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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한 번 꼴 냥이를 만나는 것 같은 요즘. 미용실 가는 길에 본 얼룩냥. 눈이 작아 동양적으로 생긴 아이다.
전날 한 머리가 너무 치렁치렁해서 다시 다른 곳 예약하고 잘랐다. 단발병 어쩌겠는가. 짧으니까 좋다. 목뒤에 치렁치렁하는 느낌 너무 싫다.ㅠ
광화문 북바이북으로 향한다. 내가 정유정 작가님의 신간 소식을 늦게 알아 다른 만남 자리 다 놓치고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은행나무 블로그를 가입했다. 인스타에 소식 다 올리신다고 하는데 내가 인스타를 잘 안 해서.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은행나무 인스타도 추가했다.
광화문 북바이북. 그냥 서점인가 생각했는데 문화공간 느낌이기도 하고 하나은행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서점인데 꽤 좋다. 이쪽 직장인들에게 꽤 사랑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설레네! 평일 저녁 시작이라 7시 반. 퇴근한 직장인들은 부지런 떨어야 하고 나는 그냥 작업실 하루 재끼고 거북이 물 갈아 주고 머리하고 좀 놀다가 입장했다.
좀 일찍 왔더니 사람 많이 없음 맨 뒤에 푹신한 자리를 찜했다. 음료와 샌드위치 포함 세트를 신청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샌드위치 토스트를 신나게 먹었다.
모야 엄청나게 맛있네.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에 땅콩잼, 딸기잼 듬뿍 바르고 바나나를 통으로 송송송 박았다. 맛있고 만드는 방법 간단해서 소풍 갈 때 싸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칼로리겠지만.
부채도 받았다. 이날은 비가 찔끔 오다 말다 한 것 같은데 다행히 비는 많이 안 맞았다. 더워서 연신 부채질
작가님 언제 오시나요!
정확한 수는 모르겠지만 40-50명 온 것 같다. 김영하 작가 낭독회가 여자들이 대다수인 거에 비해 정유정 작가님 타임은 남성분들도 꽤 많이 보였다. 그래도 여성들이 조금 더 많다. 진이, 지니 편집자님이 질문하고 작가님이 대답하고 한번 대답하기 시작하면 신나게~ 재미나게 말씀하시는.. 원래 2시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났고 질문 타임이 있어서 질문했다!
일단 진이, 지니 너무 재미있게 봤다 말씀드리고 다음 책은 책에 쓰여있는 것처럼 바다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일까요? 했는데 광주 내려가셔서 준비해 놓은 걸 쭉 훑어봐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한 번 시작하면 1-2년은 꼬박 써야 하는 작업이라 작가로서는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야 작업이 되는 거라 내려가서 보시고 부글부글 끓나 안 끓나 보셔야 한다고 했다.
보통 다음 책 힌트는 안 주신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진이, 지니 이전에 쓰려고 준비하던 책이 있다 말씀하시니 그 이야기도 세상 밖으로 나오길 빈다. 마지막에 양자물리학? 책 한 권 남겨두고 진이, 지니를 쓰게 되셨다고 하니. 그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길래 양자물리학까지! 싶으면서 매우 궁금하다.
저번에 유튜브에서 들었던 내용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긴 했다. 보노보를 공부하게 된 과정이라든지. 보노보의 성격 특징 이런 거.
