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투명인간처럼 지냈지만, 울며 마감해 봅니다.

종업식날, 작은 거인들을 만나, 문닫힌 마음이 삐그덕 열리고 맙니다.

by Joy Kim

괜찮아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제제 인사를 무시하고 가는 친구는 여전히 좀 미운 마음이 듭니다. 속상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궁시렁 댑니다. "옆에 서있는 저 아빠는 애한테 인사를 가르쳐야지, 친구가 인사를 하는데, 같이 서서 무시하네. 그 아빠의 그 아들이야." 괜히 저도 약이 오릅니다. "쟤는 외동이야 엄마. 냉면 좋아한대." 제제는 같은반 친구들을 관심있게 보고, 그 특성을 다 외웁니다. "그래, 제제야. 인사를 좀 덜 받아주는 남자한테 여자는 마음이 가게 마련인데, 세상에는 친절하고 멋진 남자도 많단다." 옆에 있던 수수도 거듭니다. "맞다맞다! 어제 답장 보내준 **오빠, ㅇㅇ언니, 그런 사람들도 있잖아. 서운해 하지 말자. 뭐 인사할 마음이 아닌 일이 있겠지." 우리 마음에 좋은 쪽으로 우리는 마음 방향을 틀어 봅니다. 내 마음에 모서리를 키우느라 시간 쓰지 않기로 합니다. 동그랗고 몽글몽글한, 따뜻한 김이 날 것 같은 기억, 고마워서 눈물이 날만큼 살맛나는 생각에만 다시 마음을 가져와 보기로 합니다.


고기능자폐스펙트럼인 우리 제제는 특수학급이 없는 일반 공립 초등학교를 다닙니다. 일반 학급에서, 보조교사에게 수학시간에만 도움을 받으며, 1학년과 2학년을 잘 지내왔습니다. 교사의 지시에 대부분 따를 수 있고, 마지막 수학 단원평가에서 86점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조금 쉬운 단원이었고, 연습을 많이 하고 가서, 아이도 만족할만한 점수를 받고 학년을 마무리 했습니다. 장기자랑 시간에는 24절기의 특징을 설명하는 노래를 외워서 친구들 앞에서 불렀고, 학급 친구들이 환호해 주어서, 한 곡을 더 부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의 특성이 워낙 다양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대동소이 합니다. 제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학년을 혼신의 힘을 다해 커왔지만,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고, 사귐은 여전히 서툽니다. 엄마인 저 역시 소심합니다. 제제를 데리러 간 학교 앞에서, 저와 친해질 이는 누구도 없다는 생각에, 아이를 챙겨, 바삐 집으로 옵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 관심을 받을 일을 만들어 보았자, 저나 제제가 작아질 일이 생길 가능성만 높아질 지 모르니, 학교에서 하루 에너지를 다 쓴 제제를 속히 집으로 모셔오는 임무에만 충실하려 합니다.

올해 제제반 친구들이 정말 착했었고, 그 가운데, 제제를 잘 도와준 열 명의 친구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제제와 손편지를 쓰고, 작은 선물도 같이 포장해서 건넸습니다. 우리 제제에게 변함없이 계산없는 사랑을 준 그 천사 친구들에게는, 한평생 하늘의 복이 쏟아져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할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친구가 없는 우리 제제의 곁이 되어준 고마운 아이들이니까요.


물론, 왜 저들은 나한테 저토록 냉랭한가? 그 마음이 들 정도로 친절하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1년을 지내고 보니, 아이 키우는 부모 마음은 한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소심해서, 엄마가 원래 성격이 극내향성이라서, 그저 지나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혹은 바쁘거나 여력이 없어서 패스하는 경우도 있는 거구요. 그럼에도 제제의 엄마이다보니, 늘 작아진 마음에, 뭐야? 나를 무시하는 건가? 하는 예민한 마음도 들곤 하지만, 나중에 보니,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 그랬던 것이고, 제제나 제가 쓴 메시지에 일일이 하트를 날려준 분도 있더라구요. 부러 나쁘게 오해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는 학년말입니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는 않은 적도 있으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올해도, 제제가 받은 사랑이 너무나 많았던 한해였음을 돌아보게 되니, 제 마음에 가득했던 오해들은 그 사랑들로 인하여 완전히 불태워지게 되었습니다. 제제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떠나시게 되면서 "제제야! 너는 분명히 잘 클꺼야! 선생님이 확신해! 그러니까, 이 다음에 잘 커서, 선생님 만나러 와! 알았지?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너는 잘하는 게 정말 많아. 그리고 너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알지? 선생님이 조금 멀리 가지만, 다 보고 있을꺼고, 너를 늘 응원할꺼니까, 선생님 잊으면 안 돼! 파이팅! 사랑해!" 그 나직하고 강한 음성은 저와 제제 마음에 평생 각인되어 리플레이 될 것입니다.


어른인 저의 자존감이 콩알만해져서, 상대가 저를 대하는 태도까지도 작게 느꼈던 시간에 비해, 제제의 친구들은 제제의 장점들을 한껏 칭찬해 주었고, "3학년 때에도 너랑 같은 반이 되면 꼭 많이 도와줄게."라고 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작은 거인들>이었습니다.



제가 건넨 인사가 혹여나, 돌아오지 않을까봐, 제 아이의 어떠함을 누가 볼까봐, 여전히 학교 앞에서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던 저는, 생각지 않게 도착한 제제 친구들의 답장과, 친구 어머님들의 응원 메시지에 또 한 번 감동에 와르르 무너져, 학년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와 제제가 혼자인 것 같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이를 기르며, 서로의 울타리가 돼주고 있었음을. 제제 엄마를 보고 힘을 내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우리 제제는 올 한해 정말 많이 자랐고, 제가 선생님들께 편지에 썼듯이, 지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듣고 싶은 말, 더 잘하지 않아도 되고요, 충분히 잘해 왔고, 앞으로도 이처럼 살아내면 충분합니다. 2학년 제제야, 정말 애썼다! 모두모두 정말 애쓰셨습니다! 짝짝짝!!!!


입춘은 지났지만, 제제가 야무지게 부르던 24절기가 모두다 기다려지는 한해입니다. 그 절기들이 다 지나가는 동안, 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까요. 그럼, 저 스스로 구기고, 엉클어 놓았던 저 한 켠의 마음들은 까마득히 생각도 안 날만큼 되어, 저부터가 좋은 말을 먼저 건네는 이웃으로 되어갈 지도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