 하고 있었다. 내가 워셔액을 엔진오일 넣는 곳에 넣은 것이었다. 앞서 워셔액을 넣기 위해 열었던 <뚜껑의 모양>이 <엔진 문양>이었던 것도 같음이 왜 이제야 생각이 나는 건지. 오마이갓! 아마 워셔액을 붓던 그 순간에도 엔진 모양의 뚜껑을 봤지만, 그 사실을 스스로 외면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겠다.


지난 십 수 년간 수 백 번을 안전하게 넣어왔던 워셔액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정산을 위해  내 차 뒤에 서있던 차량들은 내 차를 우회해서, 겨우 정산을 하고 갔다. 정산소에서 일하시는 분은, 꼼짝도 않는 내 차 때문에, 추운 날 밖으로 왔다갔다 하며, 차들이 잘 빠져 나갈 수 있게 정리하며, 정산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시동을 걸면 안 되니, 견인차가 와서, 겨우 차를 가지고 갔고, 오후 6시이다보니 as센터며, 보험사며, 업무교대시간인지 전화연결도 전혀 안 되는 가운데, 아이들은 추위에 떨고, 아비규환이었다.


그날 그 시간에 나의 부주의함으로 올림픽공원 주차장에서 고생하신 많은 분들께 정말 죄송했다. 정산하시는 분께도 너무 죄송한 나머지, 수고비라도 조금 드리려 했는데, 한사코 받지 않으셨다. 아침에 본인도 겨울 패딩을 난로에 태웠다면서, 정말 황당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며, 용기주시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무튼, 이 일은 내 인생 최고의 병맛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구입한 지 아직 6개월도 안 된 나의 차에게도 미안했고, 밖에서 고생한 두 아이들한테도 미안했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부끄럽고, 걱정이 되어서 며칠간 잠이 안 왔다.


엔진을 완전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 천 만원 단위의 돈이 날아갈 수도 있다, 등 결과 연락이 오기전까지

온갖 복잡한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는데, 다행히 차는 안전했다. 넣은 워셔액 양이 적어서, 시동걸고 이동한 구간이 짧아서...등등 그나마 운이 좋아 엔진오일을 3번 교체하면서, 계속 씻어내는 방식으로, 엔진을 구출해냈다. 비용은 무상으로 진행예정이었던 엔진오일 교체비 외에는 더 들어가지 않았다.


요행히 차는 현재까지 잘 타고다닌다. <실수담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 라는 아주 유쾌한 문장을 읽으며, 스스로 맘 고생을 잘 견뎌온 것을 칭찬하며, 또 이런 어이없는 일들의 효용을 애찬한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무한 용기를 얻어서, 이런 황당한 실수담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모든 업무가 종료된 시간에, 이 긴박한 상황에서 차분하고, 재빠르게 나를 도와준 딜러에게도 너무나 고마웠다. 차를 인계받을, 하남센터 야간 당번이신 경비아저씨 성함과 다음날 전담인력인 전문가 이름까지 알려줘서, 통화가 연결되게끔 해주어서 정말 감사했다.


어이없는 실수담의 효용은 이렇게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을 세세하게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연말 연예대상 여우주연상 후보라도 된듯이 줄줄줄 감사가 나온다.


모든게 어렵지 않게 잘 해결되었지만, 아직도 그날의 악몽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는 사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 도움받은 손길을 생각하며, 나같이 황당한 일 가운데 있는 낯모르는 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를 갚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디 가서 내놓고 자랑스럽게 할 이야기는 못 되지만, 두고두고 이 날을 이야기할 때 엄청 웃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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