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날도 아니었지만, 특별한 어떤 날이 되었습니다.
2월의 마지막날 저는 남편에게, 가족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남편은 왜 느닷없는 타이밍에 사진을 찍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의 말처럼 기념할 만한 아무날이 아니긴 했습니다. 꽃샘 추위에 온몸이 으슬으슬 아프기도 했습니다. 말을 꺼내긴 했지만, 남편의 말에 그만 머쓱해져서, 그럼 다음 기회에 찍자 하며 마음을 접었습니다. 잊은 줄 알았는데, 남편은 사진을 언제 찍으러 가면 되냐고 슬몃 물었습니다. 실은 예약을 진행하지 않았었는데, 급히 저는 사진관에 예약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네 가족은 2년 반만에 스튜디오로 향했습니다.
결혼식도 돌잔치도 지나고 나니, 가족이 카메라 앞에서 화사하게 웃을 일이 없었더라구요. 그렇지만, 가짜 웃음일지라도, '어떤 의식(ritual)'으로서의 새로고침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비슷한 톤의 옷을 갖춰 입고 우리는 스튜디오로 출동했습니다. 찍사 아저씨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계속 웃었습니다.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어, 활짝 웃었습니다. 남편과 간만에 서로 눈을 보고,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습니다. 아이들도 그 어느때보다도 깔깔 웃으며, 같은 옷을 쌍둥이처럼 입고, 해맑게 웃었습니다.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웃고 나니, 웃음기가 식었던 삶에 웃음 기능이 새롭게 장착된 것 같았습니다. 의미 부여에 마음을 두지 말고, 그냥 해봐도 좋은 일로, 저는 가족사진 찍기를 모든 가족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어졌습니다.
3월 4일, 둘째 수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사진 찍기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수수의 입학식을 다녀오니 제가 왜 그때 하필 남편에게 느닷없이 가족사진 찍기를 제안했는가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제 인생에서 육아의 한 시절이 끝났더라구요. 제제가 어떤 아이인 지 알아가고, 제제를 받아들이고, 제제엄마로서의 저를 받아들인 세월 후에, 수수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서, 어떻게든 두 아이들 다르지만, 무리하지 않고 기를 것인가, 저 자신과 끝없는 줄다리기의 시간을 해왔던, <제 인생의 육아 1기>가 완전히 끝났더라구요. 수수는 더이상 영어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아니고, 그저 공립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되었습니다.
둘은 아침에 함께 일어나고, 등에 자신들이 고른 예쁜 가방을 메고, 같은 학교로 갑니다. 수수는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수업하는 것이 편안하고, 하교시간이 당겨진 것도 신나 보입니다. 제제는 본인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인, 수수와 함께 학교를 오고감이 너무나 뿌듯하고 좋은가 봅니다. 오늘은 수수가 언니랑 수다를 떨다가 그만, 1학년 교실이 있는 건물을 지나쳐 버리고, 제제 언니네 건물로 들어갔었다고 합니다. 제제는 또한 순간 언니모드가 됩니다. "수수야, 너 여기 아니야. 얼른 1학년 건물로 가!" 둘은 이렇게 한껏 서로에게 다정해졌습니다. 작년 제제의 담임선생님, 혹은 제제의 친구들이 수수를 반깁니다. "둘이 정말 똑같이 생겼구나!" 손을 잡고 교실로 데려다 주기도 합니다.
육아의 물리적 난이도가 조금은 줄어든 것 같아, 한편 서운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 전혀 다른 삶의 사이클로 굴러가던 두 아이들을 한 방향으로 모으게 된 것 같아, 든든하고 좋습니다. 영어를 매일같이 공부한다는 사립 초등학교를 못 보낸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물리적 동선에서) 한방향 육아가 가능하게 되자,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졌습니다.
"코끼리 미끄럼틀 앞에서 만나자!" 저와 제제, 수수는 약속을 그렇게 했습니다. 인산인해로 북적이는 학교 앞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제제는 오늘 교문 앞에 서서 수수를 기다렸습니다. "수수야, 가자!" 동생이 나올때까지 기다린 제제는, 수수를 데리고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언니로서 동생이 좋은 제제. 얼굴가득 미소가 만개했습니다. "언니 춥겠다. 자크 내가 올려줄게!" 수수도 언니를 보자마자 챙깁니다.
둘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이제 9시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듭니다. 새로 들인 세계문학 중 하루 한 권 , 엄마는 한 자 한 자 정성껏 어둠속에서 읽어줍니다. 둘은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납니다. 같이 가고, 같이 옵니다.
삶이 또 화마처럼 덮쳐 우리를 무릎 꿇게 할 지 모릅니다. 그때가 언제 올 지 모르는 일이니, 차근차근 꾹꾹 눌러 다시 잘 살아내려 합니다. 무리하지 않고 살려 합니다. 덜 삐그덕 거리며, 덜 힘들이며, 저와 아이들의 몸에 보다 자연스러운 방향대로 다시 살아가보려 합니다.
수수의 졸업식과 입학식을 지나면서, 우리는 또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수수를 영어유치원을 보내느라, 남편도, 두 아이들도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투 트랙 육아를 하느라, 저에게도 애 많이 썼다고, 인생이 무엇인지 몰라, 많은 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머리를 싸매던 육아 1기를 끝낸 것을 축하한다고 자축해 줘봅니다. 모두가 정말 애썼다고, 가족사진은 우리 모두에게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 같습니다.
찰칵. 그 사진은 그렇게 제게, 미숙한 두 아이의 엄마와 아내로서의 1기 육아 종무식을 선언해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여러모로 미숙하겠지만, 넘어지면서 배운 시간 뒤에 오는 묵직한 종지부도 동시에 만날 날을 기대하게 됩니다. 10컷의 가장 행복한 사진을 골라서 건네 주겠다는 사진사 아저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남편도 이 타이밍에 가족사진은 왜 찍었는가, 더이상 묻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수의 입학으로, 찾아온 가정의 편안한 공기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고있는 사진 속 네 사람이 그 대답을 대신할 것입니다. 미숙했던 엄마이자 아내로서, 그것은 어쩌면, 가족들에게 화해를 건네는 어떤 의식(ritual) 이었을 것도 같습니다. 이제는 자주 카메라 앞에 서려 합니다. 그 시간이 무척 좋았기에, 다른 분들에게도 감히 건네봅니다.
(*사족: 2년 반 전에 찍은 가족사진을 대문에 걸었습니다. 새 가족사진이 나오면, 그 역시 여기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2년 전에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찍었습니다. 무릎 아래로 길게 내려오던 니트 원피스는 어느덧 무릎 위에 걸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