작가들마다 일종의 큰 주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유정 작가님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하셨다. 인간에겐 따듯한 황금빛 들판도 있지만 그 옆에는 어두운 숲도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작가다운 표현 ㅠ
그리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번 진이, 지니가 유일한 여자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생각도 못 했네. 남성 주인공이 많은 이유는 물리적으로 이야기를 감당할 주인공이 남성이어서 남자 주인공이 나오게 된 것도 있지만 여성 화자는 자신이 좀 없고 작가님이 너무 그 주인공에게 들어갈까 봐 꺼려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진이, 지니 속 주인공 진이는 작가님이 많이 녹아있다고 하셨다. 특히나 어머니께서 간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던 경험이 투영되어 진이의 어머니도 투병 중 돌아가신 걸로 나오고 진이의 태몽 또한 실제 정유정 작가의 이야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인공 이름을 기존에 이름을 뒷부분만 슬쩍 바꿔서 정하시는 편이라고 했는데 책 속 이진이는 예전에 함께 작업했던 은행나무 편집자님을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진이가 주인공이지만 또 다른 주인공 민주를 생각해 보면 민주의 성장 드라마이고 약간은 소심하고 허술한? 이 캐릭터가 작가 입장에서는 여백이 많고 담을게 많아. 혹은 변화시킬 여지가 커서?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캐릭터라고 하셨다. 다른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민주 같은 캐릭터가 하나씩은 있다고 하셨다.
진이를 통해서 죽음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민주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다. 아!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로 좀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가라고 꼰대 같은 말일 수 있지만 돌아가는 지름길은 없다고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거라고 하셨다. 민주 캐릭터를 쓰면서 민주가 딱 취준생에 자리 잡지 못한 비실하고 무기력한 청년으로 나와서 요즘 세대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썼다고 했는데 책 초반의 민주와 책 마지막의 민주는 다른 사람이니까 한결 용감하고 멋진 사람이 돼있으니까. 진이의 결말에 슬퍼했지만. 민주를 생각하면 작가님 말씀대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작가님이 손에 들고 계신 파인애플 위에 보노보는 팬분이 선물해주셨다고 한다. 너무 좋아서 이렇게 책 미팅하는 자리에 항상 데리고 다니신다고 하는데 아오 부럽네. 나도 선물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결국 못 사 갔는데. ㅠ 다음 기회에 용기 내어 보겠다.
그리고 12장을 갈아엎듯 다시 쓰셨다고 했다. 이야기가 갈수록 고조돼서 처음에는 민주가 오토바이 타고 추격하고 이런 걸 쓰셨다는데 남편분이 읽어보시고 고쳐야겠다고 하셨단다. 화도 내보고 부정하고 싶으셨다고 하는데 끝까지 다 썼는데 마지막을 바꾸는 건 앞에 있는 모든 복선들도 뜯어고치는 작업이라 괴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정 못하고 3주 정도 술 마시며 괴로워하시다 시작해서 지금의 결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장 첫 번째 독자 소설가들의 남편, 혹은 부인. 그들의 말이 정확하다. 이런 비하인드스토리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안쪽에서 사인 타임이 있었는데 이전 김영하 작가 낭송회는 자그마치 인원이 1000명이었고 물리적으로도 모든 사람을 사인해주는 건 불가능하기에 사인회는 진행하지 않았는데 북바이북 행사는 소규모였고 사인할 시간도 조금 빼놓은 것 같아 좋았다. 저렇게 한 명씩 앉아서 작가님과 이야기도 하고 악수도 하고 원한다면 옆에 편집자님이 사진도 찍어주셨는데 너무 가슴 콩닥콩닥 한거 아닌가.
함박웃음 작가님. 내 어깨를 와락 껴안아 주셨다. 역시나 파워풀. 생각보다 키도 엄청 크시네. 내가 땅꼬마인 것도 있지만. 아 진짜 너무 행복하네. 어지간하면 내가 어떤 분야든 여성은 별로 관심 안 가지는데 작가님은 다르다. 너무 좋음. 자신의 열정적인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우셨는지 행사 내내 작가님은 밝고 즐거워 보였다.^^
악수도 하고 사인도 받고 대화도 사진도 찍고 행복했다. 다작 작가를 희망하신다고 한다. ^^; 옆에 계시던 편집자님이. 전 다작 작가라고 생각해요. 오래 걸려서 그렇지.라고 말해서 다들 빵 터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신 걸까. 난 작가님의 소설을 여러 권 역주행해 보긴 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더 많다. 절판된 책이나 여행 에세이, 그리고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같은 책 말이다. 부지런히 읽고 다음 소설을 기다려봐야지.