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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오 Feb 24. 2021

[초록 호흡_2] 시간을 허비하는 법도 배워야지요

우리는 이를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지요

상해 여행에서 맞춘 아끼는 작은 의자, 첫째 아이 태명이었던 백합(/릴리/, Lily)이 한가운데 있어 더욱 특별합니다. 



“시간에 자신을 내주어야 한다. 시간에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시간을 재지 않고 소모해버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법을 배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기다림을 더 깊이 경험하는 일은 그 양에 달린 것도,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에 달린 것도 아니며, 오직 내가 견디고 있다는 그 실존적인 사실에 달려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얘기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모두에게 그랬겠지만 2020년은 타의 반, 자의 반으로(타의가 더 크겠지요?) 포기해야만 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우리 모두가 겪었지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포기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변론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더니 이상하게 개운했습니다.


사실 떠밀리듯 뒤범벅인 된 채로 살아도 

기대만큼 되지 않아도 

되돌아보니 '세월'로부터 ‘흐름’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려놓음'을 감행하는 시간들을 통해 독소를 구별하고 잘라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신만으로 가득 찬 독선가를 알아볼 수도 있게 됐어요.

어쩌면 삶의 부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결정적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다시 찾아온 새벽입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날 찾지 않네요.

나는 비로소 진짜 내가 됩니다.

 

마음 편히 들을 수 없던 클래식을 틀고 

쫓기듯 읽던 책 속 한 페이지를 펼쳐두고 그곳에서 한참을 머뭅니다.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면서요. 

 

존재가 존재에게 요구하는 ‘역할’ ‘-다움’ ‘이래야 한다’가 상실된 시간, 새벽.

이 포근하고 무해한 시간 속에서 자유함을 느낍니다. 

제가 새벽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이 광활한 새벽을 통해 내가 하려는 일은 

악기가 내는 소리와 소리 사이를 예민하게 듣고,

연주자가 현을 뜯는 소리 현의 튕김을 세심히 포착해 듣고, 

그와 함께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마음껏 부유하는 일. 

평생을 아낄 문장을 찾아 오래도록 음미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내 마음속에 고이 담는 일이다.


이처럼 새벽이 되어서야 

나는 가장 나에 가까운 내가 됩니다.

머무름의 시간을 길게 가져야 진정 내가 되지요. 

느리게 가고 싶습니다. 


시계 토끼를 따라갈 아침이 다가옵니다. 

얼마간의 시간 동안 해야 할 말들을 내뱉어야 하겠고 

수시로 울리는 카톡창을 들여다봐야겠고

싫은 일도 해야겠지만, 

새벽이 준 힘을 자양분 삼아 더욱 잘 버리고 가지치기하며 

그리고 더욱 나만의 새벽을 기다리는 기대감을 안고 살아야겠습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나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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