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용기를 내기로 한 이유
이 회사보다 좋은 회사가 있을까?
공기업 입사 6년차 대리... 회사가 익숙해지긴 했지만 커리어적으로 성장하는 느낌은 없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회사 욕을 보며 맞아맞아 나도 그래! 조용히 외칠 뿐이다.
순환업무 체제인데 원활한 공유가 되지 않아 축적되지 않는 전문성과 비효율, 보고를 위한 보고 때문에 생겨나는 비생산적인 업무들, 상급자 간의 파워 게임에서 비롯되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반복되는 불평... 그래도 이만한 회사가 어딨겠냐며 서로 건네는 자기 위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지. 머리로는 안다. 입이 댓발 나와 있으면서도 여태까지 회사에 붙어 있었던 이유는 결국 내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직을 하려면 최소한 이 회사보다는 좋은 회사를 가야할 텐데 나에게 좋은 회사는 남에게도 좋은 회사일 것이고, 문제는 그렇게 잘난 회사에서 날 뭘 보고 뽑아주겠냐는 것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스타트업을 포함한 사기업에서 마케팅이나 브랜딩 쪽으로 커리어전환을 하고 싶은데, 지금 누리고 있는 경제적 안정성을 포기하고, 고작 나의 이런 흥미와 지식만으로(어차피 일은 일이고, 회사는 거기에서 거기라던데..) 이렇게 중대한 결정을 내려도 되냐는 것이었다. (이 저울질을 2년째 하고 있다.)
나.. 이렇게 하기 싫은 일도 열심히 하네?
올해 새 팀으로 옮겨오면서 처음 맡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업무는 나와 상극이다.
순환근무 체제 특성상 이전에 해봤던 업무가 아니라면 연차가 오래된 직원이라도 처음에는 신입처럼 업무를 익히는 과정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업무를 하는 매순간 내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누군들 일이 잘 맞고 재밌어서 하겠냐마는, 이전에 맡았던 업무들보다도 성취감이나 자기효능감을 느낄 기회가 극히 적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6시 땡!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이 팀에 와서 정시퇴근 해본 적은 손에 꼽는다. 그리고 주 2~3회 정도는 자발적 야근을 하고 있다.(우리 회사는 정시퇴근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야근 수당은 없다....)
여느 때와 같이 모두가 퇴근하고 잔업을 마친 뒤 사무실 불을 끄고 나오던 날, 문득 새삼스러운 생각이 나를 스쳤다.
'와, 나.. 이렇게 하기 싫은 일도 열심히 하네..?'
'진짜 나랑 안맞고 너무 너무 하기 싫은 일도 나는 결국 어차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내가 정말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은 얼마나 더 열심히할까?'
'어차피 야근할 거라면,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 오래할 수록 전문성이 쌓이는 일, 성장할 수 있는 일로 야근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내 근성을 믿고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줄곧 눈팅만 해오던 마케팅 부트캠프 프로그램 광고를 클릭했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확신이 없어서 문제였다면, 그 확신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자. 해보고 후회하자.
이제 난 몰라. 늘 그랬듯 또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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