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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ra Kim Jan 13. 2020

지금도 자라고 있는 너를 응원하며

언어발달이 조금 늦은 아이를 기르며

"엄마, 언니 예뻐!"

금방 목욕하고 나온 첫째의 말간 얼굴을 들여다 보고, 둘째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뱉어낸 말이다.

"그래 언니 참 예쁘다, 그지?"

"응"

이번엔 첫째에게 엄마가 말을 건넨다.

"동생, 참 예뻐. 그지? 동생 예쁘다. 해봐."

그러자, 

"동생 예쁘다" 글자를 읽듯 웅얼웅얼 첫째가 말한다.

여기에 둘째는

"언니, 고마워!" 한다.


자연스러운 대화지만, 최근들어 엄마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던 대화다. 셋이 대화를 한 셈이다. 무엇보다 첫째가 대화에 참여했고, 짧게 나마 대화를 주고받은 쾌거를 이룬 것이기에. 둘째가 언니의 발화 상황을 끌어내 준 것에도 감사했다.


이번에는 둘째가 언니의 물건을 빼았았다. 그러자, 첫째가 동생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동생 때리면 안 돼!" 

첫째를 나무라며, 둘째에게도 

"언니 물건 뺏으면 안 돼!"

다행히 첫째는 동생을 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언니에게서 원하던 물건을 획득하지 못한 둘째가 앙 하고 운다.

"동생한테 미안해! 라고 사과해."

"사과하기 싫어요!"

이런 게 바로 상호작용일 것이다. 핑퐁대화. 그토록 기다리던 핑퐁대화를 첫째가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첫째가 자신의 속내를 말했다는 점이 진일보 한 부분이다. 대단한 발전이다. 잘못은 동생이 먼저 했으니, 자기로서는 정당방위 라는 게 첫째의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첫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아. 동생이 먼저 잘못했어. 그래도 때리는 건 안되는 거야. 동생한테 이거 내가 먼저 가지고 놀았어. 너는 나중에 갖고 놀아. 라고 말하자. 알았지?" 

첫째를 두둔해 주었다. 그리고, 둘째에게도 단단히 말해둔다.

"언니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는데, 갑자기 뺏으면 안 돼!"

"네!" 둘째가 답한다. 어느새 첫째가 심드렁해져서 던저둔 예의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누구도 속상하지 않게 대화는 잘 마무리 되었다. 대견한 아가들. 다시 미소가 나온다.


첫째가 감각통합치료를 다닌 지, 이제 한 달이 넘어간다. 아이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했다. 블럭쌓기를 좋아 하지만, 작은 사이즈의 블럭은 애초에 쌓지 않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쌓은 게 넘어질 것 같아서란다. 


반복해서 무언갈 시키는 것도 잘 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재밌어야 어떤 지시든 따르려 했다. 하고싶은 것만 하겠다는 고집이 있는 아이라는 것. 거꾸로 생각하면, 한번 쯤은 지시에 따르기도 하는 아이라는 것. 지난 주까지 아이를 지켜본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새로 만나게 된 언어치료 선생님도 아이를 1시간 가량 지켜 보시더니, 언어발달을 지연시키는 데 있어서,

1. 완벽주의 성향  2. 고집  3. 급한 성격  을 가장 큰 장애로 보는데, 우리 아이는 완벽주의가 어느 정도 있고, 고집도 감각통합치료 선생님의 말씀처럼 '꺾을 수 있는 수준의 고집'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하지 않은 게 크게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니, 치료기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무엇보다도, 요즘 첫째는 상황에 맞는 발화를 꽤 많이 하기 시작했다. 언어치료 중에 엄마가 동생을 데리러 가자, "엄마가 없어졌네."라고 했다고 한다. 신발을 거꾸로 신겨주니 "신발이 이상해요." 라고도 말했다. 이제는 일부러, 동생 신발과도 바꿔 신겨 보고, 왼쪽 오른쪽도 바꿔서 신겨 보라고 언어치료 선생님은 알려주셨다. 자꾸 아이에게 말할 상황을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무한 칭찬이 아이를 신나게 말하게 할 것이라고.


