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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Mar 20. 2022

오늘도 툭닥 툭닥

요리하기, 정리정돈, 안 쓰는 물건 버리기, 일찍 일어나기 등 내가 못하는 일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인이 되면서부터 나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귀찮다는 이유로 자주 미뤄왔고,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 후에는 손수 요리를 해서 집들이를 여러 차례 했을 정도로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주말이면 시간이 꽤 남았기 때문에 레시피를 보며 신혼놀이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을 뿐. 요리가 생활이 되고, 아이가 태어나 어른 식사와 아이 식사를 나누어 조리를 해야 하며,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하는 일은 나에게 굉장히 귀찮은 일이 되었다. 육아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부부가 먹는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 오게 되고, 아기 이유식 역시 믿고 먹일만하다는 수제 이유식을 배달시켜 먹였다. 그래도 초기 이유식은 내가 직접 해주고 싶어서 이유식 재료며, 식기류며 몽땅 사들였지만 아이에게 빈혈이 생기는 바람에 나는 자책하며 주방을 떠났다. 그렇게 요리를 놓게 되자 갈수록 요리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고, 그나마 잘해먹던 김치볶음밥도 간을 못 맞추거나 태우기 일쑤였다.
 
 집안 정리 또한 아기 용품이 많아졌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늘어놓았고, 이사를 오게 되면서 '정리해야지.'라는 생각만 가진 채 몇 개월을 방치해두기도 했다.
반면 남편은 정말 부지런하고 손이 빠르다. 쉬는 날에 여러 가지 일거리를 부탁하면 너무나 손쉽게, 짧은 시간에 해내는 남편을 보고 어느 날은 물었다.
"당신은 어쩜 그렇게 손이 빨라? 나는 몇 날 며칠 걸리는 일을 몇 시간이면 끝내네, 너무 부러워. “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는 일을 하기 전에 생각을 몇 날 며칠 하잖아. 생각만 하다 보면 귀찮다고 느껴지게 되고, 결국 일을 또 미루지. 설거지나 빨래처럼 단순한 일이라면 생각은 그만두고 손으로 툭닥툭닥 해버리면 돼."

'툭닥툭닥!’
나는 평생 내가 손이 느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그저 생각이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 후로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접어두고, 남은 한 해동안 집안일이든, 요리든 툭닥툭닥 생각 없이 해버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금도 바닥에는 아이 장난감과 책들이 널브러져 있고, 식탁에는 언제 흘렸는지도 모르는 국물 자국이 남아있다. 당장 이 글을 마치고 머리를 비운 상태로 툭닥툭닥 해치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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