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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Apr 30. 2022

결심

지난 글은 잔뜩 우울한 소리만 늘어 놓았지만 내 인생이 마냥 우울하지는 않다. 원래 글은 부분만을 다룰 뿐이다. 슬픈 이야기를 쓴 사람의 인생이 마냥 슬프기만 하라는 법도 없고,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모든 상황에서 피해자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통해서 읽어내는 것은 극히 일부일 수밖에 없다. 지난 글도 그런 셈이다. 두 달 간의 휴식 아닌 휴식 기간 동안 100%로 후회와 미련으로 살진 않았다. 그건 어떤 응어리처럼 내 마음에 남아서 나를 조금씩 괴롭혔지만 그렇다고 내가 내일 당장 죽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다. 뭘 해도 개운하지 않고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식이었다. 글쓰는 사람은 글을 쓰다 보면 좀 몰입하고 그러다 보면 글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좀 증폭시키기도 한다. MSG를 친다고 하는 것이다. 아유 진짜 별로인 글이었다.


지난 글은 시작을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결심을 다져볼 차례이다. 나와의 약속이다. 당장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구체적인 대상을 설정하는 방향이 제일 좋다. 




첫 번째 결심, 매일 글을 쓴다.

매일 글을 쓰고 어딘가에 올린다. 내용도, 주제의 제한도 없다. 나는 오늘 밥을 먹었습니다, 맛이 없었습니다, 이런 내용도 괜찮다. 이 결심의 목표는 좋은 글이나 대단한 작품을 쓴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저 오늘 하루 이거라도 했다는 안도감을 위한 도구이다. 누군가에게 검사 받을 것도 아니고 상을 타기 위한 목적도 아니다. 그러니 잘 쓰려는 욕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려는 하나의 노력이다. 


글은 평소에 늘 쓰긴 했다. 다만 비정기적이었고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첫 글자를 쓰는 데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쓰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사람들의 반응이 없으면 지레 포기하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 전혀 생각지 않을 참이다. 한 명도 안 보든 다섯 명이 보든 어딘가 올려두면 누군가 보지 않을까? 누군가의 반응을 너무 고려하다 보면 그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그 부분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두 번째 결심, 5월 말까지는 마음 편하게 쉰다.

올해 3, 4월처럼 정말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안 하고 숨만 쉬고 돈 쓰면서 살았던 적은 없었다. 이보다 더 백수답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꽤나 느리고 둔한 사람인데도 이렇게까지 목적 없이 살아본 적은 없었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소리이다. 


늘 무언가는 하고 있었다. 그게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된 적도 있었고 이렇다 할 만한 결과를 남기지 못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누군가 보기에 허공에 삽질하는 것처럼 보인 적도 있었다. 대개 부정적인 방향이 많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무언가는 하고 있었다.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무 것도 안 하며 살기 힘들어 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지금처럼 아무 것도 안 하는 상황에 대해서 지나치게 불안해 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지 모른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내려 놓을 생각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쉬는 시간마저도 제대로 갖지 못한다면 쉰 것도 아니요, 일한 것도 아닌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쉴 거면 확실하게 쉬어야 한다.


군대에서 손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인대를 다쳐서 오른손을 아예 쓸 수 없었다. 오른손잡이인 내게 매우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오른손 없이 활동을 하기란 어려웠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몇 주 쉴 수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이라서 좋았을까 싶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꽤나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다. 오른손은 아예 쓸 수가 없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어 불편한 데다, 일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마저 받아야 했다. 마음은 초조해지는데 손이 낫는 속도는 더디니 고역이었다.


그때 한 선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쉬어야 할 때 일 생각하고 사람들 눈치 보면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아플 때는 푹 쉬고 잘 낫는 것이 좋다. 맞는 말이었다. 힘들었던 순간 그 친구의 말 한 마디가 내게 아주 큰 힘이 되었다. 그 말을 마음 속에 새기며 하루하루 버텼다.


잘 쉬는 것도 능력이다. 쉴 때만큼은 푹 쉬어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 또 열심히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군대에서 고생한 시간도 있으니 이번만큼은 아무 생각 말고 딱 쉬어야 한다. 5월 말까지는 나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마음껏 쉬기로 했다.



세 번째 결심, 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자.

정기적인 일 없이 사는 사람은 하루를 불규칙하게 보내기 쉽상이다. 내일 별 일 없으니까 오늘 좀 늦게 자야지, 이런 마음이 쉬이 생길 수 있다. 때로는 갑작스레 많은 일을 하다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마치기도 하고. 불규칙적이고 자유로운 상황일수록 내 나름대로 규칙을 잘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 템포를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늦어도 12시에는 잠들어서 매일 7시에 일어날 생각이다. 그보다 일찍 잠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으니까 자는 시간은 조금 여유를 두었다. 하지만 일어나는 것만큼은 같은 시간에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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