"이제 정리하고 나가자. 선생님도 가야겠어." 라고 하자, 장난감을 흐트러트리며, 화를 낸다.

"선생님 정리 좀 도와줘!" 하니

"싫어요! 더 놀래요!"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럼 장난감 딱 3개만 통에 넣어줄래?" 하니까, 옆을 슥 보더니,

남은 장난감 3개를 통에 넣는다. 선생님도, 엄마도, 아이도 얼굴에 미소가 지나간다. 세상이 정한, 발달과정에 맞게, 혹은 또래보다 빠른 속도로 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알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어떤 신호임을 느낀다.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의 불편함 처럼, 나와 맞지 않은 상황을 살 때 느껴지는 불편함이 있다. 갈망하던 서울살이를 한 지 1년 째. 그리고 대한민국 강남에서 2세, 4세 두 아이를 1년간 길렀다. 환경이 바뀌어서, 나는 그동안 못해왔던 문화생활을 한답시고 아이들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었다. 그리고 첫째의 언어 발화가 조금 늦은 것으로 인해, 다시 아이들과 집에서 같이 뒹굴고 책보며 깔깔거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남과 비교해 우리 아이를 깎아내리고, 공공장소에서 더 엄격하게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 것은 어쩐지 불편하고 내 식이 아니었다. 아이는 아이답기에, 규칙을 잘 못 지킬수도 있고, 어떤 발달은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그런 상황을 너그러이 포용하지 않는다. 아이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다르게 자랄 가능성과 자유가 있다.


모든 것에는 흑백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편리함을 선사했지만, 그것이 모두 선한 것이고 행복한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분별력이 필요하다. 내가 잠깐이나마 엿본 강남은, 몸에 맞을 만한 옷을 많이 입어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내가 경험한 유아교육 시장은 정말 아주 작은 부분일 것이지만) 그만큼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많은 옷을 마음껏 입어볼 수 있는 비용이 있으니, 그리 안 할 이유가 사실 없다. 영어교육도 그래서 어려서 많이 시켜보는 것 같다. 돈이 있으니, 재미있게 영어를 접하게 할 기회가 있다면 그리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를 체하게 할 지 아닐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시간과 수고를 덜 들여서, 아이에게 맞는 사이즈의 옷을 고르고, 아이 자신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과 색감의 옷을 고르는 것을 나는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것은 아이 스스로의 얼굴과 체형,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 등 즉 아이 스스로가 나다움을 더 잘 알면 한결 수월해진다. 그러니, (부모의 판단으로 아이에게 입히고 싶은) 많은 옷부터 입혀보기 보다, 나의 나다움을 기르는 데 아이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주면 좋을 것 같다.


사람이란 정말 변하기 어려운 존재다. 나도, 남편도 시간이 주어져도, 밖을 향해 쏘다니는 성향은 아니다. 꼼짝없이 집에서 책보고, 살 부비고, 대화하고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임을. 거기서 아주 조금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큰 용기와 준비가 필요함을.


교육정보가 넘쳐나는 한 가운데 살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체험 현장에 가는 것을 미루고 있다. 다시 섬이 되어 사는 중이다.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서울살이로 인해, (어려서부터 아주 똑똑한 아이로 길러내는 주변 환경 가운데,) 괜히 우리 아이를 무한경쟁의 속도전에 집어넣어서, 바보로 만든 것 같아 속도 상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남의 눈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김새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미리 겁을 집어먹고, 나와 아이의 능력치 이상으로 무리해가며 우리 아이를 밖으로 내몰며, 호되게 길러내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다시 우리에게 편한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세상의 속도에 잠깐 술렁였던 내 마음도, 다시 나다움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존중하고 그 결에 맞게 살기로 한다.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세포가 원하는 글귀를 읽고, 그리고 그 생각을 정돈하고, 그것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생의 길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내고자 하는 인생임을.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그리 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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