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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30. 2020

내 일기장의 시작

모든 게 다 별일이다.

2015.03.02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으므로 일기를 써볼까 한다.
항상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했던 도전이지만,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볍게.

지금은 9권이 된 내 일기장의 첫 시작을 따라가 보았다. 분명 그 전에도 나는 일기장이라는 곳에 많은 일기를 썼을 테지만, 현재의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기장의 시작은 저기부터이다.


내가 생각하는 일기라는 건 말 그대로 '기록'이다. 나는 단기 기억력에만 특화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순간순간의 일들이 어느새 잊혀 흘러가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글로 남기게 되었고, 그것들이 하나 둘 모여 9권의 일기장이 되었다.


나는 일기장에 온갖 기록을 한다. 그날 있었던 일, 내가 느낀 감정, 갖고 있는 고민부터 지나가다 보게 된 좋은 글귀, 내가 해야 할 일, 가고 싶은 여행지 등을 나열해서 적어두기도 한다. 생각보다 많이 지저분하고 잡다하다.


일기의 시작이 된 2015년에 나는 대학 편입을 준비하다가 두 달 만에 포기를 하고, 남은 두 달 동안 서점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280만 원을 모았다. 그리고 방학을 한 친구와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갔던 여행지 중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가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가 그녀가 쓴 일기를 묶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였는데, 그녀가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직후 나도 내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정말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그녀의 '키티'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이름을 찾지 못했다. 처음에는 '글 노트'라고 부르기도 했다가 결국 그냥 '일기장'으로 되돌아왔다.


이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랴. 그 안에 기록하는 나의 소중한 순간들이 중요하지.

귀찮고 게으른 것을 애써 포장하며 그렇게 나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9권의 내 일기장들♡




사실 나는 따로 SNS를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남들이 알지 못했으면 했다. 그 사이사이에는 못생기게 나온 내 사진이 함부로 태그 되고 게시되어 떠돌아다니는 게 싫었고, 이상한 스토커도 만났으며, 서로 경쟁하듯 행복한 모습만 올리는 그곳에서 알면서도 자꾸 비교하고 스스로가 우울해지는 나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자신의 일기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써서 게시하는 친구들이었다. SNS가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이라도 된 듯 자기 밑바닥에 있는 모든 감정을 그곳에다 퍼붓는 그들을 보여 괜히 내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였다. 내 개인적인 글을 SNS에 올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그래서 나름대로 오랜 시간 글을 모아 오면서도 혼자서만 간직했다. 간혹 너무 나누고 싶은 순간이 오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내가 애초에 일기를 쓰게  이유는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으므로'였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내가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어떠한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다.


나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장르를 편식하면서 읽는 편이다. 주로 '에세이'만 읽는다. 그것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와 연결되는데, 나는 책 속에서 나를 찾는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 것보다 공감하기 위해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느꼈던 것, 고민했던 것, 생각했던 것, 그리고 경험했던 것 등 책의 글귀에서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면 그게 너무나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다. 아직 그 이유를 정확히 찾지는 못했다. 나만 이 모양이 아니라는 걸 수도,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그냥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극히도 주관적인 나의 행복이지만 나누고 싶다. 나는 너무나도 보통의 사람이기에 내 일기 속 나의 고민과 생각과 경험들이 이렇게 여기 글로 남아 누군가에 닿았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끄덕임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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