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ra Kim May 19. 2022

일곱살, 세 번째 유치원 적응기

사회성 발달이 반 박자씩 천천히 자라고 있는 일곱살 제제 이야기

 숨이 붙어있는 한 호흡은 이어진다. 그러나 그 호흡의 고르기가 날마다 같지는 않다. 제제가 세 번째 유치원에 등원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나의 숨쉼이 비교적 달게 느껴졌다. 평소 제제를 원에 등원시키고 난 뒤에 엄마로서의 나는 대체로 맘이 편치 않았다. 걱정의 이유는 이런 것들이었다. 제제가 친구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목소리로 말하거나, 행동하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서 제제 주변에 호의를 가지고 곁을 지키던 친구들이 멀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종류의 생각들.


 그날그날 주어진 어린이집 교육과정에 거의 참여하지는 못할 지라도, 친구들을 등지고 그림만 그리다 온 것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제제는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이다. 동시에 친구들과도 놀고싶은 욕구가 있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스스로도 혼란과 두려움 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하는 활동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제제를 살펴줄 누군가, 그러니까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인력이 아니면 마음이 필요할지도. 다른 친구들이 주어진 활동을 하는 동안, 선생님이 몸으로 제제 곁을 지켜주지 못했어도, 제제가 친구들이 하는 것을 못했다는 괴로운 마음 가운데 놓이지 않게  활동시간 처음과 끝에 다정한 말로 함께 해주고, 또 강하지 않게 도전도 권해봐 주신다면, 또 제제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에도, 괜찮다고 정말 괜찮은 얼굴로 말해주는 선생님이 그곳에 계시다면, 더할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일대일 수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 그러니, 우리 제제만을 지극히 돌봐줄 누군가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무엇보다 제제는 일대일이 아닌 다대다 그러니까 사회성을 발달시킬 기회를 얻는 게 누구보다 필요한 때를 보내고 있으니, 제제에게 의미있는 상호적 자극들이 항존해주길 조심스레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해서 제제가 마음의 부대낌이 덜한 상태에서 귀가하길 바랄 뿐이다. 내일도 그곳에 가는 것이 싫지 않게끔 말이다.



 아이가 하루종일 타인의 반응과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때로는 불안속에 휩싸였다가, 안도했다가를 반복하는 시간이 사실 엄마는 가늠이 어렵기도 하다. 때로 그 짐작이 두렵기도 했고. 기록으로 남기기도, 나중에 보기도 아프고 조심스러운 때도 있고. 예를 들면, 제제가 셔틀버스를 탈 때에 늘 맨 뒷자리를 안고 싶어한다. 그런데, 집앞에 셔틀이 도착해서 보니, 이미 아이들이 뒷자리를 꽉 채우고 있다. 그런데 제제는 그게 더없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앞에 자리를 볼 수 있는 용이주도함이라든가, 앞에 여분의 자리가 있음에도 즉각적으로 시야 확보도 쉽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의 의사를 잘 표현해서,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어온 경험치도 부족하다. 그저 그 순간 별안간 발동한 불안감에 몸서리가 쳐지고, 일단 소리를 크게 내보는 것으로, 습관이 그래왔듯 자신의 몸과 마음에 온 현재의 상황에 대한 반응을 쏟아낼 뿐이다. 사실 일곱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제제는 겨우 5분 여 동안 자기 앞에 벌어진 일들에 하루쓸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도 하지 않나 싶다.


