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uffy moment Jul 21. 2021

펫로스라는 말

상실의 자리를 쓸어보는 사람


지난 기록을 묶어 소개할 때 의도적으로 펫로스라는 말을 피했다. 그때의 감정이 지금보다 더 날 것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나는 ‘펫로스’라는 말에 정서적 거부감을 느꼈다. ‘펫로스 증후군’처럼 증후군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는 그 단어가 불편했다. 정상성에 대한 강박이 무의식 중에 깔려 있기 때문인지 증후군이라는 말을 보는 순간 펫로스가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였다. 종래에는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펫로스를 바라보는 말 같았다. 그럼 내가 잃은 강아지, 포포는 내가 잊고 잘 살 수 있어야 하는 대상인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게 닥친 슬픔을 극복하고 싶지 않았다. 슬픔까지 포함해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말이 가리키고 있는 상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2년이 더 흘렀다.


이제 슬픔이 그런 방식으로 갈무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곁에 있는 상실의 자리를 수시로 쓸어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 자리를 채우거나 결핍으로 느끼는 대신 그 자리가 있다는 것을 계속 기억하고, 다른 것이 와서 덮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인다. 더 이상 펫로스라는 단어에 상처 받지 않는다. 여전히 쓸쓸해지는 말이기는 하지만 펫로스를 어떤 상태로 이해하게 되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계속 펫로스인 채로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쌓인다.


직전의 기록을 묶었던 2019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 쓴다. 그때는 곁에 누워서 오르내리는 강아지의 마른 등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내가 강아지랑 살았던 시간, 그 한 시절을 잘 남겨두기 위해서. 강아지와 함께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강아지와 함께하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했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쓴다. 어느 주말 오후의 산책, 강아지와 함께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이대로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런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언젠가 할머니가 될 테고 시간이 멈춘 강아지는 곁에 없겠지만, 그런 바람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이제 슬픔이 격랑 같던 시기는 지났다. 잔잔한 슬픔과 함께 비교적 평온하게 우리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길에 묻는 안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