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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May 02. 2022

아주 오래된 필름

집에서 필름 카메라를 찾았던 지난 6월. 그 카메라 안에는 웬 필름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필름을 모르던 시절이라서 다 쓴 필름인지 새 필름인지 구분하지 못해서 조금 만지작거리다 꺼내 두었다. 나중에 새로 산 필름과 함께 냉장고에 두고 잊어버렸다.


지난달 엄마와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이 필름을 보았다. 딱 봐도 요즘 필름 같지 않게 한글로 '코닥 200'이라고 적힌 필름. 현상과 스캔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나는 이 필름이 현상하지 않은 채 남겨진 필름인 것을 알았다. 내 기억으로 06년쯤에는 이미 디카를 썼으니 족히 15년은 더 방치된 필름이었다.


"이거 정말 오래된 필름이네요."

현상소 주인이 내게 말했다. 시간이 너무 흘러서 사진과 사진 사이의 구분도 제대로 안 되고 절반 이상이 다 날아가버렸다. 살아남은 몇 장도 색이 변해서 한참을 스캐너 앞에 앉아서 직접 고쳐야 했다. 그 노력으로도 살릴 수 없는 필름은 푸르스름한 색감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8장 정도만 남았다.



필름은 각기 다른 시기에 찍은 것 같다. 하나는 엄마 피셜로 제부도 같다. 안경을 안 쓴 내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같다. 대충 03~04 이 정도 아닐까 싶다. 통통한 앳된 내 얼굴이 인상 깊었다.



다른 하나는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데이터백은 00년으로 나와 있지만 4학년 2학기라고 적힌 국어 교과서를 보아 06년으로 보인다. 장롱 속 카메라를 찾아서 장난 삼아 찍은 모양이다. 옛날 집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서 재밌었다. 소파는 17년 초에 이사 가기 전까지 거의 10년 넘게 쓴 걸로 기억하고, 대나무 카펫은 아직도 우리 집 거실에 잘만 있다. 조금 깨지고 낡았어도 여전히 쓸 만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참 알뜰하게 잘 산다. :-)


필름의 매력이라 해야 할지 단점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예스러운 사진은 참 인상 깊지만 디카였으면 색이 바래거나 이 고생을 하며 찾는 일은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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