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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ra Kim Oct 10. 2022

딸들과 맞이한 한글날 40세 엄마의 소회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자라난 엄마의 이야기

화요일이면 아이가 체육복을 입는다. 엊그제 체육복을 입힌 것 같은데, 돌아서니 어느새 또 체육복을 내놓는 화요일이다. 나이 숫자 앞에 4가 나오고서부터, 시간이 정말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나잡아봐라 하며, 저만치 나를 두고 뛰어가는 것 같다. 어느덧 10월이고, 겨울이 권투선수의 잽처럼 찾아오자, 봄여름가을은 생략된 것만 같다.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읽어주자, 둘째는 갑자기 한글 익힘책 한 권을 냅다 따라쓰기 시작했다. 미뤄둔 방학숙제를 마지막날 밤에 해치우듯 연필을 마법지팡이처럼 휘두르며 한글자 한글자를 머리속으로 신나게 던져넣는 느낌이다. 순식간에 한글 삼매경에 빠진 만4세의 둘째. 실제 일상어로 3000개의 한자를 쓰고있는 중국에 비해, 우리는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에서 '하햐허혀호효후휴흐히'까지만 익히면, 글자로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데 크게 신이 난 아이.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며, 얼굴 가득 기쁨이 일렁이는 아이는, 냅다 그 글자들을 집어 삼키듯 익히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는 한글에 관심이 없던 아이였다. 세상의 무엇에 대해 이 정도의 경이로움에 빠질 수 있는 아이가 나는 부럽고, 신기하고, 낯설게까지 느껴져 가만히 바라보기를 오래하였다.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단단하고도 분명한 지식을 깔끔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랄 지, 뭐가 됐든 세상살이에 필요한 무언가를 멋지게 전수하고 싶었지만, 늘 그렇듯 실패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현재 내 앞에 펼쳐진 걱정과 내 삶을 앞으로 어찌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한 번민으로 가득차 있는 나는. 10대의 어느 날과 많이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아마 60이나 70대가 되어도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위로까지 셀프로, 자동으로 척척 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여태 어린이의 감성이나 발달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과 그렇다고 무어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하는 때 아닌 위로 또한 하고 있다.


외동이인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큰이모네 삼남매를 매일 보고 자랐다. 이모는 엄마와 비슷한 외양과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집과는 달리 이모네는 바닥을 뒹구는 먼지와 머리카락이 왜 이토록 많을까. 나는 형제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꽤 잘 지낼 것 같은데, 왜 저들은 저토록 자주 싸우고, 잘 챙겨주지 못한 채로 징징거리며 살아갈까. 저럴꺼면 막내 동생은 나를 주면 좋겠다. 등 온갖 시기 질투와 부러움, 나아가 나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평가절하 하기를 일삼았다.


그리고 지금 변명의 시간을 맞이해, 반성하고 사과하고 싶다. 식구가 많아지면 머리카락은 청소기 돌리는 순간 누군가의 머리에서 또 떨어진다는 것. 외동이를 반듯하게 길러내는 아이 엄마 앞에서는, 나의 육아가 한없이 초라해진다는 점. 예기치 않은 순간, 질투와 서러움으로 돌아선 채, 엄마와 언니에게 삐져서, 울며 아무말 대잔치를 하고있는 둘째와 그것이 시끄러운 나머지, 표정이 일그러지며 소리를 빽 지르는 첫째 제제를 보며, 나는 좁은 차안에 앉아 그저 어서 이 차가 도착하기를 빌며,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모를 뿐. 아이 둘에 엄마 하나인, 인력 비대칭의 시간을 가까스로 저글링하는 것이 나는 여전히 버거울 때가 잦다. 하지만, 나보다 좀더 어려운 육아에 직면한 엄마를 만나면, 허리를 굽혀 즉각 나서서 돕게 된다. 순응적인 아이 한명만 길렀다면, 나는 왜 저리 소란을 피우는 거야. 라고 생각했을 편협한 사람이다. 인간은 이렇게 내앞의 문제에도 겨우겨우 이지만, 또 다른 존재에게 손 내밀어 위로를 건네는 게 되는 존재임을 생각하니 슬몃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다면 순응적인 아이 하나만 기르는 엄마도 나를 보며 위로를 얻을수도 있으니, 서로에게 우린 존재자체로 윈윈일 지 모른다. 큰이모네에 대한 내 어린시절의 판단에 대해서는 이렇게 변명과 미안한 마음을 털어본다.


초저녁만 되면, 곯아떨어졌던 큰이모의 힘겨움이 온몸으로 이해되는 그런 때에 나는 드디어 이르렀. 그러니 살아보지 않은 인생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하기 어렵다. 암! 40이 되며 배우는 건 이런 것이겠다. 나는 어려서나 늙어서나 현자가 아닌 탓에, 결국 삶으로 부딫혀 보아야 마침내 아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 이와 같이 40해 가까이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의 여러가지 부실함과 어른이라는 삶으로 가닿지 못하는 것이 많은 점에 대해 고백하게 되는 오늘에 대하여.


그냥 일기를 쓴다. 아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의 가지가 될 것이니, 그냥 쓰는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데 의의를 두는 그런 글을 오늘도 써본다. 그리고 여전히 17개월 터울의 만 4세, 만5세 두 아이와 좌충우돌 하며, 이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의 생존에 대해 애쓰며, 그들을 삶의 기술을 익히는 데로 이끌며, 그러면서도 그 과정에서 낙오하더라도 웃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의 힘겨움. 거기에 더해 40해 가까이 살아왔음에도, 가을 코스모스 같은 나의 하루 역시, 평화롭고 발전적으로 일궈가는 일을 동시에 추구하고, 행동으로 이어내는 일은 위태로우면서도 흥미진진한 모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두 아이를 한글날이 낀 연휴동안 신나는 순간에 빠트렸고, 평화롭고 깊은 잠에 들게한 다음 이 글을 쓰고 마무리 하여 의미로운 밤이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이토록 빠르게 작성하게 해준 세종대왕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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