  "엄마 미역국에 밥말아서, 생선하고 먹고 싶어요." 하원해서 엄마를 보는 순간 제제가 쏟아낸 말이다. 2시반인데 배가 고픈 제제. 이런저런 상황들로, 하루종일 아이가 느꼈을 불안은 하원 후에 제제가 느끼는 허기짐과 피로도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소근육 씀이 원활하지 않으니,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자유로이 도구를 사용해 먹는 것도 쉽지 않다. 밥먹으면서 수저 씀에 대해, 착석에 대해, 식사 에티켓의 어긋남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자신이 힘겨워 아이는 밥을 먹지 않는 편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오늘도 친구들과 선생님은 제제의 어떤 말이나 행동에 대해 놀란 토끼눈이 되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자기 딴에는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상대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혹은 어찌하는 것이 좋을 지 막막해서 이따금 피곤해지고, 자주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제제가 집에 와서 스러지듯 고단함을 온몸으로 표현함에서 엄마는 괜한 짐작을 한다. 그래도 집에와서 편안해진 아이가 고단함을 표현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그렇다. 제제는 7세에 벌써 세 번째 기관으로 옮기게 되었다. 분명 똑같은 아이인데, 단 하루도 자신의 기관에 제제를 두기 싫은 냥, 남은 교육비를 모두 환불해 줄테니, 아이를 다른 기관으로 옮겨달라고 호소했던 원장선생님도 있었다. 이유는 친구를 너무 꼭 껴안아서, 책상에 앉아있는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등의 이유에서 였다. (어른들도 사실 힘조절에 늘 능한가. 말의 늬앙스라든가, 상대를 대하는 눈빛의 정도라든가, 이런 것들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히 힘을 조절하는 데 유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제제를 몰아내는 원장선생님께 따져묻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이런 반문이 가능한 어른이라면,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 제제에게 이렇게 나쁘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라며, 제제는 제제만이 가진 멋진 면이 많다고 아이를 따스히 환대해 준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는 아이가 수행하기에는 꽤나 새로운 교육을 하는 곳이라, 제제는 적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친구들이 코딩과 로봇과 장기와 체스와 시쓰기, 장구치기, 수묵활동을 하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하는 것 외에는 자유롭게 지냈다. 자유로운 주변인으로서 마음 편히 지낸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이 얼굴은 많이 밝아졌다. 떼쓰는 일이 줄었고, 선생님과 헤어질 때 더없이 다정한 사이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인으로 사는 일이 편하고 좋은 면을 누린 모양이다. 아이와 이 부분에 대해 대화가 아직은 어렵지만, 이 빈 공간 같은 시간이 아이는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에게 강요하지 않고, 부드럽게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허용해온 시간 말이다. 그것이 아이를 웃게 만들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남편은 대부분의 수업내용에서 아이가 참여하기 어려운 탓으로,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던 시간에 대해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그래서 세 번째 유치원으로 옮겨보기를 권했던 것이다. 제제가 참여할만한 수업이 많은 유치원에서 대기가 풀려서 연락이 온 것이다. 또 적응의 시간을 맞아야 함이 힘들수도 있지만, 아이가 보다 더 자기효능감이 높일 기관으로 한 번 더 옮겨보자고 제제아빠는 결론을 이끌었다. 사실 엄마인 나는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또 적응을 못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일 테다.


 새로운 유치원의 친구들은 제제를 따스히 환대해 주었다. 그곳에 다니는 선생님과 아이들, 그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이 그런 환대의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마음 씀을 느꼈달까. 제제 옆에 서서 화장실을 알려주고, 실내에서는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하는 지, 하루의 루틴은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친절이 알려주었다. 셔틀버스를 탈 때에도 두 손을 세차게 흔들며 반겨주었다. 사진으로 소개된 제제에게 따스한 댓글을 달아주는 엄마들의 적극성에도 감사했다.  그런 환대는 참으로 오랜만이었고, 그 존중감이 주는 감각은 나와 제제의 마음 깊숙이 침투해 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아이가 말해주었다. "엄마, 나 여기 계속 다닐래요. 너무 좋아요." 라고. 


 삶을 이렇게 환대의 거듭으로 맞이하는 나와 아이가 되면 좋겠다. 내가 먼저 그런 엄마가 돼 가보려 한다. 엘레베이터에 탄 20대 후반의 남자어른들에게 "오빠는 몇살들이에요?"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하자, "이야. 너 사회생활 정말 잘하는 애구나. 고마워!" 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처음보는 사이였지만, 다같이 기분좋게 웃었다. 상황에 잘 들어맞는 온전한 말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엄마의 조바심 앞에서도 제제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귐의 방식을 만들어 감이 귀엽고 감사했다. 아이를 다그치는 마음이 지우개로 지워낸 것처럼 많이 지워진 나의 내면을 본다. 고맙다 제제야. 엄마가 너 덕분에 오늘 또 조금 자라나고 있어. 마음으로 제제도,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봄의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