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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Jan 20. 2022

9. 태어나 처음으로 화를 참아보았다.

숫자를 세세요. 하나, 둘, 셋.


나는 기질적으로 아주 예민한 사람이다.

가정교육이나 환경에 의한 게 아니라 내가 봐도 태어나기를 예민하게 태어났고,

그저 나의 특성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러다 몇 년 전, 이러한 기질의 사람들을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 하며

일반인과 뇌구조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질병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꽤 피곤하게 산다는 것이다. (물론 예민함을 강점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공감능력과 감수성이 매우 발달해서 타인의 감정에 쉽게 이입된다.

내가 소설책을 읽지 못하고, 영화를 보면 일주일 정도 영화에 빠져 사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이 많고, 감각에 예민하여 쉽게 피로를 느끼며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남들보다 빨리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한 마디로 대충 넘어가고, 흘려보내는 것을 잘 못한다.


어느 책의 저자는 HSP인 사람들은 욕구 그릇이 너무나 커서 일반 사람에 비해

쉽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 있어 스트레스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한다고 한다.

HSP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나를 이해하려 노력한 결과, 나의 예민함을 사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스트레스가 쉽게 쌓이는 나는 그만큼 화도 자주 낸다.

몸이 아프거나 졸리면 나의 화는 더욱 증폭되는데 육아에 아주 큰 방해가 되었다.

아이가 18개월이 되던 때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18이라는 단어가 아주 거대한 산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 시기의 아이를 키우면 속으로 욕을 엄청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들이나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얘기였다.

주는 대로 먹고, 씻겨주면 씻겨지고, 입혀주면 입혀지는 아이가

어느새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엄마를 가지고 놀았다. 흔히 말하는 원더윅스가 매일같이 지속됐다.

코시국에 어린이집도 보내지 못하고 수시로 밤낮이 바뀌는 아이와 24시간 붙어있자니

나의 시간을 갖기는커녕 하루에 잠을 몇 시간씩 쪼개서 자야 했다.

이건 모성애와 다른 문제였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자고, 싸는 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삶이라니.

이쯤 되니 화를 내지 않고 육아하는 엄마들이 위인처럼 보였다. 아니 존재하기는 할까.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 본 적은 없지만(HSP는 위태로운 인간관계를 매우 두려워한다.)

가족들에게는 있는 대로 화를 표출하며 살아왔는데,

작디작은 생명체가 태어나니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누워만 있던 아기는 온데간데없고, 하루 종일 방방 뛰어다니는 아이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상상도 못 했던 그 화가 치밀어 올랐다.

특히나 코시국에 집에만 갇혀있으니 코로나 블루에, 육아 우울증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화는

한마디로 나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소리를 지르고, 겁에 질린 아이의 표정을 보며 자책하는 날들로 인생을 허비할 수 없었다.

아무리 화를 몸속에 담아두는 걸 싫어하는 나라도 아이의 눈에 엄마가 괴물로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작정을 하고 오늘 하루는 화를 내지 말자 다짐했다.

사춘기 아이를 둔 미래의 내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과거로 돌아와

오늘 딱 하루 아이

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상상했다.

그러자 그토록 지겹던 일들이 값진 추억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더없이 소중했다. 어? 효과가 있는데?

아이가 슬슬 나의 화를 돋우기 시작할 때 속으로 '딱 하루, 딱 하루'를 되뇌었다.

하지만 아이가 발로 내 얼굴을 밝고 지나가거나, 박치기로 내 안경을 공격하면

욱! 하고 화가 솟아나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그럴 때는 겉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열까지 세고 나면 소리 지르고 싶었던 마음이 잠시나마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나를 공격했던 아이는 내가 소리 지를 걸 예상하고 가만히 내 눈치를 보다가

엄마가 화내지 않고 조용한 걸 보더니 슬그머니 내 곁으로 와 "미안해." 하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20개월 된 아이에게 처음으로 자발적인 사과를 받았다.

'화를 분출하지 않았더니 이런 보상이 있구나!'

오늘은 이 두 가지로 하루를 화 없이 버텨볼 참이다.

내일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그리고 모레도. 글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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